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드 아이 2

by 도라지

4년 전 개원 당시 장 하은의 이력서는 특이할 것도 없었다. 그때 하은의 나이는 43세였다. 고졸 학력에 결혼 이력도 없이 혼자 나이 들어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노처녀 하은이 면접을 보러 온 날, 하은은 흰색 블라우스에 감색 스커트를 단정히 입고 왔다. 제법 몸무게도 있어 보이는 수더분한 인상의 여자를 바라보며, 민재는 조무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그녀에게서 바로 찾아내었다. 간호사보다 비록 나이가 많아도 간호사에게 묵묵히 협조할 수 있는 조무사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은은 민재의 예상대로 간호사와도 다른 조무사와도 큰 트러블 없이 본인의 일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4년 동안 간호사가 바뀌고 다른 조무사가 바뀌었어도, 변함없이 민재의 곁을 지킨 건 장하은 한 명뿐이었다. 민재가 직원 관리를 잘 못해서 직원들이 퇴사를 하는 건 아니었다. 여자 직원들끼리 서로 다투고 기분이 나빠져서 근무할 수가 없다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종합병원에서도 여자 간호사들은 그랬다. 그래서 병원 측에선 부서 이동을 시켜서라도 간호사들을 붙잡아두곤 했었다.


민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치매에 걸리시고 난 뒤 와이프랑 이혼을 하고, 살집이 없던 민재는 그 마른 몸에서 3킬로그램이나 더 빠졌다. 비쩍 말라서 마치 행려병자의 느낌이 나는 민재를 하은이 안쓰럽게 여기고, 아침마다 계란을 삶아오고 샌드위치를 만들어왔다. 그녀가 챙겨주는 음식을 먹으며, 민재는 다시 몸무게를 회복할 수 있었다.


낮에는 간병인이 와서 아버지를 돌보고 가사 도우미의 보조도 받아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 치매 낌새를 보이실 때 민재가 신속하게 파악해서 적절하게 대응을 잘했다고 안심할 무렵, 아버지의 입에서 처음 듣는 여자의 이름이 흘러나오고서부터 아버지의 병은 조금씩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 첫사랑의 이름을 처음 부르며 아버지가 시공간 개념을 망각하기 시작한 날도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민재가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어 막막해하고 있을 때, 문득 하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날 저녁 하은이 달려와 아버지를 돌봐드리자, 아버지는 하은을 첫사랑 여자로 착각하며 진정이 되었다. 이후로 민재 혼자 아버지를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하은은 민재가 부르면 다른 핑계 없이 언제나 달려와주었다.


하지만 민재는 여전히 집에서 하은과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일종의 결벽증처럼 민재는 하은을 내 집에서 함께 섹스를 나누는 상대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조금 귀찮을지언정 하은을 데리고 모텔로 가서 성욕을 해소하는 편이 마음이 훨씬 편했다. 어제저녁도 아버지가 잠드신 걸 확인한 후, 민재는 집을 나와서 하은과 모텔로 걸어 들어갔다. 집에서 도보로 8분 거리에 있는 모텔이었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민재는 커피 한잔에 토스트 한쪽을 먹고 출근 준비를 했다. 곧 있으면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셔서 아버지 식사를 챙긴다.


민재가 자기 병원에 출근을 하는데, 여자 직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만치서 하은은 괜히 주눅 든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쟁취한 자의 의기양양함을 감추려고 일부러 겸양을 부리는 것도 같았다. 민재는 속으로 상황 파악을 금세 해버렸다. 민재가 진료실로 들어가자, 하은이 얼른 뒤따라 들어갔다.


"원장님, 다른 직원들이 우리 관계를 다 알아버렸나 봐요. 어젯밤 누군가 우리를 본 거 같아요. 어떡해요?"


옷걸이에 입고 온 상의를 걸어두며, 민재가 하은에게 등을 보이는 채로 대꾸했다.


"신경 쓸 거 없어. 누구든 여기서 일하기 싫으면 나가면 되니까."


냉정하고 단호한 민재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차분해서 오히려 하은이 민망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은은 성품이 무던한 것만큼이나 상황 파악에서도 아둔한 편이다.


"다른 직원들이 저를 자꾸만 따시키려고 하잖아요."


거의 울먹일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민재를 바라보는 하은의 얼굴 속엔, 전혀 고민되거나 애처로운 기색이 들어있지 않았다.


"토요일이야. 바쁘니까, 환자 받을 준비나 해."


민재는 서울에 있던 종합병원에서도, 여기 내려와서 근무했던 종합병원에서도 남자 의사와 간호사, 혹은 조무사들과의 관계를 많이 보고 흔하게 겪은 일이기도 했다. 지금 이 상황은 전혀 1프로의 데미지도 민재에겐 없었다. 그래서 그 많은 여자 중에 45점짜리 하은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은이 진료실 밖으로 나오자, 간호사 최유정이 하은을 따로 부른다. 최유정은 하은보다 두 살 위였다.


"너 어제 오쌤이랑 모텔 갔다며? 언제부터야?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라. 조직 내 기강의 문제니까 내 질문에 사실대로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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