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 하늘 높이 걸린 둥근달이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를 내려다본다. 정월대보름은 겨울을 이겨낸 이들이 새 봄을 준비하며 삶을 다독이는 날이다. 달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부럼을 깨물며 건강을 기원하고 오곡밥을 나누며 공동체를 다시 잇는다. 조용한 밤, 모두가 같은 달을 올려다보는 순간은 우리를 다시 사람답게 만든다.
심리학자들은 상징과 의식이 인간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말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쉽게 지친다. 그러나 ‘달맞이’라는 행위가, 달에게 소원을 비는 순간이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달처럼 밝고 환하게 살게 해 주세요.’라는 기원은 말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둠을 밀어내는 의지다. 무의식 속의 불안이 달빛 아래 조금씩 가라앉는다.
정월대보름의 상징인 오곡밥과 나물은 공동체적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오곡밥에는 조, 기장, 팥, 콩, 찹쌀이 들어간다. 각각의 곡물은 다양한 삶을 상징한다. 기층민의 고단한 노동, 여성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살림살이, 그리고 공동체의 유대감. 혼자서 먹기보다는 이웃과 나누는 밥상에서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다시 기억한다. 상원절(上元節)이라 불리는 이 날, 상(上)은 하늘을, 원(元)은 시작을 뜻한다. 이는 하늘처럼 넓은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함께 열자는 사회적 약속이다.
한국의 시인들은 달을 ‘그리움’이라 불렀고, 소설가들은 달을 ‘기다림’이라 묘사했다. 정월대보름의 달은 유독 커다랗고 선명하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바라보던 소망의 크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떠나간 사람을 생각하고, 또 다른 이는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조용히 마음을 모은다. 달빛은 그 모든 감정을 품어낸다. 문학 속 달은 늘 말이 없다. 그러나 침묵은 모든 이야기를 품는 너그러움이다.
부럼 깨기는 이가 튼튼해야 몸이 튼튼하다는 전통적 인식은 구강 건강과 전신 건강의 연관성을 알았던 조상의 지혜다. 견과류 속에는 불포화지방산, 비타민 E가 풍부해 심혈관 질환 예방에 좋다. 나물을 무쳐 먹는 것도 봄철 비타민과 미네랄 섭취를 돕는다. 겨울 내내 부족했던 영양을 보충하고, 몸을 정돈하는 건강한 식탁이 바로 정월대보름이다.
정월대보름은 우리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고 타인과 연대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는 증거다. 달은 말이 없지만, 우리는 달 아래에서 말없이 기도한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는다. 감정의 달, 공동체의 달, 건강의 달, 그리고 희망의 달. 정월대보름의 달빛은 모든 것을 감싸 안는다.
오늘 밤, 달이 높다. 당신의 마음은 안녕한가.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