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국민학교의 시구는 이번에도 기태가 맡았다. 누구도 그를 대적할 수 없을 거란 예감이 아이들 사이를 스쳤다. 역도 유망주로 알려진 그의 몸집은 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어른의 그것을 닮아 있었고, 그의 손은 구슬을 마치 장난감처럼 다루었다.
“또 기태야?”
강호 국민학교의 부반장 철수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 녀석은 힘이 장사라니까. 우리한테 이길 방법이 있을까?”
누군가 대답하려 했지만, 그 순간 기태가 굵은 손가락으로 구슬을 튕겨냈다. 구슬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더니, 바람에 실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부드럽게 굴러 첫 번째 홀 근처에서 멈췄다. 아이들은 숨을 멈췄다.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기태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철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철벽이 따로 없구나. 대체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강호 국민학교의 희망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철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동진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동진아, 네 차례야.”
동진이는 그의 신호에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잘할 수 있어,”
동진은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그러고는 구슬을 손가락 끝에 올려놓았다. 동진은 구슬을 쥔 채 순간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의 기대와 긴장이 허공에서 맴돌았다. 구슬을 튕겨내는 짧은 순간이 시간의 틈새에서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구슬이 날아갔다. 공중을 가르며 날아가는 구슬은 운명의 한 점처럼 첫 번째 홀을 향해 똑바로 굴러갔다. 철수와 아이들의 숨소리마저 잠잠해졌다. 그리고, 구슬은 마침내 홀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순간, 강호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들어갔다! 동진이가 해냈어!"
그들의 목소리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처럼 넓게 퍼져나갔다.
철수는 눈을 반짝이며 동진이에게 다가갔다.
“정말 대단해, 동진아. 네가 우리를 살렸어.”
동진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하지만 모두가 알았다. 그날 동진이의 구슬은 그저 행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적을 믿는 아이들의 간절함과, 이기고자 하는 의지가 만든 작은 승리였다.
이제 승부는 두 번째 홀로 이어졌다. 장미 국민학교는 서둘러 선수를 교체했다. 이번엔 야구부의 민수가 나섰다. 민수는 평소 보여주던 침착하고 안정적인 플레이로, 구슬을 손에 쥐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민수의 손끝을 따라갔다. 그의 동작은 확실했고,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구슬은 민수의 손끝에서 부드럽게 튕겨져 나가 홀 가까이에 멈춰 섰다.
"역시 민수는 다르네."
장미 국민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작은 감탄이 흘러나왔다.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진을 향해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동진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이미 첫 번째 홀에서 얻은 자신감을 그대로 간직한 채였다.
“이번에도 한 번 해볼까?”
동진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그는 구슬을 천천히 쥐고, 단 한번의 손짓으로 그것을 내보냈다. 그 순간, 아이들의 시선은 다시 한 번 구슬의 움직임에 집중되었다.
구슬은 마치 이미 정해진 길을 따르듯, 정확히 두 번째 구멍 속으로 또다시 들어가 버렸다.
순간적으로 고요함이 휘감겼다. 그 후에 터져 나온 것은 강호 초등학교 아이들의 환호성이었다.
“들어갔어! 동진이가 또 해냈어!”
그들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장미 국민학교는 긴장했다. 민수의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강호 초등학교의 흐름을 막아낼 수 없다는 불안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장미 국민학교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미애를 내보냈다. 그녀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동진이를 주시하며 구슬을 손에 쥐었다. 미애는 신중하게 자세를 잡고, 조심스럽게 구슬을 튕겼다. 구슬은 힘차게 굴러갔지만, 이번에는 목표를 벗어나고 말았다. 미애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그 순간 아이들 사이에 실망 섞인 탄식이 퍼졌다.
동진이는 마지막 구슬을 손에 쥐었다. 한 번의 기회로 경기가 끝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손끝의 감각을 느꼈다. 구슬의 차가움이 손끝을 타고 퍼지며 머릿속을 맑게 했다. 그리고 동진이는 조용히 구슬을 날렸다. 구슬은 여전히 그가 선택한 길을 따라갔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운명의 손짓처럼 정확하게 마지막 홀로 빨려 들어갔다.
