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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구슬 Aug 29. 2024

프로이직러 시작은 13살부터

1. 20년동안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얘들아 나 몸과 마음이 편한 한의원에 합격했다.

8일부터 일하러 오래


명우디(명희여고 우정은 디질때까지) 단톡방에 이직사실을 알렸다.


프로이직러 박구슬

축하한다.

진짜 이직도 척척 잘하네!

명우디에서 개그를 맡고 있는 유리가 축하를 해주며 나에게 프로이직러라 말한다.


프로이직러

나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일하는 사람이 되기 싫었다.

한 곳에 진득하게 일하며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일하는 사람은 별로였다.

성격마저 좋지 못할거라는 선입견까지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나는 한 곳에 진득하니 붙어서 일할 거라 생각했던 20대와는 다른 삶고 살고 있었다.



대학졸업 후 6년 동안 일했던 면세점, 결혼 후 남편 빚 때문에 시작한 약국직원, 이혼 후 먹고살기 위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한의원에서 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예상치도 못한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일으켜 세운건 살아있으니 해야만 하는 일상이었다.



중간중간 부수입을 만들기 위해 도전했던 블로그와 스마트스토어, 공모주청약, 브런치스토리 작가,

아차차 몇 달 전에는 쿠팡에서 알바도 해봤다.

연봉을 올리기 위해 병원 실장자리에 이력서를 내고 한 번에 이직에 성공했지만 병원 폐업의 순간까지 단 하루도 마음이 평온한 적 없었던 순간들.

환자가 없을 때 게임을 해도 되는 한의원에 입사한 3주 전까지.

이 모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인생이 그런거겠지.



 사람들은 이렇게 믿는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하지만 어쩌면 정해진 미래가 수많은 과거를 만든 건 아닐까?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고 정해진 미래가 있기 때문에  과거의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평온한 일을 하기 위해 수많은 과거가 필요했던 것일까?

환자가 없는 이 시간 브런치글을 쓰는 나는 3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20년 동안 이곳에서 일해보자 마음먹는다.




유리가 나에게 말한 프로이직러란 카톡을 유심히 보다 보니 그간 일했던 곳에서의 에피드들이 생각났다.

짧은 순간에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가슴이 설레기도 했으며 웃음이 피식 나오기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만들어진 프로이직러라는 명함을 풀어보니, 그 시작은 13살부터였다.







13살 초등학교 6학년

내 첫 직장? 은 피자가게였다.


친구가 저번주에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3천 원을 벌었다고 한다.

'오? 좋은 아파트에 사는데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구나'

'나도 한번 해볼까?'

좋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니 당시 나는 돈 때문에만 일을 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아파트 우유투입구에 피자가게 홍보 전단지를 넣으면 되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게 왜 그리 좋아 보였는지 나도 할 수 있게 해 달라 부탁했고 우리는 다음 주 토요일 함께 전단지를 돌렸다.


지금이야 미성년자는 일 할 수 없다지만 그 당시는 그런 게 없었는지 피자가게 아주머니는 나를 고용했다.

나를 안쓰럽게 보셨을까?

42살이 되어 아르바이트하는 13살 구슬이를 보니 돈 때문에 한 건 아니라고 해도 뭔가 모를 찡함이 가슴에 박힌다.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

아파트 꼭대기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며 전단지를 넣었다.

진짜 열심히 일 했다.

힘들긴 했지만 뭔가 모를 뿌듯함도 느꼈었다.

(이걸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을 마치고 피자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우릴 보며 열심히 잘해줬다며 피자를 만들어주셨다.

다른 애들 같으면 전단지 다 버리고 다 돌렸다고 거짓말했을 텐데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며 칭찬을 마구 해주셨다.

칭찬과 함께 먹는 피자라니 꿀맛이었다.

친구와 피자 한판을 뚝딱하고 천 원짜리 3장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29년이 지난 며칠 전 엄마에게 이 이야기가 기억나나며 물었다.

어제 뭐 먹었는지도 잘 기억 못 하는 엄마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셨다.


"엄마 내가 그 날 천원짜리 3개 들고 왔을 때 기분 어땠어?"


"내가 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참 기특했지.

13살짜리가 어떻게 그런생각을 했을까? 싶었다."


"엄마 나는 그 날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았어.

어린이라고 항상 불렸던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치 어른이 된 것 같았지."




13살 딸이 벌어다준 3천 원.

나도 딸이 생겼으니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뭔가 찡하면서도 얼마나 대견스러웠을까?


3천 원을 들고 온 나에게 아빠는 선물로 담배 한 갑을 사 오라고 했고 그 말에 눈을 흘기던 엄마 모습이 생생하다.


그 3천 원을 고이고이 모셔둔다 했는데 어디로 가버린 걸까?






오늘은 친정엄마와 딸과 함께 피자를 먹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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