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망 Sep 23. 2024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명절을 앞두고 친정에 다녀왔다. 거실에 보이는 커다란 달력에는 빨간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었다. 8월에는 둘째 아이 생일이었는데 엄마는 아침 일찍 나에게 전화했다.   

  

“오늘이 연아 생일이네. 할머니가 선물 사러 가는데 직접 주고 싶고 연아 궁금해서.”

“아. 어쩌지? 엄마 오늘은 일정이 있어서요. 조만간 우리가 친정에 갈게요.”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의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친정에 자주 들르곤 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색연필과 큰 달력을 가져오셔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그러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된 후로 학원 일정이 많아지자 친정 방문은 뜸해졌다.     


“내 생일에 빨간 풍선표시가 많이 돼 있네요?”     


둘째 아이가 달력표시를 보고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반짝였다.

    

“연아 생일이라 할머니가 여러 번 표시한 거야. 얼마나 기다렸는데!”     


할머니의 눈빛을 보며 아이는 사랑스럽게 안겼다.     

친정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흰쌀밥에 김치를 꺼내 인색하게 차린 식사를 하고 계셨다.

 우리가 함께 살 때는 아침 식사와 식전 채소를 꼭 챙겨주고 여러 가사도 열심히 하셨다. 그때에는 자매들이 엄마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계신 후부터는 본인의 식사도 대충 드시고,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누군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나이가 들었을 때 아이들 없이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됐다.

육아를 하면서 어려운 면도 많지만 활기를 갖고 움직일 수 있는 건 아이들을 통해 얻는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얼마 전 치매 예방 검사를 받고 온 엄마는 모든 수치가 정상이지만, 인지를 위해서 매일 일상을 얘기하고 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언니들은 매일 엄마에게 전화해서 일상대화를 주고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먼 거리 핑계로 엄마를 챙기는 건 늘 뒷전이었다.     


식물원 관람을 하고 주변에 새로 오픈했다는 카페를 찾아갔다.

넓은 자리와 큰 창문이 초록에 가득한 밖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주문한 커피와 초콜릿 케이크가 나왔다.     


“여기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 커피가 오늘따라 참 맛있네.”     


진한 커피 향을 맡는 엄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친정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마의 외로운 표정을 볼 때가 있다. 화분의 꽃을 키우는 엄마는 물을 주면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린다. 어릴 때는 자녀들에게 기대는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막상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서부터는 자식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엄마의 상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빠 없이 엄마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많은 자녀가 원동력이 되어 바쁘게 움직였던 엄마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커피 한 잔에 소녀처럼 밝아진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에 각박한 내 모습이 떠올라 겸연쩍은 웃음을 보였다.      


초콜릿 케이크가 달콤하고 맛있다며 환히 웃는 엄마 얼굴이 오늘은 더 빛이 난다.              

이전 26화 숙제의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