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드 아이 23

by 도라지

해와 달이 하늘에서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무심하게 오고 가는 사이, 어느새 한 주도 끄트머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현경은 조은진을 앞세워 정현 요양병원에 오상준이 입원을 했는지 알아보았으나, 오상준은 예전처럼 집에서 치료받기로 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삼주 전쯤 오민재와 장하은의 연애설이 속보로 단톡방에 보도되고 난 뒤로, 현경은 온통 민재에 대한 열망과 집착에 갇히어 민재의 연락만 기다리며 초조하게 시간을 셈하는 중이다.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는데 이번 주에는 민재에게서 아직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현경의 은밀한 계획과 상관없이 쉽게 풀리는 일은 하나도 없고, 모든 상황은 여전히 현경에게 불리한 것만 같다. 자꾸만 조급해지는 현경의 마음은 갈수록 불안해지고, 민재를 갖겠다는 일념은 현경의 일상을 소리 없이 갉아먹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였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현경이 수술 하나를 마치고, 수술실 건물과 통로로 연결된 신관 건물의 복도를 걸어갈 때였다. 병원 청소를 담당하는 여자 두 명이 복도 끝에 붙어있는 화장실로 들어가며 다투는 소리가 화장실 밖에까지 들려왔다. 현경이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몇 발짝 옮기는데, 요즘 들어 신경이 부쩍 곤두서 있던 현경의 귓가에서 여자들의 다투는 소리가 점점 더 멀게만 느껴져갔다. 현경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좌우로 흔들리는가 싶더니, 현경의 몸이 맥없이 풀썩 바닥에 내려앉았다. 화장실 안에서 다투고 있던 여자들이 아까와는 다른 톤으로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있는 현경에게 달려들었다.


현경이 정신을 차린 곳은 신화병원 응급실이었다. 조은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현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김선생, 이석증이래. 요즘 업무가 힘들었던 거야? 며칠 집에서 쉬는 게 좋겠어. 마침 내일이 토요일이니까 병원 나오지 말고 푹 쉬어. 이석증도 만만히 볼 건 아니잖아."


응급실 침상에서 깨어난 현경의 머릿속에선 지난 삼주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리 사소한 듯 보이는 병증이라 해도 모든 증상은 만만히 볼 수가 없다는 것을 현경도 잘 알고 있다. 지금 현경의 이석증 원인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아니라, 순전히 민재와 하은의 탓일 거라고 현경은 속엣말로 뇌까린다.


응급실 벽에 걸린 LED 시계가 오후 네시를 넘어 4라는 숫자 옆으로 01자를 덧붙이고 있었다. 현경이 침상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을 열어보는데 민재에게서 톡이 와있었다. 기다리던 민재에게서 만나자는 톡이 와있을 것으로 기대한 현경의 눈동자에 다시 힘이 들어가며 반짝거렸다.


<현경씨, 혹시 내일 저녁 6시~9시까지 저희 집에 와주실 수 있나요? 간병인 아주머니가 그 시간엔 어렵다고 해서요.>


톡에 적힌 내용을 보는 순간 현경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벌겋게 상기되었다. 일주일 내내 연락 한 번 주지 않다가 고작 아버지를 부탁할 때만 연락을 하다니, 민재의 마음이 괘씸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없던 병까지 생겼는데~'라고 생각하며, 현경은 민재에게 답장을 보냈다.


<죄송해요, 원장님, 제가 이석증이 와서 지금 응급실에 누워있어요. 당분간은 저도 제 병을 돌봐야 할 거 같아요.>


현경의 답장을 보고 민재도 걱정되고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내 드는 생각은 또 하는 수 없이 하은에게 아버지를 부탁해야 한다는 부담이 민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보였던 현경이 이석증이라니,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나 걱정되는 마음을 민재가 다시 톡에 적어 현경에게 보냈다.


민재의 걱정은 진심이었겠지만, 응급실 침상에 누워있는 현경에게 지금은 민재를 향한 열망이나 걱정에 대한 고마움 따위 들어설 틈이 없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크게 아파본 적이 없던 현경은, 삼주 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이런 결과를 불러오리란 걸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복잡한 생각들이 현경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장하은은 여전히 민재 병원에 근무하고 있고, 치매 환자인 상준도 집에 그대로 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현경의 몸에서만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병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경은 모든 전개되어 가는 상황들을 곰곰이 짚어본다.


얼마 전 민재와 현경은 모텔을 향해 발걸음을 함께 옮긴 적이 있었지만, 그 달콤한 기억 또한 내 몸이 건강할 때 비로소 감미로운 추억이 될 뿐이다. 나를 불행하게 하고 내 몸을 병들게 하는 것들을 피하려고 이혼까지 했던 현경이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민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렇게 위협적일 만큼 클 줄은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앞으로도 오상준의 치매 증세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아버지를 집에서 모시고 싶어 하는 민재는 하은을 또 찾을 게 분명해 보였다.


'여기서 그만두는 게 맞는 걸까?' 현경은 응급실에 누운 채로 그런 생각에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하은과 모텔을 들어간 걸 본 누군가의 폭로에 의해 하은과의 관계가 들통났던 이후로, 여러 상황들에 쫓기어 민재는 하은과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하은을 그의 모든 영역에서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하은이 도와주던 아버지 돌보는 일을 현경에게 부탁하면 될 것으로만 생각했었는데, 믿었던 현경마저 건강에 이상 신호가 나타난 것이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현경만큼이나 민재도 이 상황이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은이 지난 몇 달간 천연덕스럽게 수행했던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음을 민재는 깨닫는다.







이전 22화(소설) 오드 아이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