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장난감이 없어서 집안의 소품으로 노는 일상이 허다했다.
종이와 펜이 있으면 어떤 놀이도 가능했다. 그날은 종이와 펜으로 돈을 직접 만들어서 시장놀이를 했다.
종이돈 삼천 원씩을 5세트 공평하게 만들어서 언니들과 놀았다. 이불과 집에 있는 조리기구 등을 활용해서 각자의 집을 꾸몄다.
약국, 세탁소, 병원, 도넛 가게, 등을 했고 나는 세탁소를 했다. 집에서 안 쓰는 막대기 두 개를 구해와서는 빨랫감을 하나씩 다리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빨래요청을 하는 손님을 맞이했고, 500원의 종이돈을 받으면 세숫대야에 빨래를 담고 개울가에 온 것처럼 열심히 주물럭거렸다. 어른이 된 것 같은 모습에 우쭐해지기도 했다. 두꺼운 작은 책으로 빨래를 다리는 시늉을 하던 그 시간이 참 즐거웠다.
방안에 책장 위에는 검은 고양이가 그려진 상자가 있었는데 그때는 그 그림이 너무 무서웠다. 언니에게 자꾸만 위에 있는 검은 고양이가 나한테 올 것 같다고 속삭였다. 부모님께는 무서우니 고양이 상자를 없애 달라는 얘기를 하면 혼날 것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을 꾹 눌러 담았다.
침울해하는 나를 보면서 셋째 언니는 ‘검은 고양이’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해주었다.
“검은 고양이는 너무 배가 고팠어. 길을 가다가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휘둥그레진 눈으로 음식을 찾아다녔거든.”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서움의 그늘은 조금씩 걷어졌다.
일상을 나누었던 사소한 놀이가 지금은 마음속에 깊은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은 노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친구들과의 자리를 마련하거나 엄마가 직접 노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 어떤 교육 없이도 언니들과 자연스럽게 같이 놀고 웃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집에 있는 과자를 실로 연결해서 빨랫대에 걸은 뒤에 먼저 뛰어가서 과자를 먹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도 함께했다.
우리는 함께 노는 날이면 웃음이 흘러넘쳤다. 과자를 하나씩 실로 매달아서 가위로 자르는 과정도 직접 해서 재밌었다. 누군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노는 방식을 설명하며 알려줬다면 재미가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노는 방식을 생활 속에서 익혔다.
요즘 초등 아이들은 학원에 다녀오면 7시가 넘는다. 놀 시간이 적은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초등학생이 늦게까지 수업이 있는 것이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 일이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즐거운 추억과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