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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랑 Oct 23. 2024

배판의 늪

영주와 노숙자 1




배판의    

  

두 번의 경기가 끝나자, 구슬은 눈 덮인 벌판 위에 하나씩 새겨진 발자국처럼 천천히 쌓여 5,500개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구슬들을 보며 작은 왕국을 세운 듯 뿌듯함을 느꼈다.


"와, 이렇게 많이 모았어? 우리 정말 잘한 거 아니야?"

한 친구가 감탄하며 말했다. 모두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5,500개의 구슬은 그저 수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승리의 증표였고, 그동안 흘린 땀과 인내의 결과였다.

하지만 영광도 오래가지 않았다.


경기 후 아이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서로를 쳐다봤다. "배고프지 않냐? 나 라면 먹고 싶어, "

철수가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래, 라면 먹자! 우리 구슬 많으니까, 조금만 써도 돼, " 동진이가 대답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900개의 구슬을 내놓고 라면을 사기 위해 걸어 나갔다.


라면을 사서 돌아왔을 때, 남은 구슬들을 세어보니 어느새 4,600개만이 남아 있었다.


"에이, 라면 한 번 먹었다고 이렇게 줄어든다고?"

지윤이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철수는 구슬을 하나씩 손에 쥐고, 그 무게를 느끼며 천천히 말했다.

"이건 그냥 숫자가 아니야. 이건 우리 자존심이야. 이 작은 세계에서 우리가 가진 전부라고."


그 말을 듣고,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구슬들은 게임 도구가 아니라, 그들 모두의 꿈과 희망, 그리고 작은 승리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 4,600개나 남았으니까 괜찮아, "

동진이가 희망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철수는 잠시 멈추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야. 우리 손에 있는 이 구슬들이 어떻게 쓰일지에 따라 모든 게 바뀔 거야. 우리가 새로운 왕이 될 수도, 아니면 이 작은 세계에서 사라질 수도 있어."


아이들은 철수의 말에 다시 한번 그 구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손에 쥔 구슬이 유리 조각이 아닌, 그들 각자의 운명이 걸린 무언가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들 모두는 무언가가 바뀔 것이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게임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았다.


"그래, 우리 다시 해보자. 이 구슬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 지윤이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철수는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받아들였다.

"맞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우리의 왕국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그 구슬들은 더 이상 놀잇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 각자의 손에 쥔 운명, 그리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가는 열쇠였다.

   



3차전 상대는 리라 국민학교였다. 해운대 해변을 끼고 있는 강호 국민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학교였는데, 그 동네는 소문으로만 듣던 전통적인 부자 동네였다.


“저기 사는 애들은 다 부잣집 자식들 이래,”

누군가가 속삭였다.


해운대에서 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주로 학부모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우리 사이에 긴장이 스며들었다.


“야, 저 애들이랑 우리가 어떻게 이기냐?”

경기를 앞두고 한 친구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주변의 표정을 살폈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들은 우리가 넘기 어려운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코트에 등장한 리라 국민학교의 라인업을 보는 순간,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전부 여자애들이었다.


“뭐야, 전부 여자들이잖아?”

한 친구가 속삭이듯 말했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경기에서 여자애들과 맞붙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순간 우리 사이에 얕은 안도감이 흘렀지만, 곧바로 그들은 우리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당당하게 코트 위를 걸었고, 그들의 빛나는 눈빛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마치 승리를 이미 예감하고 있다는 듯한 자신감이 넘쳤다.


“방심하지 마,” 반장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 애들,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반장의 말에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해운대 바다에서 불어와 우리 옆을 스쳤다. 바람은 마치 그들의 자신감을 함께 실어오는 듯했다. 우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저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강한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경기 전부터 이미 그들은 우리를 이기고 있었다.     




처음 배팅은 2,000개로 시작됐다.


"야, 너무 많이 거는 거 아니야?"


한 친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에 모두가 반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반장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손 안의 구슬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 작은 유리 조각들에 아이들의 운명과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시간마저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공기는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고, 마 누군가가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처럼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반장은 손에 쥔 구슬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진짜 괜찮은 거지?"

또 다른 친구가 불안하게 물었다.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결과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숨을 죽이고 결말을 기다렸다. 이 순간, 승리와 패배는 작은 구슬들에 달려 있었다.     




