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드 아이 19

by 도라지

점심 식사를 마치고 책임간호사 유민지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수술실 안에 딸린 휴게실로 들어섰다.


"잼난 뉴스예요, 팀장님~ 5병동에 노부부가 입원해계시는데요, 다른 호실에 입원하고 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 병실에 가셔서 그걸 하시다가 5병동 선생들한테 딱 들켰대요."


팀장 조은진은 썩 유쾌하지는 않으나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민지에게 추궁하듯이 물었다.


"1인실이었대?"


"아니오, 2인실요. 그것도 옆 침대에 다른 할머니가 계셨는데도 그랬대요. 커튼만 치고요."


병원 내에 모든 병실은 문이 잠기지 않도록 설계되어있다. 병실 안에 속해 있는 화장실만 사용자가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다. 은밀한 사생활을 원한다면 병원이 아니라 모텔이나 호텔로 가야 하는 게 맞지만, 우연한 접촉 사고 때문에 몸이 멀쩡한 상태로 부부가 나란히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병실에 입원해있는 당신의 마누라를 제멋대로 덮치는 행위는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조은진은 어느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를 보호자 할아버지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섹스를 하고 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났다. 요양원에 근무하고 있는 오래된 대학 동기 간호사 친구가 조은진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할 때 친구의 얼굴에 드리웠던 혐오는 은진을 섬뜩하게 만들었었다. 조은진은 문득 요양원 할아버지와 신화병원에 입원해있는 할아버지가 같은 인물이 아닐까 순간적인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요양원 친구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거기 입원 중인 환자와 보호자의 이름까지 물어보고 싶을 만큼의 흥밋거리는 아니었다.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고 있는 할머니와 성질이 여전히 칼칼한 할아버지가 타고 있던 택시가 아파트 입구에서 제네시스와 충돌하는 사고가 지난 토요일 오후에 있었다고 했다. 택시 기사는 뒷자리에 앉아있던 노인 부부가 안전벨트를 다 한 것으로 알고 출발했지만, 벨트를 어설프게 걸치고 있던 할머니는 두 대의 차가 서로 충돌할 때 몸이 들썩이며 택시 천정에 머리를 슬며시 부딪혔다. 옆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뒷목을 잡으며 머리를 부딪힌 할머니를 데리고 즉시 신화병원 응급실로 돌진했다. 그리고 MRI까지 다 찍고 난 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친 데 하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며칠 병원에 입원해 있기로 했다.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가 입원해있는 2인실에, 할아버지는 다른 남성 환자들이 있는 5인실로 각자 배정을 받았을 때 할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좋아한 쪽은 할머니였다. 그들 침상에 걸린 환자 신상표에 기록된 나이는 칠십 대 중후반이었다.


유민지의 호들갑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현경은 문득 잊고 있었던 세금고지서라도 발견한 듯이 민재를 떠올렸다. 칠십 대 후반의 할아버지도 수컷의 강렬한 본성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직 오십도 안된 민재가 하은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상준을 언제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가려는 건지 확실하게 날짜를 정하지 않고 이번 주라고만 얼버무렸던 민재의 태도가 여전히 미심쩍었지만, 현경은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 깊게 궁금해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기로 했다.


조은진의 사촌오빠인 신화 병원장은 칠십 대 초반이지만 꼿꼿한 풍채 덕에 언듯 보면 육십 초반으로 보이기도 한다. 병원장이 육십 먹은 간호이사랑 내연관계를 십여 년째 지속 중이라는 사실을 현경에게 은밀히 전달한 사람은 조은진이었다. 그리고 남편과 사별하기 전부터 남자를 사귀고 있던 조은진은 그녀가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현경에게 은근히 과시하기도 했었다.


직원들 앞에서는 사회적인 책무와 의료인의 명예를 중시하는 것처럼 떠벌리던 그들의 이면을 알고 있다는 것은 현경으로선 모르니만 못한 짓이었다. 은진은 현경의 무거운 입을 신뢰하며 온갖 음탕한 말들과 구린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았지만, 그것은 도덕적인 의식에서 비롯된 일종의 고해도 반성도 아닌 한갓 욕망의 또 다른 분출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현경은 이조시대의 성리학(性理學)이 사라진 자리를 현대판 성리학(性利學)이 맹렬하게 위세를 떨치는 우리 사회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조은진은 알지 못했다. 섹스리스 부부가 반을 넘는 이 사회에서 이혼을 택하지 않고 다른 상대에게서 성욕을 해소하는 것을 합리적인 가치관으로 배양시키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현경이 보기에 민재는 그나마 도덕적인 남자로 보였다. 하은과 민재와 현경은 모두가 싱글이라는 도덕적 베네핏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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