강호 초등학교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숨을 죽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한껏 기쁨을 터뜨리며 동진이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가 이겼어! 동진이가 해냈어!”
그들의 목소리는 승리의 북소리처럼 퍼졌다. 동진이는 그들의 환호 속에서도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힘이 아닌 집중과 끈기가 만들어낸 승리였다.
날이 점점 어둑어둑해졌다. 저녁 어스름이 경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임을 알리는 듯, 하늘은 붉은빛에서 어두운 남색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부반장 철수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둘러 경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경기장 주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흥분과 피로가 뒤섞인 표정으로 강호 국민학교의 승리를 실감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철수의 머릿속에서는 이 날의 승부가 연이어 떠올랐다.
첫 번째 판은 생각보다 쓰라렸다. 500개의 구슬을 잃은 패배는 그동안 쌓아온 모든 전략과 노력이 무너진 것 같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철수는 그때만큼은, 자신도 이대로 패배를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철수는 마음을 다잡고, 다음 판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판에서, 동진이는 완벽하게 기적을 만들어냈다. 운명을 거슬러 역전하는 순간처럼, 한 번의 플레이로 1,000개의 구슬을 따내며 강호 초등학교는 다시금 희망을 되찾았다.
“이제 우리 구슬이 3,500개가 됐어,”
철수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말하며 손으로 남은 구슬들을 확인했다. 구슬들이 철수의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차가운 감촉이 오늘의 승리와 패배의 무게를 느끼게 해 주었다.
아이들은 그 말을 듣고 기쁨에 찬 표정을 지었지만, 철수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우리는 이겼지만, 이 승리도 영원하지는 않겠지.'
철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구슬을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오늘 얻은 승리 뒤에는 또 다른 도전이 있을 것이고, 도전 앞에서 다시 한번 싸워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구슬 게임은 이제 그저 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작은 세계에서 그들의 용기와 의지를 시험하는 싸움이었다.
“철수야, 이제 다 끝난 거지?”
동진이가 다가와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승리의 기쁨이 가득했지만, 피곤한 눈빛 속에는 안도감도 엿보였다.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다. 우리 잘 싸웠어.”
그들은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이 서서히 마을을 덮어가고 있었다. 하지만어둠 속에서도 강호 국민학교의 아이들 마음에는 빛나는 구슬처럼 작은 승리의 기쁨이 살아있었다.
2차전 상대는 소림 국민학교였다. 소림 국민학교는 새로 들어서는 바닷가 아파트 단지에 자리하고 있었다.그래서인지 부잣집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번쩍이는 새 옷을 입고, 손에 들린 물건 하나까지 고급스러움이 배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고아원에서 온 아이들도 꽤 있었고, 그들은 삶의 현실에서 다져진 실력과 구슬을 모으는 데서 오는 절박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소림 국민학교는 구슬물량과 실력을 겸비한 강자들이었다. 이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첫판을 앞두고 소림국민학교는 예상치 못한 제안을 던졌다.
"2,000개의 구슬로 시작하자."
그들의 리더 태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강호국민학교의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2,000개라는 숫자는 이들에게는 터무니없이 큰 판이었다. 그동안의 경기에서는 500개 정도가 보통이었고, 1,000개는 큰 판에 속했다. 그런데 2,000개라니, 예상 밖의 제안이었다.
반장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도 알고 있었다. 이건 그저 구슬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매일 구슬을 따내야만 했고, 그것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라면을 사 먹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였다. 구슬은 그들의 일상이자, 생존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2,000개라는 숫자는 너무 컸다.
‘무리한 게 아닌가?’
반장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2,000개는 너무 크지 않아?”
동진이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긴장된 표정으로 반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반장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눈앞에 놓인 선택지에서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다.
“목표는 매일 1,800개의 구슬을 따는 거야. 그 목표만 이룬다면, 한판으로 오늘의 승부를 끝낼 수 있어.”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의 목적은 구슬을 모으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작은 싸움이었다.
반장은 소림국민학교의 제안을 수락하며 말했다.
“좋아, 2,000개로 하자. 우리도 큰판을 준비했으니.”
