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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fessor Sunny Sep 08. 2021

부모와 가난의 역할

어린 시절 이야기



나는 1982년 겨울, 김 씨 아버지와 함 씨 어머니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나중에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우리 집은 많이 가난했다고 말하는데, 나는 사실 크는 동안 가난이 뭔지,  부자가 뭔지를 잘 몰랐어서 그런지, 그런 환경 속에서 잘 파묻혀 살았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우리를 키우는 동안 참 고민과 갈등이 많았는지, 하교 후 집에 들어설 때 서럽게 울고 있는 날이 많았다. 그녀의 우울증과 모체의 그런 모습은 안타깝게도 어린 자녀인 나를 계속 밖으로 돌게 만들었는데,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을 되짚어보면 ‘얼른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소속감이 없다’라는 그런 느낌을 늘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고, 그것은 나를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독립체로 인정하는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꽤 큰 역할을 했다.  


엄마는 가난해서 남들 다하는 외식을 못했다는 것이 큰 한이었는지, 우리가 다 성장하고 나서는, 특히 아빠가 집에 없는 날은 거의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즐겨 드셨다. 우리 딸 셋은, 우리의 엄마가 우울증에 계속 좀 먹히지 않고, 이제 와서 참 똑똑한 방향성을 잡아서 다행이라 평가했다. 그런데 그런 말을 엄마에게 불현듯 들어서 인지, 아니면 나도 그게 은근 한이 되었는지, 남편과 아이랑 외식을 하는 날은, 그 음식이 맛있던지 아니던지를 떠나, 그 나가서 먹는 행위 자체가 그렇게 즐겁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없어서 외식을 할 기회가 참으로 적다. 외식을 하는 날은 음식점에 날아다니는 공기에서 조차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일련의 이벤트는 나에게 참 긍정적인 에너지와, 또 동시에 울컥하는 마음을 전달해주곤 했는데.  그 울컥하는 마음이라 함은.. 외식을 하면서도 남편에게 “여보, 우리는 성공한 ‘어른’으로 자랐어”라고 말하곤 한다. 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온 남편은 처음에는 “뭘 이런 걸 가지고” 말하다가도, 계속해서 그 말을 듣는 이제는 와이프가 그냥 감격했구나 하고 그러려니 웃어준다.  그렇게 외식을 할 때는 남편도 내 기분을 맞춰주는 건지 식당이 어떻네, 맛이 어땠네, 소리는 이제  최대한 삼간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제 나를 꽤나 잘 파악하고 있다.  


10대 이전에 삶은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생활하는 가운데 하나의 씬 (scene)들이 팝업 하듯이 떠오른다. 1982년은 아직 아들에 대한 가치가 더 높았다고 강조했던 그 유명한 1982 김지영에 관한 책도 있고. 내가 장손의 둘째 딸로 태어나면서 엄마는 우울증에 더 빠져들었다고 하는데. 딸만 셋인 장손의 집에서 이 둘째 딸이 너무 튀지 않지 않으면서도, 예쁘다는 칭찬을 받기 위해. 어릴 때는 어른들이 좋아하는 일이 뭘까. 고민하고, 찾아서 실행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태생적인 한계로 (?) 예쁨은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꽤 길었다. 이런 일련의 실패의 과정은 나 스스로와 내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일찍이 터득하는 원동력이.. (하하) 되어 주었다.

 

내가 굳이 예쁜 짓이나 나쁜 짓을 골라하지 않아도, 나의 행위와 상관없이 엄마는 스스로 불안해했고, 그런 것들은 그녀의 세 자녀들의 정서에 지대한 불안함을 안겼다. 이런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동생도 종종 이야기하곤 하는데, 내가 겪은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은 이랬다.  내가 4학년이던 어느 날, 엄마는 40킬로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 마르셨었는데, 아프다고 병원을 다녀왔길래 나는 ‘엄마, 의사가 뭐래?’ 하고 물으니 엄마는  ‘ 응, 엄마, 곧 죽는대’라고  대답했다. 그런 대답에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물을 수 있는 의지를 상실했다. 그 꼬맹이는 심한 내적 대화를 시작했다. ‘엄마는 도대체 언제 죽을까? 엄마가 말한 곧 이라는게 언제인가, 그럼 나는 이 집안에서 뭘 해야 하지. 언제쯤 나는 이 집에서 독립해야 하지,  뭘 하면서 살아야 하지’ 그런 걱정스러운 독립을 위한 계획을 일찍이 머릿속에 정립했다.


(40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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