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 림의 탄생 11

(태풍 속 보라카이 여행기)

by 도라지

칼리보 국제공항 앞에 위치해 있는 현지 여행사에서 항공권 티켓팅을 마치고 나니 저녁 여덟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여행사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데 남편은 원장님 일행들과 수다를 떨며 즐거워한다. 모두들 편안한 얼굴들이었다.


칼리보를 떠나지 않는 이상, 현지 여행업체도 고객에 대한 책임이 있다. 티켓팅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쟈니가 나를 힐긋 쳐다본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세부행 티켓은 내일 새벽 5시 50분 항공권이었다. 그리고 세부 막탄 공항에서 인천공항 가는 티켓은 그다음 날 오후 4시 30분 출발 예정이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일정이었다. 쟈니가 다시 우리 팀을 이끌고 저렴한 숙소로 안내를 했다. 내일 새벽 세부행 비행기 탑승 시각까지, 공항에서 피난민들처럼 밤을 새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들 지쳐 있었다. 쟈니가 방을 배정해주는데, 우리 부부와 구글 지도 부부를 한 방에 몰아넣는다. 아무렴 어떤가? 그래도 화장실이라도 쓸 수 있고, 잠시라도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쉴 수가 있었다. 쟈니가 사다 준 컵라면으로 간단히 허기를 면하고, 몇 시간 후면 여기를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만족해했다.


새벽 3시에 모두 퀭한 모습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또다시 빗줄기가 가늘게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물방울만 봐도 무서워진 우리는, 새벽 3시에 이동하는 것쯤은 일도 아닌 듯이 움직였다. 어서 이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공항 건물 밖에서 쟈니와 정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원장님 일행들이 가장 오래 인사를 나누었다. 많이 싸울수록 정이 드는 법인가 보다.


공항으로 들어와 국내 수속을 밟았다. 캐리어도 다 실어 보내고 비로소 모두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을 때, 나는 우리 팀 열두명을 한 자리에 불렀다.


"5시 50분 비행기를 타면 세부 막탄 공항에 대략 아침 7시쯤 도착할 거예요. 인천공항 출발은 내일 오후 비행기니까, 우선 팀별로 한분씩 휴대폰을 켜고 호텔 예약을 동시에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미리 정해두었던 호텔 이름을 불러주고, 팀별로 그 호텔룸을 예약하도록 부탁했다. 호텔은 막탄 세부 공항에서 이십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공항까지 무료 픽업 서비스와 센딩 서비스가 가능하다. 가격 대비 썩 괜찮은 시설과 서비스가 자랑이다. 지난번 세부 여행 때 공항을 가면서, 눈으로만 보아두었던 호텔이었다.


내가 먼저 호텔 예약을 마친 후, 원장님 일행의 방은 두 개 예약하는 걸 거들었다. 구글 지도 부부는 별다른 질문 없이 잘하는 것도 같았다. 예약을 했느냐 물어보니, 그쪽 남편이 예약을 했다고 대답한다. 마지막으로 딸 둘 가족팀은 침대가 세 개 있는 방을 알아보는데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베드 사이즈를 확인한 뒤, 큰 침대 두 개가 있는 방을 예약해주었다. 물론 호텔 예약도 내 카드로 결제했다.


그날 칼리보 공항에서 호텔을 예약한 새벽은 다행히 화요일이었다. 호텔 룸은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호텔에 전화를 걸어 대충 상황 설명을 하고, 아침 일곱 시쯤 공항 픽업 서비스를 미리 요청해 놓았다.


한 시간 정도 비행한 후 우리는 드디어 막탄 세부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캐리어를 찾으러 이동하는 사이, 호텔에 전화를 걸어 픽업 서비스를 재차 확인했다. 우리 팀을 기다리는 호텔 셔틀 미니버스가 공항 앞에 서있었다.


호텔 버스에 올라탄 우리 일행들이 세부의 맑은 날씨에 감탄하는 사이, 버스가 호텔에 도착했다. 프런트에 가서 예약한 대로 룸을 배정받는데, 구글 지도 부부 팀은 예약자 명단에 없었다. 아까 사이트를 통해 예약할 때 비용이 결제되지 않아서, 예약이 성립되지 않았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부랴부랴 프런트에서 즉시 결제를 하는데, 아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예약하는 것보다 30%가 비쌌다.


모두들 각 팀 별로 방을 안내받고 올라갔다. 나는 방에 올라와서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오후 일정을 생각해본다.


구글 지도 부부는 피곤해서 호텔에서 쉬겠다고 했다. 호텔 프런트에 가서 미리 지프니를 예약한 뒤, 총 열명을 태운 지프니를 타고 시내 쇼핑타운 쪽으로 이동했다. 쇼핑 타운에 각 팀을 풀어놓으며, 다섯 시에 여기서 다시 모이자고 약속을 했다. 석양 무렵에 제이파크 리조트로 가면 얼추 시간이 맞을 거 같았다.


우리 부부는 지난번 세부 여행 때 이미 여기를 다녀 갔었다. 그래도 또 다른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게 나쁘지 않았다. 제시간에 모인 사람들을 태우고 필리핀 대통령도 왔다 갔다는 제이파크 쪽으로 향했다. 바다는 아직 푸른 빛이었지만, 곧 노을이 지려고 준비 중이었다.


제이파크에 머문 적은 없지만, 우리는 이미 여기도 다녀갔었다. 리조트 내 구석구석 안 다녀본 데 없이 소상히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리조트 안에서 가장 전망 좋은 해변가 카페로 안내했다. 우리 팀원들이 탄성을 지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원장님 일행 중 한 여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쟈니 림, 여기가 천국이네요~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쟈니 림? 나는 처음 듣는 말인데, 남편은 자기 이름인 양 즉각 대답을 한다.


"그렇죠, 원장님?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자, 고객님들, 한 분씩 포즈 한 번 잡아보세요. 제가 찍어드리겠습니다~"


내 남편은 임씨 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어제 저녁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은 가이드 쟈니의 이름을 물려받아 쟈니 림으로 불리고 있었나 보다.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치렁치렁한 꽃무늬 원피스들을 차려입은 네 명의 여자들이 번갈아 가며 포즈를 취했다. 쟈니 림이 사진작가라도 된 냥 요란을 떨며, 그녀들에게 "뷰티풀~ 원더풀~"을 남발했다. 그래 봐야, 쟈니 림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어떤 원장님의 아이폰이었다. 한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위로 노을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진짜 뷰티풀, 원더풀이었다.


(2021년 10월 5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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