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parang
사랑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얘기 중 하나다. 수천 년 전부터 시인은 사랑을 노래했고 철학자는 사랑의 본질을 탐구했으며 심리학자는 사랑의 작동 원리를 밝혀내려 했다. 그런데도 사랑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미스터리 속에서 놓치는 진실이 있다. 사랑은 때론 아니 어쩌면 자주 심리적 중독의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시작은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는 것과 같다. 도파민은 보상을 기대하게 만들고 누군가와 연결되길 갈망하게 한다. 감정은 너무 강렬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마법은 오래가지 않는다. 설렘은 일상이 되고 남는 자리는 안정과 친밀함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일상으로 옮겨가야 할 사랑이 여전히 강렬한 불꽃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설렘을 반복해서 경험하고자 하는 갈망. 그 끝은 사랑이 아닌 중독에 가닿는다. 사랑에 중독되는 일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과 다르다. 중독은 사랑 자체가 아닌, 사랑이 주는 강렬한 감정에 집착하게 만든다. 중독은 술이나 약물처럼 일시적 쾌감과 불안을 오가는 감정의 소용돌이다. 불확실한 사랑, 간헐적인 관심, '밀당'이라 불리는 줄다리기. 그 속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은 예측 불가능한 보상처럼 중독성을 높인다.
기다림과 갈망이 반복될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특히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과 안정감을 받지 못한 사람일수록 중독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들은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사랑을 잃을지 두려워 상대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집착하게 된다. 삶이 외롭고 고단할수록 사랑은 더 매혹적인 도피처가 된다. 현실의 무게를 잊게 해주는 달콤한 마취처럼 사랑에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 중독으로 바뀌는 순간 자신을 잃기 시작한다.
상대의 감정에 온 존재를 내맡기고,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 삶의 의미마저 함께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중독이 아니다. 중독은 우리를 묶지만 사랑은 우리를 놓아준다. 중독은 갈망하게 만들지만 사랑은 평온하게 만든다. 중독은 결핍을 드러내지만 사랑은 충만함을 선물한다. 사랑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내면을 돌아봐야 한다.
나는 사랑 없이도 온전한 사람인가. 상대방을 통해 나의 결핍을 메우려 하진 않는가. 이런 질문들은 사랑과 중독의 경계 약속을 지켜주는 작은 등불이 된다. 사랑이 당신을 중독시키지 않기를, 당신을 더 자유롭게, 더 넓은 세계로 날게 하기를. 사랑이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더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연애는 마음만의 일이 아니다. 설렘과 흥분, 안정과 유대의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처럼 몸속을 흘러간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곧 몸이 반응하는 생화학적 교향곡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도파민과 옥시토신. 두 호르몬이 사랑의 시작과 지속을 지휘한다. 사랑이 막 피어날 때, 도파민은 불꽃을 터뜨린다. 뇌의 보상 회로는 활성화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환해진다. 그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번지고, 생각은 자꾸만 그 사람에게 머문다. 도파민은 집중력을 높이고, 에너지를 끌어올리며 심지어 잠이나 식욕조차 잊게 만든다.
이 시기 종종 말한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사랑이 처음 찾아올 때 그것은 도파민의 선물이다. 하지만 사랑은 머물러 있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고, 손을 잡고 걸었던 거리들이 익숙해질 무렵 도파민의 불꽃은 서서히 잦아들고 그 자리에 옥시토신이 자리 잡는다. 포옹할 때, 손을 잡을 때, 눈빛을 나눌 때 몸은 조용히 옥시토신을 흘려보낸다. 옥시토신은 신뢰를 깊게 만들고, 서로의 존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 호르몬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독이고 갈등 속에서도 함께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옥시토신을 ‘사랑의 호르몬’이라 부른다.
뜨거움은 잦아들지언정 따뜻함은 더 깊어진다. 사랑이 식지 않고 성숙해질 수 있는 이유, 그 안엔 옥시토신이라는 고요한 힘이 있다. 연애는 두 호르몬의 균형 속에서 성장한다. 도파민이 사랑의 문을 열고 옥시토신이 문을 닫지 않도록 지켜준다. 그래서 연애는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춤추는 정교한 작용이다.
사랑은 늘 신비롭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분명한 과학이 흐른다. 그렇다고 연애를 과학으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호르몬이 우리를 이끌어주되 사랑의 의미는 여전히 우리 안의 얘기가 된다. 몸은 사랑을 기억하고, 마음은 그 사랑을 살아간다. 그래서 연애는 언제나 기적처럼 느껴진다. 호르몬이 시작한 일일지라도 우리가 함께 만든 순간만은 세상의 어떤 공식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한 편의 시가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심장이 뛰는 사람이 진짜야.”
또 누군가는 속삭인다.
“편한 사람이 결국 함께 간다고.”
사랑에는 두 얼굴이 있다.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
그리고 실용적 사랑(Pragmatic Love)
미국 심리치료사 존 리(John Lee)는 이를 각기 다른 색채로 설명했다. 에로스(Eros)와 프라그마(Pragma). 전자는 불꽃처럼, 후는 뿌리처럼 다가온다.
낭만적 사랑은 첫눈에 빠지는 마법, 가슴이 벅차고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에 피어난다. 감정은 선명하고 그리움은 강렬하다. 실용적 사랑은 삶을 함께 견디는 힘, 현실을 바라보고 가치관과 생활 방식의 조화를 생각한다. 감정보다 지속 가능성이 우선이다. 누구의 사랑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기억해야 할 건 불꽃은 예쁘지만 금세 꺼지고,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꿈을 꾸면서도 땅을 딛고 서 있는 낭만과 실용의 조화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심장이 뛰는 순간과 매일의 일상을 함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자란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