그의 말에 강호국민학교의 아이들은 긴장된 표정 속에서도 결의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국민학교의 아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에게도 이 승부는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과 물량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이렇게 두 학교 사이의 긴장감이 한층 고조된 채,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 판은 구슬놀이 그 이상이었고, 그들의 운명이 걸린 싸움이었다.
경기는 첫 판의 긴장감과는 또 다른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소림국민학교의 초구를 맡은 선수는 다름 아닌 핸드볼 유망주 태성이었다. 태성이는 그동안 정교한 기술과 강력한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 온 강자로,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오는 구슬은 정교한 기계처럼 정확했다. 그의 손가락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구슬을 튕겨냈고, 구슬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원하는 길을 따랐다.
“이번엔 태성이가 나오는군. 만만치 않겠어.” 강호국민학교의 아이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속삭임이 긴장감을 더 고조시켰다.
하지만 강호국민학교에서도 만만치 않은 선수가 나섰다. 넘버 3 영주였다. 영주는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지만,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침착함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특유의 차분함은 경기 내내 강호국민학교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영주는 천천히 걸어 나와 구슬을 손에 쥐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구슬의 차가움이 그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잘할 수 있어.”
영주는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구슬을 쥔 손을 더 강하게 쥐었다. 그는 이미 여러 번의 승부를 겪어왔지만, 이번 판은 그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상대는 태성이었고, 그가 내뿜는 기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영주의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태성이는 가볍게 웃으며 구슬을 손끝에 올렸다.
"넌 내 상대가 안 될 거야."
그는 자신감 가득한 눈빛으로 영주를 바라보며 구슬을 튕겨냈다. 그의 손끝에서 날아간 구슬은 곧바로 목표를 향해 굴러갔다. 구슬은 그가 원하던 대로 정확히 홀 근처에서 멈춰 섰다. 소림국민학교 아이들은 그 순간 작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태성이야.’
그들의 마음속엔 이미 승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영주는 환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구슬을 손에 쥐고 숨을 고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경기의 모든 순간이 그에게는 승부 그 이상이었다. 구슬을 던지는 순간마저 그의 인생의 일부분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구슬을 손끝에 올리더니, 침착하게 구슬을 튕겨냈다. 구슬은 영주의 마음을 읽은 듯, 침착하고 안정적으로 굴러갔다.
아이들은 숨죽이며 구슬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구슬은 완벽하게 목표를 달성했다. 홀에 쏙 들어간 구슬은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소림국민학교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태성이조차 당황한 듯 그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강호국민학교의 아이들은 잠시의 침묵 뒤에 크게 외쳤다. "해냈다! 영주가 해냈어!"
그들의 목소리는 하늘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영주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에는 자신감과 여유가 담겨 있었고,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강한 존재로 보였다.
경기는 긴장감 속에서 이어졌다. 태성과 영주는 둘 다 강력한 장타를 날리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방향으로 구슬을 보냈다. 두 사람 모두 침착하게 구슬을 다루며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의 흔들림도 허락하지 않는 싸움이었다.
첫 번째 홀에서의 치열한 접전은 이미 많은 땀을 흘리게 했지만, 그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두 번째 홀에서도 선수 교체 없이 맞붙었다. 구슬의 방향을 예리하게 계산하며 날리는 그들의 손끝은 숙련된 장인의 도구처럼 정확했다.
"태성이 정말 대단한데, "
강호 국민학교의 한 아이가 속삭였다. 하지만 이번엔 영주가 서서히 우위를 보였다. 그의 차분함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작은 동작 하나에도 집중하며, 영주는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구슬은 다시 한번 그의 손끝에서 튕겨져 나가, 완벽한 궤도를 그리며 두 번째 홀에 정확히 안착했다.
순간, 강호 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경기를 지켜봤고, 태성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잘했어, 영주야!”
철수가 외쳤다.
하지만 소림국민학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전략적으로 선수를 교체했다. 이번에 나선 선수는 서울에서 전학 온 준호였다. 준호는 자전거 곡예로 유명한 천재였고, 그의 놀라운 균형 감각은 이미 소문이 자자했다.
“자전거 곡예와 구슬놀이가 무슨 상관이야?”