강호 국민학교의 대표로 나선 건, 구슬천재로 불리던 동진이었다.


"동진이가 나왔어, 이번엔 틀림없어."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고,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동진이의 손끝에서 구슬이 떨어질 때마다, 그 정확도에 모두가 감탄했다. 구슬은 매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에 닿았고, 우리는 승리에 대한 기대감에 들뜨기 시작했다.


"역시 동진이야, 대단해!"

친구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 하지만 승부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몇 번의 공격이 이어진 뒤, 동진이는 결국 구슬을 주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두 번째 선수 차례였다.


1차전에서 실수를 만회하려던 지윤이가 떨리는 손을 쥐고 나섰다.


"지윤이, 이번엔 꼭 이겨야 해, "

반장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지윤이는 긴장된 얼굴로 구슬을 잡았다. 하지만 손끝은 침착해 보였다.


"저번 실수는 없을 거야, "

옆에서 또 누군가 말했다.


그는 경기를 잘 이끌었다. 구슬은 부드럽게 굴러가면서도 힘 있게 목표를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좋아, 됐어!"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때였다. 지윤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손가락을 꽉 쥐고 있었다.


"어, 지윤이 손가락... 다친 것 같아!"

옆에서 누군가 외쳤다.


지윤이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더는 경기를 이어갈 수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강호 국민학교 아이들은 당황한 채 서로를 바라봤다.


"이제 어떡해? 지윤이 빠지면... 이길 수 있을까?"

아이들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영주가 투입되었다. 영주는 평소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신뢰를 받는 친구였다.


"영주라면 할 수 있을 거야, "

친구들이 서로에게 희망을 걸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불운은 끝나지 않았다. 영주가 구슬을 던지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구슬을 날리던 순간, 그의 손목이 부자연스럽게 꺾였고, 그가 손목을 움켜쥐는 걸 보았다. 저번 경기에서 혼자 완주를 하며 너무 무리한 탓이었다.


"영주마저 다쳤어!"

주변에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긴장감에 싸여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제 남은 선택은 한 명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선 사람은 부반장, 철수였다.

"철수가 할 수 있을까?"


모두가 불안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평소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철수는 큰 기대를 받지 못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가 나서야만 했다.


철수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구슬을 손에 쥐었다.


"철수야,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

반장은 무의식적으로 소리쳤다. 철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긴장된 표정으로 구슬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서 구슬이 날아갔고, 우리는 숨을 죽인 채 결과를 기다렸다.


구슬은 공중을 가르며 정확히 목표를 향해 굴러갔다. 철수의 눈빛은 집중되어 있었고, 그의 몸은 한순간도 떨림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 순간, 모두 철수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침착한 태도와 구슬을 쏘는 그 손끝의 능숙함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들어갔다!"

누군가 소리쳤다.


구슬은 정확히 목표를 이뤘고, 그 순간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철수의 선전으로 강호 국민학교는 마침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아이들은 그의 옆에 다가가 그를 치켜세우며 기뻐했다. 철수는 조용히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감과 승리의 기쁨이 서려 있었다.


"철수, 너 정말 대단해! 우리 모두 네 덕분이야!"

친구들이 그의 어깨를 치며 외쳤다. 철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날의 승리는 모두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남았다. 그것은 모두의 노력과 인내,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철수의 의지 덕분에 이루어진 기적이었다.




그때 리라 국민학교의 리더, 혜교가 갑자기 소리쳤다. "배판!"


순간 모든 시선이 혜교에게로 쏠렸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변 공기는 더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배판을 외치면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구슬의 엄연한 법칙이었다.


"어쩔 수 없다, "

반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혜교의 도발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한 친구가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받아야 해?"


반장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슬의 법칙이잖아. 피할 수 없어."


판돈은 이제 4,000개의 구슬로 늘어났다.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친구들의 눈빛에서 묻어나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거 너무 큰데..."

한 친구가 걱정스레 말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혜교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우리를 바라봤고, 반장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건 그저 경기가 아니라,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다.     

