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마이스타 28화

인생 최대 난관에는 인생 최대 성공이 숨어있다

eunparang

by 은파랑




인생 최대 난관에는 인생 최대 성공이 숨어있다


길이 막힐 때

더 넓은 길이 열리고

깊이 추락할 때

더 높이 날아오를 힘이 생긴다.

가장 어려운 순간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영국 소설가 피츠제럴드(Fitzgerald, 1916 生)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남편 때문에 평생 가족을 혼자 부양해야 했다. 50살이 넘도록 글을 써본 적도 없었고 늦은 나이에 첫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12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인도 시인 타고르(Tagore, 1861 生)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52살에 「기탄잘리」라는 시집으로 동양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70살이 되어서야 처음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지만, 그의 그림은 인도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받을 만큼 대단한 성취를 이뤘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지금의 인도 국가도 그가 작곡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은 인생 난관을 마주친다. 우리는 흔들리고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이 성공이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어떤 시련이든 어려움을 넘어서면 인생에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KFC) 입구에 서 있는 캐릭터는 창업주 할랜드 샌더스(Harland Sanders, 1890 生)다. 그는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후 동생들을 돌봤다. 15살에 일을 시작했지만,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해고를 당하기 일쑤였다. 페인트공, 보험 설계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실패만 경험했다.


두 번의 사업 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었다. 켄터키주 작은 마을 주유소 창고에서 보잘것없는 식당을 열었다. 닭튀김이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손님들이 몰렸지만, 새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주유소를 지나가는 차량이 급격히 줄었다. 결국 식당은 경매로 넘어갔다. 그의 나이 66세였다.


포기하지 않았다.

차 트렁크에 압력솥과 비밀 양념을 실었다. 그의 치킨에 관심을 가질 식당 주인을 찾아 전국을 돌았다.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차에서 잠을 잤고 길거리 화장실에서 면도하며 3년을 보냈다. 무려 1,009번의 거절을 당하다 1,010번째 식당에서 첫 계약이 성사됐다. 그의 나이 69세였다.


샌더스의 치킨 맛에 매료된 피터 허먼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라는 이름도 제안했다. 치킨 한 조각당 4센트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 후 사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4년 만에 600개가 넘는 가맹점이 생겼다. 그의 나이 72세였다. 오늘날 KFC는 전 세계 80개국에 13,000개의 매장을 보유한 세계적 상표로 성장했다.


90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각국의 매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에서 일했다.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방에 들어가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직원들을 가르쳤다.


“현실이 슬프다면 더 꿈꾸라. 꿈이 이뤄 질까지 그냥 달려라. 인생 최대 난관에는 인생 최대 성공이 숨어있다.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누구나 포기할 만한 상황에서도 늘 무엇을 해내려 애썼다.”


대니엘 디포(Daniel Defoe, 1660 生)는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속옷 장사, 벽돌 공장 노동자 등 다양한 일을 겪으며 인생의 굴곡을 경험했다.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41살에 「순수한 영국인」이란 칼럼을 통해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됐지만 국왕에 저항하는 정치 운동을 주도하면서 사형 위기에 처했다. 이후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며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다.


수배 생활 중에도 익명으로 글을 써서 가족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할 것이라는 꿈은 놓지 않았다. 마침내 5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대표작 「로빈슨 크루소」를 발표하게 된다.


이 소설은 무인도에 표류한 주인공의 고독한 역경과 인간적 절망을 다루고 있다. 얘기 속에는 디포 자신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삶 역시 끝없는 고난과 절망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 힘든 여정이었다.

1731년 디포가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채권자들로부터 도망치며 하숙집을 전전해야 했다. 그의 인생 말년은 빚의 감옥에서 보내야 했지만 뇌졸중까지 앓으면서도 300페이지가 넘는 작품을 33권이나 남겼다. 평생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대필 작가로 일했으나 임종을 지키는 이는 없었다. 허름한 하숙집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은파랑




은파랑 콘텐츠 에세이 '토닥토닥' 출간

https://myip.kr/ueUJr





keyword
이전 27화가난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