(소설) 모자 도둑 7

by 도라지

프리테오스에서 성은희의 전시 오픈 파티가 열리고 며칠 뒤였다. 지역에서 열리는 문화 축제 행사로 도청 관계자와 개발연구원 박사 두 명과 미팅을 하고 이른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권현이 막걸리 몇 병 사 가지고 그녀의 작업실로 오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하고 오래된 아파트의 4층을 임대하여 작업실로 쓰고 있는 권현은 김도훈과 전지수와 동년배다. 작업실에는 사진작가 정일우도 와있었다.


"선생님, 오랜만에 뵙네요. 어떻게 밖에를 나오셨어요?"


정일우를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내 입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소리였다. 정일우는 아내가 있는 집과 작업실 외에는 바깥 출입이 없는 편이다. 지역에 갇혀있지만, 그의 인물사진은 아시아를 뛰어넘는다. 그런 그의 인물사진 실력은 뒷전인 채, 지역 내에선 그의 누드사진만이 늘 이슈가 되곤 했었다. 나 역시 그런 희생양이 될 뻔했었다.


"이기자~, 정선생님이랑 다투었다면서?"


나보다 여섯 살 많은 권현은 나를 동생처럼 아껴주는 사람이다. 권현은 나를 통상 이기자로 부르곤 한다.


"그게요, 선생님~ 제가 누드도 안 찍고, 정선생님 카메라에 두 번 모델로 선 적이 있잖아요. 정선생님이 저한테 한마디 언질도 안 주시고, 작업실과 웹사이트에 다 올려놓으신 거예요. 그걸 본 사람들이 제가 정선생님 애인이라고 소문을 내서, 하마터면 제 혼삿길이 막힐 뻔해서요. 죄송해요, 정선생님~ 그때는 제가 정말 어리석었어요."


정일우의 작업실에는 벽 위로 인물 사진들이 걸려있고, 그 아래 설치된 모니터에서는 누드사진들이 화면이 바뀌면서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의 작업실 메인 보드에 내 얼굴이 걸려있고, 바로 아래 돌아가는 모니터에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사진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내 몸이라고 착각들을 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하루는 편집장이 불렀다.


"이기자, 누드 찍었어?"


그가 재밌다는 듯이, 살짝 눈꼬리를 치켜뜬다.


"그걸 제가 대답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업무랑 관계없는 일입니다."


"그게 왜 관계가 없어? 야~ 너는 우리 신문사의 얼굴이야. 먹칠하고 다니지 마~"


엿같다. 내가 왜 니들 회사의 얼굴 마담이어야 하는 거냐? 누드 작품 찍으면, 그건 또 먹칠하는 거냐? 그 길로 정일우의 작업실로 찾아갔다. 정일우가 말했다.


"이선생, 싸워보지도 않고 왜 지는 거예요? 이선생까지 이렇게 촌스러울 줄 생각도 못했어요. 지금 내 작업에서 이선생 사진은 다 삭제할게요. 그러면 되는 거죠? 이제 우리는 친구가 아닌 겁니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정일우는 나를 이선생이라고 불렀다. 한 번도 말을 놓거나 예의에 벗어나는 농담조차도 던진 적이 없다. 둘이 와인 두 병을 놓고, 새벽 한 시까지 얘기해도 지루하지가 않았었다.


권현의 작업실에서 정일우가 내 사과를 받아 주었다. 막걸리 몇 병을 놓고 셋이서 다시 누드사진으로 화제가 옮겨갔다. 막걸리 댓 병쯤은 끄떡도 없는 권현이 말했다.


"이기자, 누드 한 번 찍지 그래? 다른 작가도 아니고 정선생님인데~ 그런데 정선생님,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왜 저한테는 누드 찍자는 제안을 한 번도 안 하시는 겁니까? 섭섭합니다~"


뜬금없는 권현의 공격에, 잠시 정일우가 주춤거리며 말했다.


"아직 제가 제 선을 넘지 못해서 그렇죠. 난 한 번도 남성 누드를 찍은 적이 없어요. 그리고 늙은 여인의 누드도 찍은 적이 없어요. 왜 그랬을까요?"


정일우가 되려 물었다. 우리 셋은 동시에 같은 질문 앞에, 잠시 동안 묵직하게 서있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젊은 여인은 다 아름답고 늙은 여인은 다 아름답지가 않다는 식으로 들리기가 쉬운데요, 그게 선생님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인 건가요?"


내가 던진 질문에, 정일우가 망설이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아니에요. 여인의 아름다움이 나이와 무관할 순 없지만, 젊은 여인이 다 아름다운 것도, 늙은 여인이 다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에요. 나이에 갇히지 않는 여인의 아름다움도 내가 직접 봤으니까요. 난 그저 내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여인의 누드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건데, 지금까지는 모두가 젊은 여인이었던 거네요."


막걸리에 취해도 수도승처럼 맑은 눈빛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 권현이 다시 물었다.


"전지수 작가는 어떠세요? 선생님 누드 작품에 옮겨보고 싶으세요?"


"그게 또 참 이상한데요, 이 누드 작품이란 것이 마치 내가 그녀와 관계를 원하는 것 같은 욕망이 발현될 때 찍고 싶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뛰어난 미모라고 칭송해도 내 눈에 아름답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저는 전지수 작가의 눈빛이 별로 탐탁지가 않아요. 그건 순전히 작가적 취향일 뿐입니다. 전 작가를 사진에 담으라고 한다면, 무당 옷을 입은 전신 모습은 어울릴 것 같아요. 이 또한 무당을 폄훼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그쯤에서 내가 화제를 성은희로 돌렸다.


"권선생님, 프리테오스에서 전시 있으시죠? 그게 몇 월이더라?"


"11월~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지난주에 프리테오스에서 같이 있었구나. 각자 대화 상대들이 달라서~ 나 그날 와인 먹고 고생했잖아. 성은희 작가 지난번 구스토에서도 그러더니, 묘한 마력이 있던 걸~"


묘한 마력, 정확한 표현이다. 성은희는 거부하기 힘든 어둠의 세력 같은 구석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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