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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n 17. 2023

발리의 백인 엄마들

내가 결혼을 한다면

바닷가로 혼자 저녁을 먹으러 왔다. 해피아워라 맥주 1+1으로 시키고 피쉬앤칩으로 불금을 보낸다. 맨발로 모래를 느끼며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비현실적이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손은 끈적거린다. 금주를 선언한 이후로 나는 맥주 반 병만 마셔도 취하는 가성비 좋은 알쓰가 되었다. 저렴하게 취할 수 있어서 좋다.

피쉬앤칩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아이들의 소리가 멍멍하게 들린다. 내가 사는 사누르는 특히 어린 아이들과 가족이 많다. 결혼을 하고 싶어서일까? 발리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이 가족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먹고 살까? 원초적인 궁금증이 든다.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면서 살길래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이 곳, 발리에서 살고 있는걸까?


우리 집 바로 앞에도 키즈카페가 있다. 산책을 하다보면 자전거에 아이를 태우고 카페를 오가는 엄마들을 볼 수가 있다. 이 엄마들은 집에서 무엇을 할까? 아이를 돌봐주는 베이비시터가 있고, 청소를 해주는 사람이 있을테고, 빨래는 세탁소에 맡길텐데. 아이를 둘러매고 다니는 아빠들도 종종 보인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이 곳에서 사는걸까?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렇게 살고 싶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춤추며 아이를 키우고 싶다. 한국에서 그렇게 어려웠던 결혼이, 또 육아가 발리 와서 매우 분명해졌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를 낳고 싶고, 나의 가족들과 함께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싶다.


나는 결혼과 육아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결혼을 하면 자유롭게 살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좋은 본보기가 없었던 이유도 크다.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사람보다는 그게 얼마나 힘들고, 많은 책임감을 요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니까. 최소한 내 주위에선 그랬으니까.


10년 전 태국-캄보디아 배낭여행을 하다 알았다. 결혼을 해서도, 아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서도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후로 내 꿈은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하기'였고, 가족을 꾸린다면 배낭여행을 꼭 하고 싶었다. 그걸 이해하는 남자친구는 별로 없었다.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도 했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결혼생활을 접었다. 남들이 안된다고 하니까. 그걸 원하는 남자는 없을거라고, 그렇게 사는 건 아주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 가능한거라고. 그렇게 잊고 있었던 내 욕망이 여기 사누르에서 다시 살아났다. 온 가족들과 함께 발리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심지어는 흔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많다.



여기 발리에 사는 백인 엄마들처럼, 나는 지구별 곳곳에서 사는 한국 엄마가 될 것이다. 요가도 같이 다니고, 키즈카페도 가고, 서핑도 하고, 강아지도 키우고. 아무리 어려도 자기 짐은 자기가 들게 해야지. 작은 끌낭을 들게 해야지. 나는 그렇게 지구촌을 집을 삼아 살아야지. 알딸딸한 기운을 빌려 내가 꿈꾸는 결혼과 출산 이야기를 하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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