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드 아이 6

by 도라지

토요일 오전에 비뇨기과는 직장인 남자들로 평일보다 더 바빴다. 민재는 쉴 틈 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여직원들이 그를 힐끔거리며 어제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신경 쓸 새도 없었다.


잘 생긴 외모 덕에 어릴 때부터 여자들의 숱한 관심을 받으며, 민재는 빠르게 성장했던 키만큼이나 정신세계도 남다르게 빨리 성숙했다. 민재는 뛰어난 머리만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다. 각별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셨던 어머니는 15년 동안 한 달에 두 번씩 재활원과 고아원 등을 방문하여 봉사 활동을 하셨다. 대학 교수 아버지에게선 연구하고 탐구하는 인생의 태도를 배웠다면, 어머니에게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인생의 귀한 의미를 깨우쳤던 것도 같았다.


예전에 민재는 타인을 사랑하는 데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첫 몽정도 경험하고 다른 남자애들처럼 야한 잡지와 영화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는 섭렵했지만, 민재가 구성한 정신세계에서 사랑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클수록 현실 세계의 여자들은 민재를 더 크게 실망시킬 뿐이었다.


의대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민재를 한 인간으로, 한 남자로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나기란 더욱 불가능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판알을 튕기는 탐욕스러운 여자들의 먹잇감으로 비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보편적으로 수컷이 암컷을 선택한다는 자연의 진리는 인간 세상에선 그리 적중하는 논리는 아닌 것 같았다. 민재를 향한 여자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가 부담스러운 단계를 지나 현기증이 날만큼 역겁게 느껴질 때쯤 진아가 나타났었다.


민재가 레지던트 시절, 민재가 근무하던 병원에 진아 아버지가 전립선 비대증 수술로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이혼한 전 와이프 김 진아는 그냥 순진하게 공부만 열심히 하는 사학과 대학원생이었다. 고전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녀에게선, 잘난 남자를 차지하려는 욕망보다 자기의 관심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그런 면에서 민재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진아는, 결혼 생활중에도 여전히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민재와 이혼하기도 했다.


토요일 오전 진료가 끝나고, 민재가 하은에게 톡을 보냈다.


"점심 먹고 들어가."


민재는 하은의 의사를 묻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은을 향한 지시적이고 권위적인 태도가 옳지 않다는 것을 민재는 잘 알면서도, 이미 형성되어버린 태도를 바꾸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하은을 생각하면 민재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처음엔 인간적으로 고마운 마음에서 시작되었던 하은과의 섹스는 여전히 민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정신적으로 소통되는 것이 없는 하은은 단지 민재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안전한 도피처일 뿐이었다.


민재는 여자들은 믿을 수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의 여자도 보았다. 애가 있는 걸 숨기고 남자에게 접근해서, 끝내 전처랑 이혼하게 만든 영악한 사기꾼 여자와 재혼해서 살고 있는 진우형같이 등신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민재는 조은진과 김현경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최유정과 다른 간호조무사들 역시 민재가 원한다면 언제든 잠자리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섹스를 빌미로 민재의 안방을 나누어 쓰려는 계산들을 하고 있기에, 모두들 위험한 여자들이다. 그녀들이 민재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민재는 그녀들을 배제하고 가장 욕심이 없었던 하은을 섹스 파트너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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