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드 아이 18

by 도라지

장 하은은 토요일 밤에 민재에게서 온 톡을 받고, 이별이 그리 멀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예감할 수 있었다. 민재가 보내온 톡의 내용은 일요일에 상준을 보살피러 오지 않아도 된다는 전갈이었다. 남자들이 하은에게서 떠나려 할 때 보이는 첫 번째 징후는 약속을 취소하는 것부터 시작되곤 했다. 하은은 그날 밤 민재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일요일에도 하은은 민재에게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민재는 평소대로 아침에 눈을 떴다. 오랜만에 불면증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조금은 수월하게 잠에 들어갔고, 꿈 없는 깊은 잠을 잤다. 하은의 몸속에 깊게 사정을 해서 얻게 되는 허무하고 나른한 만족과는 다른 생동적인 만족이 그의 세포 줄기의 마디마디마다 새롭게 생성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민재가 아파트 거실 창밖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며칠 전과 다를 바 없는 세상이 아침 햇살 속에 깨어나고 있었지만, 민재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민재는 어제 오후 현경이 냉장고에 넣어두고 간 죽을 전자레인지에 뎁히고 캡슐 하나를 커피머신에 집어넣었다.


민재가 출근할 때 하은이 여느 때처럼 원장실로 따라 들어와서 준비해 온 샌드위치와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하은씨, 이제 먹을 거 챙기지 않아도 돼요. 나 아침 먹었어요. 그리고 원장실 들어올 때는 꼭 노크하고 들어오세요. 이건 가지고 나가주면 고맙겠어요."


하은을 대하는 민재의 말투가 이틀 전과 달랐다. 하은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샌드위치를 오른손으로 쭈뼛거리듯이 도로 집어 들고는, 꾸중 듣는 학생처럼 입술을 옴짝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따뜻한 커피 좋아하시잖아요."


"아니오, 커피도 마셨어요. 내가 시키기 전에는 이제 업무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민재의 어조는 싸늘하고 단호했다. 저런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민재를 본 적이 있어서, 하은은 민재의 달라진 표정과 말투에서 두려움마저 느낀다.


"제가 뭐 실수라도 했나요?"


"그런 거 없어요. 내가 오히려 하은씨한테 잘못을 했죠. 앞으론 그럴 일 없을 거예요."

하은이 비록 고졸 조무사이어도 민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민재가 그녀를 모텔로 데리고 들어갈 때부터 이런 날이 올 것을 이미 짐작했지만, 현실로 마주하는 남자의 돌변함은 언제나 칼로 베이는 듯이 치명적이다. 두세 번 겪었던 일이니 이번에는 덜 상처받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남자가 주는 달콤한 꿀을 찾아 모텔방에 주저 없이 들어갔던 그녀지만, 이별은 수십 번을 해도 아프긴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민재는 전 아내에게서 아들을 낳고 둘째를 갖지 않겠다는 아내의 고집 때문에 십 년 전 정관수술을 했었다. 사정의 기술 부족과 콘돔의 기능 상실 및 여성의 의도적인 계획 등이 작동해서 남자가 원치 않는 임신을 시키는 상황 뒤에 발생하는 터무니없는 일들도 숱하게 목격했던 터라서, 민재는 길냥이들의 중성화 수술처럼 언제고 정관수술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던 사람이었다.


하은은 민재를 어찌해 볼 심산으로 민재에게 아침마다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던 게 아니다. 사 년 전 병원 개원 당시 오민재를 처음 본 순간의 기억이 하은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외국의 유명한 연예인 같은 남자가 그녀가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님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은은 자랑스러웠고 충분히 만족하며 살았다. 그랬던 원장님이 집안의 우환이 겹치면서 행려병자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모습이 가슴 아파서, 하은은 동정 어린 마음으로 민재의 아침을 챙겨주었다.


그러다가 민재가 그의 아버지 상준을 돌볼 사람이 없는 시간에 하은에게 부탁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은은 민재의 집까지 드나들게 되었다. 그리고 민재는 하은을 모텔까지 데리고 다니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의지할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 버려진 것처럼 외로워 보였던 외국 연예인이 이제 제정신을 차린 것이다. 하은은 감히 민재의 품에 안겨 민재가 그녀의 몸속에 사정을 했던 시간들이, 마치 꿈속에서 일어났던 일인 것처럼 벌써 아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은은 이제 민재를 남성으로 만난 흔치 않은 여자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아무나 민재와 잠자리를 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은은 더 이상 두 달 전 일개 고졸 간호조무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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