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드 아이 8

by 도라지


민재의 차가 정문을 통과하며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지금 민재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를 때까지, 현경은 자신이 어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인지 머릿속이 선명하지가 않았다.

민재가 놀라는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며 메마르게 말했다.


"김선생, 연락도 없이 여기는 웬일이에요?"


"안녕하세요~ 아버님 드리려고 밑반찬 좀 만들었어요. 토요일이라 원장님도 계셨네요. 아주머니는 퇴근하셨나요?"


현경은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를 찾는 시늉을 하며, 현관문 안으로 주저 없이 밀고 들어갔다. 거실 소파에 민재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있던 하은이 현경을 보며 당황하지도 않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어머, 하은씨도 와 있었네요. 오늘 아버님 돌봐드리는 날인가요? 안녕하세요, 아버님~"


현경이 하은을 날카롭게 응시하던 시선을 민재 아버지 쪽으로 돌리며, 다정한 눈빛과 음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민재 아버지 오상준은 다행히 현경을 알아본다.


오상준은 지금도 치매 치료를 위해 신화병원에 정기적으로 내원하고 있다. 신화병원에 갈 때마다 현경이 수술이 없을 때면, 상준을 따라다니며 챙기곤 했다. 신화병원을 가는 날은 오히려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날이 더 많아서, 상준은 현경을 특별한 시선으로 눈여겨보곤 했었다. 우리 민재가 저런 여자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다가도 치매 증상이 나타날 때면 상준은 퉁퉁한 하은만을 알아보고 예뻐해 주었다.

오늘은 상준이 정신이 멀쩡해서인지 살집 때문에 미련스러워 보이는 하은이 주는 것 없이 못마땅하게 여겨지던 참이었다. 비둔해 보이는 하은은 영특한 데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아들 민재가 저 살덩어리 여자와 친하게 지낼까 봐 걱정스럽기까지 했던 차에 현경을 보니 상준은 몇 배는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현명한 여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남자가 인생의 진정한 승자라고 상준은 민재에게 누누이 이야기했었다. 민재 어머니는 현명한 여자였다고 상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민재는 딱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보여준 현명함과 헌신은 대부분 여자들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직업 속에서 똑똑한 것과 가정 내에서 현명함은 또 다른 것이라는 걸, 민재는 전 와이프를 통해 충분히 깨달았다.


인생의 2/3 이상의 시간을 반려자와 보내야 하는 걸 계산해볼 때, 현명한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은 비교적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생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한 집안 전체의 운명이 바뀌기도 했다. 그 운명을 바꾸는 건 대부분 겉으로는 남자의 결정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 뒤엔 언제나 와이프라는 존재들이 있었다.


민재는 진우형의 새 와이프처럼 희대의 사기꾼 여자도 보았지만, 고등학교 동창생 동호의 현명하고 아름다운 와이프도 보았다. 동호 같은 놈을 참아주며 그놈을 잘 보필해서 사업가로 성공시키고 볼품없는 동호의 형제들 건사까지 잘하는 똑똑한 여자였다. 동호를 보면서 인생은 운칠기삼의 법칙이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현경은 영특하지만 순수한 헌신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순수한 헌신이 있었다면, 과연 그녀는 이혼했을까 의문이 드는 지점이었다. 하은은 현명함은 없지만, 순수한 헌신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은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냥 현경이 가져온 종이백을 얼른 받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에 들고 있던 반찬통 가방을 빼앗긴 현경이 주방으로 향하는 하은의 뒷모습을 샅샅이 훑어본다. '저 뚱뚱한 몸으로 민재랑 잠자리를 하고 있다니..' 현경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퇴근하셨나 봐요. 안보이시네요. 하은씨는 여기에 계속 있을 건가요?"


직장 상사처럼 거침없는 현경의 질문에, 하은도 지지 않고 경쾌하게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오늘 토요일이라 좀 일찍 가셨고요, 원장님께서 오늘 저녁 비뇨기과 연합회 모임 있으셔서, 원장님 오실 때까지 제가 있을 거예요."


마치 일 못하는 후배가 일 저질러놓고 따박따박 말대답하는 것처럼, 현경은 하은의 말하는 입술이 한대 갈기고 싶을 만큼 얄밉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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