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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걸음 Oct 24. 2021

공부하기 싫을 때

우리나라에서 학업이나 공부는 큰 스트레스 원이 됩니다.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교육 열풍


교육 열풍이 갈수록 거세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유치원 때도 여러 학원을 다니거나 영어 유치원, 영어 화상 수업을 배우기도 하고 심지어 컴퓨터 코딩까지도 배운다고 합니다. 이런 학원 경쟁과 교육 경쟁은 날이 갈수록 더 과열되는 것 같습니다.    

      



행복은 무엇일까


모든 것에 능한 만능인이 되기는 쉽지 않고 꼭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는 각기 다릅니다. 누구는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를 조율하는 것을 더 즐거워 할 수도 있고 누구는 혼자 있으면서 무언가에 파고드는데 더 큰 보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예술이나 스포츠로 세상에 이바지 할 수도 있고 연구나 아이디어, 일로서 이바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슴이 뛰고 마음이 노래하는 행복한 일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것을 좋아하더라도 그 속의 이유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논리적으로 무언가를 짜맞춰가는 것을 재밌어 해서 프로그래밍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컴퓨터를 만지면서 사고를 전개해나가는 것을 좋아해서 컴퓨터를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어떤 분야든지 마찬가지 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그 사람에게 덜 매력적으로 다가올 분야도 있습니다. 의사가 아무리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매력적인 직업이라 할지라도 항상 아픈 사람을 상대해야하거나 피를 보거나 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게 될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의사가 된다면 아무리 인정을 받거나 부러움을 사는 직업을 가진다고 해도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기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정말 사람을 돕고 치유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정적으로 의사를 할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거부감 없이 안정적인 직업인 것이 좋아서 하게 될 사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 성적이 의대에 가기 충분하다고 해서 무조건 의대가 베스트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인기 과목도 어떤 비인기 과목이나 학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비주류일 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철학이 자신의 사명일 수 있습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게 되면 마음이 불행해지게 됩니다.


공부의 과정에서는 그저 성적이 높은 학과, 좋은 학과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사명,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찾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그와 비슷하거나 연관된 것을 해야 마음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은 시키지 않아도 하게 됩니다. 마음이 즐겁고 고되더라도 그 일을 함으로서 얻는 에너지 역시 크기 때문입니다. 일이 단순히 노동이나 소모가 된다면 삶은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합니다. 명문대학, 대기업 취직, 결혼, 출산, 아파트나 비싼 집 등이 행복의 정답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타이니하우스 운동이나 쉐어하우스, 미니멀리즘 등 이런저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운동들은 더! 더! 더!를 외치던 주장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남의 아파트보다 시골의 자연 속 집이 몸과 마음은 더 편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귀농 귀촌을 하는 청년들도 종종 보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행동은 삶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관과 행복에 맞는 삶의 형태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입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이러한 것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말해주는 이도 적습니다. 또한 이 대입 경쟁이 너무나 강조되는 우리나라의 특성 상 이 경쟁을 완전히 무시하기에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그리는 삶의 형태 그 자체입니다.


이는 수능의 언어, 수리, 과학, 사회, 외국어영역 안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 점수의 줄 세우기가 나의 가치를 완전히 결정하는 것조차 아닙니다.          




공부


우리나라는 공부 자체가 하나의 의무가 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공부나 성적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고 그 사람이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사람을 사귀고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를 하고, 서로 보듬고, 아끼고, 어떻게 하면 다른 이에게 덜 상처를 주거나 내 상처를 달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에 대한 고민을 학교에서 많이 배우지는 못합니다. 경쟁과 정답 주입식 교육 안에서 저러한 가치들은 일부 무시되기도 합니다.


학교 공부 자체를 왜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찾거나 스스로 이해하기 이전에 이미 학생들은 공부라는 틀 속에 놓여집니다.


그러면 공부가 쉽게 싫어집니다.  의무화되고 강제화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의 즐거움


공자의 배우고 익히면 때때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공부는 즐거울 수 있는 행위입니다. 공부는 자신의 사고가 확장되는 즐거움과 호기심이 충족되고 무언가를 더 알아간다는 즐거움을 줍니다. 이 앎의 기쁨이 분명 존재합니다.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는지 몰랐던 어떤 아름답거나 경탄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의 흥분이나 기쁨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현대의 학문은 태고부터 이어온 석학들의 지혜가 그 안에 녹아 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 지혜를 만나가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독특한 시각들 노력들,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던 시도들을 알아가고 세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많은 노력들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실 공부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 직장을 잡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고 행복을 주는 취미 활동 같은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에 중요한 부분은 자발성입니다.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되어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는 이 기쁨과 즐거움을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게으름을 조절하기 위한 어느 정도의 타율성과 강제성이 다소 있더라도 그 안에 자율성이 아예 없으면 공부가 내 공부가 아니게 되어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어떤 것에 내가 더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가를 알아가는 것이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발견해나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신의 흥미와 적성이 사회적으로 인기 있는 가치와 매칭이 잘 된다면 좀 더 세상을 살기 쉬울 수도 있지만 그 가치가 그렇지 않다고 해서 마음의 소리를 무시한다면 마음이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삶은 그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하나의 형태, 명문대, 대기업 취직 등을 이루어야만 더 낫고 성공한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그 사람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느끼는 기쁨, 행복, 시간을 보내는 방법 등이 삶의 전체를 훨씬 크게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공부하기 싫을 때


공부가 하기 싫다면 아 내가 지금 공부가 하기 싫구나 하고 그 마음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억지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부가 재미있을까 내가 재미있게 할 방법은 없나하고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칸막이처진 독서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어학은 소리 내어 읽고 말하고 움직여 보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됩니다. 걸어 다니고 몸을 움직이면서 책을 읽거나 책을 오디오 파일로 듣거나 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오직 책상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만이 공부의 왕도도 아닙니다.


내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나만의 공부 방법, 내가 더 좋아할 수 있는 과목들을 찾아가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은 큰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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