동진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철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곧 알게 될 거야. 저 녀석은 균형 감각이 뛰어나서, 구슬도 그저 정확히 날리는 게 아니라 마치 자신의 손끝에서 방향을 완벽하게 조종하듯 다룰 거야.”
준호는 구슬을 천천히 손에 쥐었다. 그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고, 손끝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집중력이 경기에 그대로 드러났다. 마치 자전거 핸들을 조종하듯, 그는 구슬을 조심스럽게 손끝에서 튕겨냈다. 구슬은 곧바로 목표를 향해 미끄러지듯 굴러갔고, 계획된 듯이 정확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준호의 실력에 감탄했다. 그의 구슬은 너무도 부드럽고, 차분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가 오랜 시간 구슬과 대화를 나누기라도 한 듯, 구슬은 그가 의도한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역시 준호는 다르네."
철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준호의 등장으로 경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두 학교의 긴장감이 다시금 팽팽해지며, 이제 승부는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있었다. 준호의 차분한 실력은 소림국민학교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고, 영주는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경기는 이제 더욱 뜨거워질 것이 분명했다.
경기는 여전히 팽팽한 접전을 이어갔다. 두 학교 모두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서, 영수는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가슴 졸이며 경기를 지켜봤지만, 누구도 영주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경기의 흐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주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사실 경기 전에 영주는 반장에게 다짐했었다.
“오늘은 내가 끝까지 책임질게. 누구도 나 대신 나서지 않아도 돼.”
반장은 다짐을 듣고 잠시 망설였지만, 영주의 눈빛에서 결의를 읽을 수 있었다.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결심을 받아들였다. 영주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준비해 온 선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에 매진했고, 그 증거가 그의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지금 영주가 구슬을 튕기고 있는 손가락은 이미 물집투성이었다. 누구도 그의 노력을 몰랐다면 영주의 손에 잡힌 물집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영주야, 무리하지 마.”
동진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영주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오늘은 내가 끝까지 해내야 해.”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영주는 다시 한번 구슬을 손끝에 올렸다. 경기를 시작한 후부터 그가 던진 구슬은 이미 여러 개에 달했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경기장에 흐르는 긴장감은 점점 뜨거워졌고, 아이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영주는 구슬을 정확하게 튕겨냈다. 그것은 연습에서 익힌 동작이 완벽하게 구현된 듯한 순간이었다.
반장은 그런 영주를 신뢰하고 있었다. 영주는 이미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오늘은 영주가 우리 팀을 이끌어줄 거야.’
반장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았다.
2차전은 이제 점점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승리의 향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영주는 압박감을 견디며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노력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동료들을 위해 끝까지 싸우고 있었다.
경기가 어떻게 끝나든, 오늘의 영주는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주인공이었다. 그가 보여준 결의와 노력은 이미 강호 국민학교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소림 국민학교는 승부를 걸기 위해 다시 한번 선수 교체를 선언했다. 이번에 등장한 선수는 고아원에서 온 여자아이, 순자였다. 순자가 등장하자 강호 초등학교의 아이들 사이에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그녀는 고아원 아이들 중에서도 특이한 존재로, 남자아이들 못지않은 힘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힘뿐만 아니라, 그 힘을 섬세하게 다룰 수 있는 독특한 감각을 지닌 아이였다.
“저 애가... 순자야?”
동진이가 조용히 물었다.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순자. 고아원에서 온 애야. 남자애들도 쉽게 덤비지 못할 정도로 힘이 세지.”
순자는 경기장으로 조용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눈빛은 냉철했고,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는 살아남는 법을 배운 아이였다. 삶의 거친 면을 일찍부터 경험한 그녀는 이 작은 구슬 경기조차도 자신의 방식으로 치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구슬이 아니라, 자신이 쟁취해야 할 또 다른 생존의 기회처럼 보였다.
순자는 구슬을 손에 쥐었다. 그녀의 손끝에는 섬세함이 묻어 있었고, 섬세함은 그녀의 강력한 힘과 맞물려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아이들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3번째 홀이었다.
순자는 구슬을 튕겨내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이건 내가 해내야 할 일이야.’
