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음 위에 피어나는 것들

by 은파랑




사라진 마음 위에 피어나는 것들


이별은 끝이 아니라 마음이 겪는 깊은 변화의 시작이다. 함께 나눈 기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기에, 사랑은 끝났지만, 감정은 여전히 남아 흔들린다. 영국 정신과 의사 콜린 머레이 박스(Collin Murray Parkes)는 상실 이론(Grief Theory)을 통해 말한다.


“사랑의 이별은 죽음의 상실과 유사한 심리적 과정을 거치며, 그 안에는 애도(grief)와 회복의 단계를 포함하고 있다.”


박스는 이별의 슬픔도 네 단계로 설명한다. 처음엔 마비(numbness) 상태에 빠진다. 현실감이 없고 감정도 얼어붙은 듯 무뎌진다. 다음은 갈망과 찾기(yearning and searching)의 단계다. 자꾸만 그 사람을 떠올리고 연락을 기다리며 돌아올 가능성을 상상한다. 이후 혼란과 절망(disorganization and despair)이 찾아온다.


그림 프리다옥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의 균형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재구성(reorganization)이 시작된다. 조금씩 일상에 적응하며 사랑의 기억은 슬픔이 아니라 감사의 감정으로 바뀌어 간다.


이별은 아프지만 아픔을 견디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자신을 만나게 된다. 상실은 무너짐이 아니라 다시 삶을 세우기 위한 침묵의 시간이다. 사랑했던 만큼 아프고 아팠던 만큼 우리는 성장한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가장 조용한 형태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이별은 삶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중 하나다. 왜 사랑했던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없을까. 함께 그려왔던 미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물음들은 상실이 현실이 되었음을 조용히 알려준다. 이별은 하나의 상실이다. 사람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나누었던 시간, 그 안에서 반짝이던 감정, 그리고 함께 있던 자신을 잃는 듯한 아픔이다.


심리학자들은 이 과정을 '애도'라 부른다. 부정과 분노, 슬픔과 수용의 단계를 지나며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별이 끝이 아닌 다른 시작일 수 있음을 조심스레 깨닫게 된다.


이별은 작고 조용한 죽음과도 같다. 익숙했던 미소가 사라지고 그가 남기고 간 온기는 점점 옅어진다. 추억은 더 이상 미래로 이어지지 않고 과거 속 어딘가에 머무른다.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였고, 지금은 누구인가.”


관계 속에서 자리 잡았던 정체성이 흔들릴 때 자신의 일부를 잃은 것 같은 허전함이 찾아온다. 상실감을 부정하거나 재빨리 채우려 하기보다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상실은 존중받아야 할 감정이다. 이별을 지나 회복에 이르는 길은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다.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 감정들을 꺼내어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에서 회복은 시작된다.


슬픔, 분노, 후회


모든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고요히 바라보라. 감정은 인정받을 때 비로소 가벼워진다. 사랑을 주던 마음을 이제 자신에게 돌려야 할 시간이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작은 기쁨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사소한 일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준다. 이별 속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 함께한 시간에서 발견한 성장과 스스로에 대한 이해. 모든 기억이 상처를 지나 단단한 나로 이끄는 자양분이 된다.


우리는 이별을 계절의 변화처럼 겪는다.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찾아오듯 관계의 끝은 새로운 계절을 준비한다. 하지만 겨울 땅속에서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마음도 천천히 봄을 향해 나아간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언젠가 따뜻한 햇살이 비춘다는 것을 안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린 기억으로 남는다. 하지만 아픔 안에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숨어 있다.


사랑했던 시간, 웃고 울었던 날들. 그 안에서 조금 더 성장한 나, 모든 순간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이별은 끝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고요한 아픔 속에서도 한 걸음씩 걸어야 한다. 당신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조용히 다음 장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모든 상실의 감정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다시 발견한다. 사랑이란 무엇이었는지, 왜 그렇게 아팠는지,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를 묻게 되는 순간 함께했던 시간이 불쑥 찾아와 마음을 건드린다. 그때는 지나쳤던 눈빛, 무심코 받았던 배려, 익숙하다고 여겼던 다정함. 이별은 모든 순간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한다. 잃고 나서야 더 선명해지는 것들.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이별은 애착의 균열이며 옥시토신이 줄어들고 마음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흔들림. 속에서 깨닫는다. 사랑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사랑은 받는 감정이기 이전에 주는 마음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이유는 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함께 있던 날들, 쏟았던 시간과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별은 그 마음들을 다시 꺼내어 사랑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모습은 어땠는지,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는지


이별은 반성이나 후회의 시간이 아니라 성찰의 시간이다. 사랑이란 완전한 사람끼리의 결합이 아니라 서로의 모난 부분을 품고 함께 어울려 가는 과정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땅이다. 이별 이후, 다시 걷기 위해 자신을 돌아본다.


더 단단한 마음, 더 여문 생각, 그리고 더 깊은 애정

상처는 아프지만 그 위에 피는 사랑은 더 성숙하고, 더 따뜻하다. 다음 사랑이 온다면 다를 것이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랑을 잃는 것이 두렵기보다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내가 고맙게 여겨질 것이다.


이별은 사랑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깊이를 더해주는 일이다. 사랑은 항상 성공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실패와 상처 속에서 더 본질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고. 그저 모양을 바꿔 다시 찾아올 뿐이라고. 사랑은 우리 안에서 여전히 자라고 있으며 언젠가 다시 누군가의 마음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이별은 끝이 아니라 감정의 또 다른 시작이다. 하루하루 익숙했던 대화가 사라지고, 몸에 밴 습관들이 멈출 때 비로소 사랑이 우리 안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려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스위스 태생의 미국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겪는 감정 단계를 통해 상실의 5단계를 설명했다.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


이 과정은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찾아온다.

“설마 진짜 끝난 걸까?”라는 부정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분노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하는 후회

그리고 끝내 찾아오는 조용한 침묵과 인정


모든 감정은 사랑이 진짜였다는 증거이고, 회복을 향한 내면의 여정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에게 감정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상실은 깊은 고요 속에서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피어난다. 성장, 자각, 그리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별은 아프지만 끝이 무너짐은 아니다. 때론 끝이 나를 다시 만나고 더 단단하게 사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은파랑




은파랑 콘텐츠 에세이 '토닥토닥'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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