   



두 번째 경기에서 리라 국민학교의 시구를 맡은 선수는 유도 유망주 지현이 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그녀는 차분하게 구슬을 손에 쥐고,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지현의 유도 실력은 이미 소문이 자자했고, 그녀의 힘과 균형 감각은 경기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저거 봐, 유도하는 애가 시구를 맡았어,”

한 친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현은 숨을 고르고 구슬을 던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미끄러져 나간 구슬은 부드럽지만 강하게 굴러갔다. 마치 유도에서 상대를 정확한 지점에 넘기듯, 구슬은 흔들림 없이 첫 번째 홀 근처까지 멈춰 섰다. 모두가 숨죽인 채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정확하네…”

누군가가 탄식하듯 말했다.


그녀의 시구는 리라 국민학교에게 유리한 출발을 안겨주었다. 아이들은 그 순간, 단순한 체력만이 아니라 지현의 집중력과 기술이 경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똑똑히 보았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주전 선수였던 지윤과 영주는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경기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팀의 핵심이었기에 모두의 얼굴에 불안감이 드리워졌다. 경기의 흐름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순간, 배판의 첫 번째 주자는 동진이었다. 그는 팀의 자존심이었고, 그가 있으면 한 번쯤은 다시 승리의 흐름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진은 침착하게 구슬을 손에 쥐고, 배판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담담하게 걸어 나갔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그는 구슬을 던질 준비를 했다. 하지만 불운은 겹치기 마련인 법이었다. 동진이 구슬을 던지기 직전, 갑자기 발목을 접질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저앉는 순간, 경기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동진이까지...?"

친구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이제 경기를 이어갈 선수가 없을 줄 알았다.


그때, 어쩔 수 없이 명랑 캐릭터로 유명한 길 수가 등장했다. 길수는 언제나 분위기 메이커였고, 그의 등장만으로도 조금은 긴장이 풀리기를 바랐던 아이들은 그를 바라보며 기대 반, 불안 반의 표정을 지었다.


길수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코트로 나갔다. 그는 갑자기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듯 걸어 나갔고, 리라 국민학교 아이들을 향해 고의적인 도발을 시작했다.


"이길 준비나 했니?"라며 능청스럽게 말을 던지고, 손을 휘저으며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친구들은 길수의 태도에 실소를 터뜨렸지만, 속으로는 조마조마했다. 리라 국민학교 아이들은 길수의 도발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바로 혜교였다. 혜교는 리라 국민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수학 천재로, 차분한 태도로 길수의 도발을 무시한 채 무대에 올랐다. 혜교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 없이 구슬을 손에 들었다. 그 순간, 우리는 그녀가 그저 선수가 아님을 깨달았다.


혜교는 수학 천재답게, 구슬의 각도와 힘을 정확히 계산하는 듯한 눈빛으로 구슬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끝에서 구슬은 자로 잰 듯 정확한 궤적을 그리며 굴러갔다. 마치 그녀가 문제를 풀어내듯, 구슬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로 향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해?"

친구들이 경악하며 속삭였다.


혜교의 구슬치기는 운이나 직감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완벽한 계산을 해냈고, 구슬은 그녀의 계산대로 움직였다. 그녀가 던진 구슬은 컴퓨터로 계산한 결과처럼 목표 지점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그 순간, 우리는 혜교가 그저 강적이 아니라, 리라 국민학교가 자랑하는 전략가임을 실감했다.


길수는 혜교의 완벽한 경기를 보고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외치며 다시 구슬을 손에 쥐었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리라 국민학교 아이들은 그들의 실력과 계산된 전략으로 무장한 팀이었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더 이상 단순한 승부가 아닌, 치열한 두뇌 싸움 속에 휘말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혜교의 차분한 눈빛 속에는 이미 승리를 향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고, 우리는 그녀의 그 눈빛을 쉽게 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첫판은 일부러 져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리라 국민학교의 애들이 처음부터 너무 방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계획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만호와 상문이 나섰을 때, 분위기는 이미 싸늘해져 있었다. 만호는 엿장수 아들이었고, 상문은 소사 아들이었다. 둘 다 의욕은 넘쳤지만, 실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할 수 있을까?" 반장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분명히 최선을 다했지만, 리라 국민학교의 아이들은 그들의 실수를 단번에 잡아채며 경기를 지배해 갔다. 구슬이 우리 쪽으로 미끄러져 올 때마다, 우리는 점점 더 긴장했다.


