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을 다니는 10살이 되면 첫 영성체를 하게 된다. 첫 영성체를 하게 되면 미사 시간에 500원 동전 크기의 밀떡처럼 생긴 성체를 직접 손에 받아서 먹을 수 있었다. 미사 때 언니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도 빨리 첫 영성체 교리를 해서 성체를 모시는 걸 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첫 영성체를 하려면 몇 달에 걸친 교리를 이수해야 하는데, 4개월 동안 매일 성당에서 기도문을 외우면서 교리 수업을 다니는 일정은 초3 아이에게는 버거웠다.
첫 영성체 식이 있는 날에는 여자아이들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남자아이들은 하얀색 와이셔츠에 깔끔한 정장 복장으로 참여했다. 첫 영성체 예식을 할 때 하얀색 드레스를 입는 언니들이 공주님 같아 보였다. 발목까지 오는 긴 드레스에 하얀색 미사 포를 머리에 쓰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나 다름이 없었다.
매일매일 참석해야 하는 첫 영성체 교리가 힘들었지만, 하얀색 드레스를 입는다는 생각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교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엄마는 첫 영성체에 입을 긴 드레스를 만들었다. 내 키와 어깨선의 크기를 재단해서 단순한 디자인의 드레스가 완성됐다. 늦은 오후에 엄마는 드레스를 만들어 놓으시고 잠시 시장에 가셨다. 나는 드레스를 한번 입어 보고 싶었다. 혼자 있는 집에 곧이어 아빠가 오셨다. 집에는 LP 음악이 있었는데 아빠는 클래식을 즐겨 들으시곤 했다. 집안 가득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일이 많았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둔 드레스를 입어 보고 안방의 거울에서 뱅글뱅글 돌며 드레스를 감상하고 있었다. 늘 어려운 존재인 아빠가 거울 앞에 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꼬망아 춤출까?”
“네?”
엄하고 무섭게 보였던 아빠가 나한테 먼저 다정하게 말을 걸어줘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빠가 나에겐 어려운 존재여서 내가 먼저 뛰어가서 안겨본 기억이 없다. 아빠는 언니들보다 부족한 나를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 주저하던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한 스탭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박하게 뻗은 손이 음악에 맞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는 손을 잡은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만큼은 아빠에게 한심한 딸이 아니었다. 아빠와 나의 이 시간은 포근한 공기로 채워졌다.
파티에 초대된 순백색의 공주님과 왕자님이 수줍게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뛰어서 아빠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무도회에 초대된 공주님이 되어 아빠의 손을 잡고 사뿐히 걸었다. 거실은 한순간에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반짝였다. 움직이는 곳마다 싱그러운 꽃들이 하나둘씩 피어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향기는 차올랐고 우리가 함께 춤추는 집안의 공간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가면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어린아이들을 볼 때가 있다.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면 그 시절 아빠와 함께 한 다정한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