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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망 Jul 29. 2024

불화전쟁

“내가 왜 이 사람이랑 결혼해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내 말에 하나도 지지 않고 자기주장을 꾹꾹 얘기하는데 숨 막혀. 나보고 자꾸  판단이 잘못됐다고 지적하잖아. 요즘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화가 더 치밀어 견딜 수가 없어.”     


남편의 사업을 돕는 친구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종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일거수일투족으로 사사건건 부딪침에 버거워했다.     


“내가 그렇게 단호하고 완고하게 말하는 거 싫다고 했는데 또 그러는 거 있지? 사람이 왜 안 바뀌는 것인지…. 내 시간을 조금 갖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하나도 안 생기고 자꾸 지쳐가. 아무래도 나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어쩌면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결혼 전에는 나에게 너무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현실의 일상을 함께 하면서부터는 그동안의 애틋한 감정이 무색해지리만큼 상대에게 느끼는 사랑스러운 감정이 점점 사그라들었다.

서로의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점이 되어서는 왈칵 짜증이 차올라 불화가 밀려왔다.     

상대에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으르렁거렸다가 괜찮았다가 하는 행동은 아마도 오랜시간 무기력했던 마음의 변덕 때문일지도 모른다. 결혼생활의 미덕은 성실함과 책임감 아닐까.     


“아무래도 남편덕질을 해야 할까 봐. 얼마 전에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정주행 하면서 선재 덕질 제대로 했거든.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건 너무 힘들잖아. 사랑 안 하는 건 아닌데 함께 살면서 원망이 가득 차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아이들과 살려고 남편 덕질 하는 거지. 남이랑 같이 인생을 꾸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부모가 된 어른이 되어서부터는 순간의 울컥하는 감정보다 함께하는 가족을 위한 책임감이 더 중요했다. 매일 똑같은 싱거운 일상에 책임감이 점점 짙어지는 게  버겁기도 한 나는 그렇게 중년의 어른으로 영글어갔다.


저녁 시간에 숙제하던 둘째 아이가 침대에 기대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는 참 좋겠다. 숙제도 없고 눕고 싶을 때 누워있고 원할 때 핸드폰 볼 수 있어서 참 부러워요.”

“그래? 엄마는 연아가 참 부러운데, 숙제만 하고 넌 놀 수 있잖아. 엄마는 빨래랑 설거지랑 내일 반찬까지 해야 하거든. 앗! 문제집 채점을 깜빡했네.”

“그래도 엄마 부러워.”     

부럽다는 말을 하면서 입을 삐죽거리며 숙제하는 아이의 모습이 창문에 드리워졌다.     


‘그래. 그때 나도 엄마가 부러웠어.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내 마음보다 너희와 함께 하는 게 엄마는 더 중요해.’     


빠른 손놀림으로 그릇을 달그락 설거지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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