그리고 리라 국민학교의 마무리를 위해 마지막으로 등장한 선수는 미희였다. 그녀는 십자수를 특기로 하는 아이였는데, 처음엔 그녀가 경기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의아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희는 정교함과 세밀함이 놀라운 아이였다. 그녀는 구슬을 손에 쥐고, 마치 십자수를 놓듯 차분하고 섬세하게 구슬을 조준했다.


미희의 손에서 구슬이 날아갈 때, 그것은 마치 회오리처럼 강력한 회전을 동반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숨을 죽였다. 구슬은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목표를 향해 돌고 있었고, 정교하게 목표를 관통했다. 그 회오리 퍼팅은 우리가 지금껏 본 어떤 기술보다도 완벽했다.


"와... 대단하다, "

친구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속삭였다. 구슬이 목표 지점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3,000개의 구슬이 걸린 배판은 리라 국민학교의 승리로 돌아갔다. 미희의 완벽한 마무리로, 경기는 너무나도 쉽게 끝나버렸다.

우리는 패배의 쓴맛을 보며 고개를 떨구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압도적인 실력에 경외심마저 들었다. 이번 경기는 운의 싸움이 아니었다. 리라 국민학교는 실력과 전략, 그리고 계산된 움직임으로 우리를 완전히 압도했다.

    



이제 강호 국민학교에 남은 구슬은 4,600개에서 2,000개를 추가했지만, 4,000개의 배판을 잃고 나니 결국 2,600개밖에 남지 않았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패배의 쓴맛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제 라면도 끓일 수 없네..."

동진이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오늘의 패배는 단순히 구슬을 잃은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팠지만, 오늘은 라면을 끓일 구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아니, 문제는 그보다 더 컸다. 다음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구슬 자본도 이제는 부족했다.


"우리가 이렇게 끝나는 거야?"

길수는 실망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기대했던 승리 대신 실망감이 깊게 자리 잡았다. 패배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군 채 동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발걸음마다 패배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했고, 그들의 머릿속에는 다음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구슬은 그저 게임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자존심이었고, 이제 그 자존심마저 위태로워 보였다.


"다음엔 이길 수 있을까?"

한 친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영주와 노숙자 1   

  

영주는 어느 날, 우연히 한 룸살롱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노숙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마담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모습에서는 여전히 단정함과 고유한 문학적 감수성이 엿보였다. 노숙자라는 본명 대신, 가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힘든 삶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념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술집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책을 가까이하며, 문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지키고 있었다.     


영주는 처음엔 그저 호기심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술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그녀에게는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단정하고 정갈한 삶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고결함마저 느껴졌다. 화려한 화장과 옷을 입고 있지만, 내면은 여전히 맑은 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주는 점점 그녀에게 이끌렸다. 노숙자는 평범한 마담처럼 보였지만, 그녀의 고요한 내면을 엿보게 된 순간, 영주는 그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화려한 술집 안에서조차 책을 읽고, 자신의 내면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영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느 날, 영주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고백했다. 고백은 감정의 표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감싸고 있던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녀를 향한 깊은 감정이었다. 숙희는 영주의 고백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진심을 느끼고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영주야, 나 같은 사람에게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야?”

노숙는 조용히 물었다.     


영주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가 단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너를 판단할 수 없잖아. 너는 여전히 너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고,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 모습이 나를 감동하게 했어.”     


노숙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이곳에서 일해왔다. 하지만 영주의 진심 어린 말은 그녀의 마음속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고마워, 영주야. 네가 나를 이렇게 봐줘서… 고마워.”

노숙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살짝 쥐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들의 사랑은 화려한 곳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의 내면을 바라보고, 진정한 모습을 발견한 후에 싹튼 감정이었다. 노숙는 영주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둘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영주는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마다 더 깊은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나 직업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녀의 내면은 순수한 꿈과 문학적 감수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게 된 영주는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때론 술집 밖에서 만나, 함께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영주는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세상의 혼란스러운 소음이 사라지고, 오직 그녀와 함께하는 조용한 시간이 남는 듯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사랑은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영주는 그녀의 내면을 사랑했고, 노숙는 영주의 진심을 받아들이며 두 사람은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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