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도 선이 필요할 때

eunparang

by 은파랑




사랑에도 선이 필요할 때


사랑은 한 편의 춤 같다. 두 사람이 각자의 리듬을 지닌 채 서로의 발걸음에 귀 기울이며 맞춰 나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춤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선 서로가 닿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와 닿을 수 있을 만큼의 따뜻한 존중이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면 그 온기를 느낄 수 없다.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선 함께 있음 속에서도 각자의 고요를 지켜야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경계’란 나와 타인 사이에 그어진 보이지 않는 선이다. 선은 나의 감정과 가치, 욕구와 생각을 지키는 울타리다. 경계가 흐려지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잃기 쉽다. 그럴 때 사랑은 기쁨이 아니라 점점 무거운 짐처럼 다가온다.


사랑 속에서 경계를 잃는다는 건 흰 종이에 번지는 잉크처럼 자신이라는 색이 서서히 희석되어 사라지는 일이다. 상대의 기대에 맞춰 조용히 모양을 바꾸고, 그들의 감정에 나의 하루를 맞추다 보면 언제부턴가 ‘나’라는 존재의 중심이 흐릿해진다.


그림 프리다옥


미국 심리치료사 테리 리얼(Terry Real)은 이를 ‘관계적 자기 상실’이라 말했다. 그것은 자신을 억누른 채 관계를 유지하려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지친 마음과 균형 잃은 사랑만이 남게 된다.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나를 하나의 ‘정원’으로 여겨야 한다. 정원은 나만의 시간, 생각, 감정이 자라는 곳이다. 상대는 정원을 함께 거닐 수는 있지만 소유하거나 지배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사랑은 모든 걸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나누고 무엇은 지켜야 할지를 스스로 선택하는 데서 시작된다. 지친 날엔 조용히 쉴 시간을 요청할 줄 알아야 하고, 피곤한 마음을 억지로 미소로 덮지 않아도 괜찮다. 자신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형태다. 상대 역시 하나의 정원이다. 그들의 고요한 시간, 감정의 결, 생각의 흐름은 그들만의 소중한 공간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서운함 대신 이해를 건넬 수 있을 때 사랑은 더 단단해진다. 경계는 담이 아니다. 사랑을 막는 장벽이 아니라 사랑을 더 온전하게 지켜주는 선이다. 선이 부딪힐 때 말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느껴.”

“너는 어떻게 생각해?”


대화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두 사람은 별처럼, 달처럼 각자의 궤도를 돌며 서로의 빛을 비추어야 한다. 너무 가까우면 가려지고 너무 멀면 닿을 수 없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의 빛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일.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이다.


사랑하면서 경계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진실하고 깊기 때문이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정원을 가꿔야 한다. 그리고 그 정원을 서로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더 빛나는 길이 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경계를 허무는 것이 사랑의 완성은 아니다. 진짜 사랑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깊이 머무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헨리 클라우드(Henry Cloud)와 미국 리더십 코치 존 타운센드(John Townsend)는 「경계선(Boundaries)」 이론에서 말했다.

“건강한 관계란 각자의 감정, 생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경계는 벽이 아니라 서로를 더 분명히 이해하고 존중하게 해주는 다리다. 사랑 속에서도 나는 ‘나’ 일 수 있어야 한다. 싫은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솔직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 경계 약속을 지킨다는 건 상대를 덜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사랑을 위한 배려와 지혜다.


서로의 세계가 건강하게 존재할 때 두 마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두 개의 온전한 마음이 나란히 서는 것. 거리를 지킬 수 있을 때 자유롭고 깊이 있는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은파랑




은파랑 콘텐츠 에세이 '토닥토닥'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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