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으로 이사한 친구와 통화했다.
“동네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워. 춤을 좋아해서 댄스수업 들으러 갔는데 다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더라.
무슨 사연으로 혼자 있는 건지 계속해서 물어보더라고.”
서울에서의 사회생활이 지쳐서 친구는 지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바쁘고 정신없는 인간관계에 지칠 무렵 TV에서 시골살이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고 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회사 다닐 때는 프리랜서 하면 자유의 몸일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게 일하니까 정말 사람을 안 만나게 돼. 이래도 되나 싶어. 막상 알게 되는 사람마다 질문세례에 지쳐가. 사람한테 질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는 다른 피로감이 있네. 무엇보다 터놓고 내 일상을 얘기할 사람이 없다는 게 슬픈 것 같아.”
한적한 시골 동네로 이사한 게 후회됐는지 친구는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밥을 먹으러 가면서도 무슨 사연이 있어 여기 온 건지 취조하듯 물어보는 게 너무 싫더라고. 싱글이 죄는 아니잖아! 질문이 쌓인 숙제처럼 끝이 없어.”
혼자 사는 본인에게 질문이 끝없다고 했지만, 인생의 숙제에 대한 질문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아닐까.
“결혼 언제 해?”
“아이는 몇 명 계획해?”
“아이들 성별이 달라야 엄마가 좋은 건 알지?”
“대학은 어디 갔어?”
“애들 취업은?”
문득 타인의 계속된 물음을 차곡차곡 실행하는 것이 완성된 삶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질문도 듣지 않는 게 나은 삶인 걸까.
인생의 숙제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서 하지만 노년의 삶에 대해선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모든 숙제가 끝난 노년의 삶이라서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인생의 숙제가 끝난 나이라 더 이상의 희망도 어떤 해야 할 것도 없는 게 노년이라면 그만큼 쓸쓸하고 서글픈 게 있을까.
아무런 기대 없이 지금껏 해온 숙제를 계속해서 곱씹는 게 아니라 잔잔한 일상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설레게 보내고 싶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
누군가 찾아오길 쓸쓸히 기다리는 노년이 아닌 그때에도 새로운 친구와 나의 일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끈기가 내 인생의 숙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