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밤, 나의 또 한 번의 처녀성을 파괴한다. 처녀막이 처음 파괴될 때만큼이나 두렵고 떨린다. 조우진은 아내가 있다. 내가 그와 나누는 애정은 처음부터 불륜이라는 라벨을 달게 된다. 신체의 처녀막이 처음 찢어질 때는 어떠한 종류의 라벨도 없었다. 대학 4학년 여름이었다. 그건 사랑도 쾌락도 아니었다. 호기심과 유사했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누구도 내게 강요한 적 없는 도덕이라는 처녀성을 오늘 걷어내려고 한다. 나의 도덕이 욕망 앞에서 포복을 한다. 비장해지는 마음 때문에 온 몸이 떨려온다. 긴장감이 유두까지 올라와 있다. 조우진이 나타났다.
"이기자님, 무슨 일 있어요?"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민현기와 첫밤을 보낼 때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떻게 모텔방까지 갔었는지, 이 타이밍에 머릿속이 하얘진다. 남자랑 잔 게 너무 오래되었다. 몸마저 남자를 잊어버린 거 같다. 벌써 오 년이 지났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하는데, 자꾸만 입술만 마르고 벙어리마냥 말이 삼켜진다. 촌닭이 따로 없다.
"오늘 당신이랑 자려구요."
조우진이 놀라서 말을 하지 못했다. 몇 초 뒤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이 조우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오늘 밤은 제가 알아서 모실게요.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우선 술을 한잔 하는 게 좋을 거 같군요."
조우진과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 캄캄해진 하늘에서 비가 그쳤다. 그날 밤, 차갑게 긴장해있는 내 몸 위로 조우진의 뜨거운 몸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내 몸이 남자를 기억해냈다. 나는 그를 말아서, 땅 밑으로 길게 뻗은 나무 뿌리처럼 깊게 그를 받아들였다. 조우진의 신비한 눈빛도 보았다.
아침부터 가을 햇살이 눈부셨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향교 마당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은행나무가 잎들을 다 떨어내고 빈 몸으로 서있었다. 풀밭 위로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내 땅임을 표시하듯, 햇살 아래 맨 살들로 누워있다. 나른하게 탄력 있는 내 몸이 햇살에 기대어 서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한 그루 빈 은행나무 같다. 하지만 부끄럽지가 않다.
감각적인 합리주의자는 이제 없어져버렸다. 나는 감각적이지도 않고 합리주의자도 아니다. 세상을 향해 무제한적으로 내던지는 개척자도 될 수가 없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모든 지성에는 반드시 허영의 계기가 들어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모든 에로스에는 반드시 성욕의 계기가 들어있다. 나는 허영에 찬 인간이고, 성욕에 찬 인간일 뿐이었다.
며칠 전 조우진의 몸 아래에서 나는 분명히 환희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그가 토해내는 숨소리가 내 은밀한 구석에 낱낱이 파고들었다. 생명의 환희는 성교의 희생을 통해 완성된다. 에로스의 희망은 진리의 탈환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의 정점을 기대할 뿐이다.
도덕이 추구하는 진리란, 현실을 부정하면서 현현하는 형태로서만 가능해진다. 성교 죄의 희생물을 요구하는 시대는 끝났다. 죄지은 자의 속죄도 더 이상 값어치가 없어졌다. 희생의 무한성을 요구하는 진리는 사라졌다. 이 세상에 탈바꿈되는 것은 없다. 탈바꿈되는 척할 뿐이다.
나는 남자를 원하는 여자일 뿐이다. 성은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