그녀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는 매 순간 자신의 힘을 믿어야만 했고,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슬이 그녀의 손에서 날아갔다. 그것은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그 속에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순자의 구슬은 그녀의 감정을 실어 나르듯이 마지막 3번째 홀을 향해 정확히 나아갔다.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고, 아이들의 눈은 구슬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구슬은 3번째 홀로 들어가며 완벽한 궤적을 그렸다. 소림국민학교 아이들은 순간적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순자의 강력한 힘과 섬세함이 결합된 순간이었다.
“대단하다...”
철수는 놀란 듯 중얼거렸다. 순자는 환호에도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표정에는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는 자신의 일을 해냈다는 담담함이 묻어 있었다.
다행히도, 영주는 끝까지 해냈다. 경기 내내 손끝이 아프도록 구슬을 던졌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긴장감이 극에 달했던 찰나, 영주의 구슬은 마침내 목표 지점에 닿았다.
경기는 끝이 났고, 숨죽였던 순간이 깨지듯 강호 국민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간발의 차이였다. 소림 국민학교와 접전 끝에, 강호 국민학교가 승리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영주는 온몸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눈을 감았다. 손가락의 통증이 이제야 선명하게 느껴졌지만, 그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해냈어.’
철수는 급히 달려와 영주의 어깨를 툭 치며 외쳤다.
“영주야, 우리가 이겼어! 너 덕분에!”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어 영주를 축하했다. 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손에 돌아온 2,000개의 구슬이었다. 그 구슬들은 그들의 승리를 눈앞에 드러내는 증거 같았다.
“이제 우리 구슬이 5,500개나 됐어!”
동진이가 구슬 주머니를 확인하며 환호했다. 그들은 이제 충분히 많은 구슬을 모았고, 이로써 다음 경기도 자신 있게 임할 수 있었다.
반장은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오늘 이긴 것뿐아니라, 앞으로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거야.”
경기의 피로는 어느새 잊혔다. 그들의 손에는 더 많은 구슬이 있었고, 그 구슬은 더 큰 미래를 위한 준비가 될 것이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길고 험했지만, 오늘의 승리로 그들은 더 단단해졌다.
부반장 철수는 경기의 승리를 확인하자마자 서둘러 경기를 마무리하고, 강호국민학교로 복귀했다. 승리의 기쁨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이제 그들은 얻은 5,500개의 구슬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해야 했다. 철수는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구슬을 팔아 라면을 사고, 아이들과 함께 첫 번째 그들만의 만찬을 즐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철수는 가방 속에서 구슬 주머니를 꺼내어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묵직한 무게는 구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승리의 증거였고, 더 나아가 그들의 노력과 협력의 결실이었다.
“이제 드디어 라면을 먹을 수 있어.”
철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강호국민학교의 아이들은 철수가 돌아오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구슬을 모으며 여러 번의 경기에서 이기고 졌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했다. 이제 그들은 힘들게 모은 구슬로 첫 번째 만찬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철수야, 오늘은 진짜 축제다!”
동진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그래, 우리가 해냈으니까. 이제 라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철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동안의 고된 연습과 경기는 모두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웃으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뜨거운 국물 속에 담긴 라면을 먹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라면이란 그저 음식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한 끼의 식사이면서 동시에 노력의 대가였고, 첫 승리의 상징이었다.
그날 밤, 강호국민학교 아이들은 마침내 구슬로 얻은 그들의 첫 번째 만찬을 즐기며, 함께 웃고 떠들었다. 작은 그릇 속의 라면은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노력의 맛을 담고 있었다.
학교 뒤편,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폐창고가 그들만의 특별한 식당으로 변신했다. 창고는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했지만, 오늘만큼은 승리의 열기로 가득 찼다. 석유곤로 위에는 커다란 들통이 걸려 있었고, 그 안에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물이 아이들의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다. 바닥 한편에는 라면 한 박스, 총 30개의 라면이 나란히 쌓여 있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그들이 고대하던 첫 번째 만찬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철수는 문방구에서 900개의 구슬을 현금으로 바꾼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며 속으로 계산했다.
‘다음 경기를 위해 이 정도는 충분해.’
