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드 아이 21

by 도라지

실리콘 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마치고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민재가 중학교 때부터 절친이었던 성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기는 미용실에 자재를 납품하던 사업을 하다가 신통치 않아서 접은 뒤로 개인택시를 하고 있다. 그의 사업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을 때 성기의 아내는 이혼 서류에 도장도 찍지 않은 채로 초등학교 동창생 남자와 도망치듯 집을 나갔다. 그때가 벌써 5년 전이다.


성기는 아내의 가출에 의외로 담담하게 마음을 정리하고 택시일을 시작했다. 작은 평수지만 성기 명의의 아파트도 있으니, 택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데 크게 지장은 없었다. 스물두 살에 결혼했던 성기는 스물일곱 된 간호사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활기찬 성기의 인상 때문에 사람들은 부녀지간을 자칫 남매지간으로 오해하기도 하고 간혹 나이차가 좀 나는 커플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성기야, 저녁에 소주나 하자."


민재가 전화를 먼저 걸어 소주나 한잔 하자고 청하는 날은 고민거리가 있으니 좀 들어달라는 뜻이다. 두 사람의 약속 장소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연탄불 구이집이었다. 성기가 연탄불의 매큼한 연기 앞에서 벌써 고기를 굽고 있었다. 소주부터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켜고 연탄불이 타들어가고 있는 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맥없이 지켜보고 있는 민재에게 성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요새 내가 잘못한 일이 하나 있어. 콜 손님 중에 육십이 조금 넘은 여자 손님이 있는데, 여섯 번이나 모텔로 가자는 걸 거절했더니 이젠 콜을 안 하더군.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잘못이란 생각이 든단 말이지."


민재가 연기 사이로 성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이 새끼, 순 사기꾼 아냐~ 이제껏 니가 가르친 말씀과 완전히 모순되잖아. 그래도 니 잘못을 알았다고 회개하는 꼴이라니, 아주 극악무도한 놈은 아닌 거네. 흐흐흐~"


민재의 입가에서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문성기는 부유한 집안에서 외동아들로 자라면서 신체 발육도 남달랐다. 축구를 좋아했던 성기는 큰 키는 아니지만 중학생 때부터 제법 체격도 있고 근육도 잘 발달해서, 그 시절에도 이미 수컷의 향기가 물씬 나는 선정적인 매력을 가진 놈이었다. 유복하게 자란 탓에 악착같은 구석이나 인색한 면모가 없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성기를 호인으로 인정하는 반면에, 같이 살던 와이프는 세상 물정 모르는 한심한 놈으로 답답하게 여겼을 수도 있다.


성기는 미용실에 자재를 납품하면서 그에게 추파를 던지는 미용실 원장들과 섬도 제법 많았지만, 와이프가 있는 동안에 외도다운 외도는 한 적이 없었다. 와이프가 통보도 없이 가출하고 얼마 뒤 자연스럽게 이혼절차를 밟았던 성기가 변한 것은 택시 일을 하면서부터였다. 성기는 여자가 원한다면 여자의 인물이나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그녀들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남자 된 도리라고 설파했다. 그리고 우주가 그에게 부여한 남자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산에 오르며 체력을 연마했다.


"남자라면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야지, 인마~ 네가 한번 연락하지 그래? 전화번호 있을 거잖아. 여섯 번이나 거절당했던 그 여자의 자존심을 네가 회복시켜주지 않는다면, 너 인마, 니 인생 모토 다시는 내 앞에서 주절거리지 마라, "


이제 내년이면 오십이 되는 두 남자가 중학생 사내애들처럼 킬킬거렸다. 둥그런 모양의 양은 테이블마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은 소주잔을 부딪히며 그들끼리의 신비한 자연세계의 사연들을 끝도 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성기야, 세 달 정도 만난 여자가 있는데, 내가 데리고 있는 조무사야. 나이는 마흔일곱이고 미혼. 대학은 안 나왔고. 그만 두려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단 말이지."


"왜 그만두려는 건데?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던?"


"역시 넌 재빨라. 예전 종합병원에 같이 근무했던 수간호사가 있는데, 돌싱 1년 차고 아주 똑똑하고 믿음이 가는 여자야."


"수간이랑은 자봤냐?"


"아니, 아직~"


"그럼 일단 수간이랑도 자 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아. 나처럼 결혼이나 연애가 목적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오민재 너는 나랑 다른 놈이란 걸 내가 잘 알지."


"꼭 자봐야 할까?"


"미친놈~ 이보십쇼, 의사 양반, 초혼도 아니고 당연히 니가 만나는 여자들은 다 너랑 결혼하려고 안달일 텐데, 속궁합 맞춰보는 건 성숙한 민주시민의 태도입지요~ 재혼했는데 속궁합 안 맞아서 또 이혼하고 싶진 않잖습니까? 우리가 어설픈 이십대도 아니고, 인생에서 섹스만큼 중요한 게 뭐가 있냐? 늙으면 돈도 필요가 없어요. 건강이 최고요, 건강하면 섹스하고 싶은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을 게 분명하니, 결론적으로 건강한 노년을 위해서도 속궁합 좋은 여자랑 만나는 게 행복의 우선 조건이라 이 말씀이지."


이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혼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에 대해, 민재와 성기도 일말의 책임감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민주 시민의 성숙한 태도 때문이 아니어도 민재는 현경과의 섹스가 궁금할 뿐 아니라 몹시 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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