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나무들을 향하여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듯이 가을비가 내렸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노랗게 발갛게 노화된 나뭇잎들이, 빗물에 속절없이 아래로 떠밀려 가고 있었다. 쾌락을 좇는 한 여인과 그를 둘러싼 남성들의 기묘한 뒤엉킴은, 떠밀려간 낙엽들이 수챗구멍에서 만나지는 것처럼 한 지점으로 모여진다.
한기태의 독백이 멈추고, 연구실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고 있었다. 부끄러운 일을 공유한 자들 간에 흐르는 비밀스러운 침묵 같았다. 편하지 않은 침묵 속으로 성은희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기태 연구실로 오겠다는 성은희를, 한기태가 극구 말렸다. 우리는 황급하게 뒤처리를 하듯이 먹던 찻잔을 정리하고 학교 주차장으로 갔다. 성은희가 벌써 주차장 앞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내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군청 앞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성은희가 소주를 두 병 마셨다. 한기태도 두 병을 마셨다. 성은희가 노래방에 가서 놀자고 한다. 발걸음이 벌써 흔들리고 있었다. 거절할 줄로만 알았던 한기태가 기다렸다는 듯이 노래방을 안내한다.
이쯤에서 내가 화장실을 한번 다녀올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나갔던 문을 다시 열고 들어서는데, 성은희가 한기태의 하체를 올라타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다. 한기태는 저항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인사는 하지 않고, 노래방 주인에게만 먼저 간다고 언질을 주고 나왔다. 빗길을 천천히 달려 나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 노래방에 남겨두고 온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은 나지 않았다. 민현기의 눈빛만 자동차의 불빛들 사이로 더욱 또렷하게 기억이 날뿐이다.
계기판에 시계가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우진은 이미 퇴근을 했을 것이다. 변두리 지역의 도로 위에는 달리는 차도 그리 많지가 않았다. 도시까지 가려면 아직 사십 분을 더 달려야 한다. 도착하면 아홉 시가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지금 마흔이다. 변두리 나이이다. 외곽 지역을 달리는 차들이 많지가 않은 것처럼, 내 주위에 나를 향해 질주하는 남성들도 이제 많지가 않다. 도시에 도착하면 저녁 아홉 시, 남자를 만나기에 늦은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시간이다. 그가 집에 들어가 있거나, 답장을 주지 않거나 할 수도 있다. 상처 받을 각오 혹은 수치심의 노예가 될 각오 정도는 있어야 한다. 어차피 인간은 자기 연민의 노예이다.
보편적인 경쟁 메커니즘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남성들을 정복해나가는 성은희의 도발적인 개성이 차라리 정직해 보이기도 한다. 독창성 없이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들에 비해, 성은희가 어쩌면 더 꼴불견스럽지가 않은지도 모른다. 이렇게 망설이며 내일의 상처와 수치심을 염려하는 내가 한결 진상스럽다.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춘 사이, 조우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밤 아홉 시에 뵐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