더 많은 라면을 살 수 있었겠지만, 앞으로 있을 경기를 위해 구슬을 아껴둬야 했다. 오늘은 부족할지 몰라도, 이 정도면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 모두가 이 순간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철수는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들통 안에서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하자, 동진이가 라면 봉지를 하나씩 꺼내 들통에 던져 넣었다. 라면이 끓어오르며 고소한 향기가 창고 안을 가득 채웠고, 아이들은 흥분된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듯, 그들의 눈빛에는 설렘이 넘쳐났다.
“와, 정말 맛있겠다!”
한 아이가 소리쳤다.
“오늘은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이제부터는 우리가 승리한 팀이니까!”
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비록 창고는 낡았고, 그들의 식사는 단출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오랜만에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라면을 배불리 먹었다. 뜨거운 국물에 젓가락을 움직이며 아이들은 서로 웃고 떠들었고, 그들의 웃음소리는 폐창고의 어둑한 공간을 밝게 채웠다.
“다음 경기도 우리가 이겨서 또 이렇게 먹을 수 있겠지?” 동진이가 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철수는 젓가락을 잠시 멈추고 말했다.
“물론이지. 우린 해낼 거야. 이 라면이 우리에게 더 큰 힘을 줄 거야.”
그렇게 그들의 첫 번째 만찬은 배불리, 그리고 웃음으로 가득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단순한 라면 한 그릇이었지만, 그것은 그들의 노력과 승리, 그리고 팀워크가 담긴 소중한 식사였다. 창고 안에서의 이 소박한 잔치는 그들에게 더 큰 목표와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영주와 반장, 동진
반장은 사건을 조사하던 중,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구슬 천재로 불리던 동진이가 이 조직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동진이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났고, 구슬치기에서도 누구보다 능숙했다. 하지만 그런 동진이가 어쩌다 이 길로 빠지게 되었을까. 반장은 동진을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동진이는 어릴 때부터 현주를 좋아했지만, 그 감정은 짝사랑으로 끝났다. 그리고 짝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반장에 대한 은근한 반감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어릴 적 친구였지만, 동진의 눈에는 반장이 언제나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로 비쳤다.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반장은 늘 주목받는 사람이었고, 현주의 관심 역시 반장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동진에게는 크나큰 열등감으로 자리 잡았다. 반장이 검사로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동진은 자신과 반장의 거리가 더욱 멀어져 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이 얽힌 지금, 반장은 해운대에서 영주와 동진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닷가의 파도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가운데, 세 사람은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주는 반장을 보며 순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도 어릴 적 친구였고, 반장을 존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도 이제는 희미해져 갔고, 그는 지금 그저 자신의 처지에 따라야 할 수밖에 없었다. 영주의 눈에는 피로와 체념이 서려 있었다. 그는 조직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에, 반장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반면, 동진은 달랐다. 그의 눈에는 반항적인 불꽃이 일렁였다. 어릴 적부터 반장에게 가졌던 열등감이 지금의 상황을 통해 더 깊어졌고, 그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동진은 반장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넌 항상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봤지, 반장. 지금도 마찬가지야. 너는 언제나 잘 나가고, 우리는 여기서 발버둥 치고 있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반장은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동진아, 너도 알잖아. 내가 너희를 도와주고 싶어도, 법 앞에서는 나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동진은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
“법? 네가 말하는 그 법이 우릴 구해줄 것 같아? 네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특히, 현주… 네가 아끼는 현주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아둬.”
그 말을 듣자 반장의 가슴이 서늘해졌다. 현주가 그들의 손에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동진은 그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반장의 약점을 찔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네가 날 도와주지 않으면, 현주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거야,”
동진이 다시 한번 협박하듯 말했다.
“너는 선택할 수 있어. 네가 검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할 건지, 아니면 친구로서 우리를 도울 건지 말이야.”
영주는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혼란이 가득했지만, 그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다. 반장은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친구로서 도와주고 싶지만, 법과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그의 본분이 그의 결정을 무겁게 짓눌렀다.
반장은 다시 한번 깊은숨을 내쉬었다. 이번 사건은 그저 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인연, 그 인연이 이제는 너무 멀어져 버린 사실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그는 그들과 과거를 공유했지만, 이제는 다른 길을 가야 하는 자신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