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지트, 너의 이야기>
금요일 오후, 어김없이 나지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요.
같은 요일, 같은 시간, 다정한 인사.
한빈님을 보고 있으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사람한테도 리듬이라는 게 있구나.
한빈님은 원래 외국어를 전공했고, 언어를 연구하며 살던 사람이래요.
그러다 빵이 좋았고, 새로운 걸 연구해보고 싶어서 반죽을 시작했다는데요.
“한 번 해볼까?” 하던 게, 어느새 인생이 되어버렸대요.
처음 반죽을 해본 날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웃는데,
원래는 차분한 한빈님이 빵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말이 빨라지는 게 참 귀엽더라고요.
그리고 뭐랄까... 한빈님한테는 그 특유의 담담함이 있어요.
“갑자기 직종을 바꿔서 힘들지 않았어요?”라고 물으면,
“저는 스트레스를 잘 안 받아요. 그냥... 이렇게 사는 거죠 뭐.”
하고 웃어버리는 사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어요.
저는 자주 힘들다, 바쁘다, 불안하다,
그런 감정에 허우적거리는데,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게 왠지 부럽고, 또 배우고 싶기도 했어요.
한빈님은 요즘 루틴 만들기에 꽂혀 있다고 해요.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어떤 시간대를 어떻게 써야 덜 흔들릴지,
진지하게 생각해본다고 해요.
그런 작은 루틴들이 모여서 한빈님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젠가는 꼭, 빵집을 열고 싶다고 했어요.
“어떤 손님들이 오면 좋겠어요?”라고 물었더니,
“저처럼 조용히 들어와 앉아 쉬어가는 사람들요.”
그 말을 듣는데,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더라고요.
나지트를 방문하시는 손님들께 바라는 제 마음과 같아서요.
아무 말 없이 앉아서, 자기만의 리듬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빵 냄새 가득한 가게에 앉아 있다면...
거긴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
생각만 해도 행복한 그곳, 얼른 만나고 싶어서 현기증 납니다.
나지트 드림.
안녕! 나는 한빈이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나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지.
외국어를 전공했지만 빵을 너무 좋아해서 제빵사가 되기로 마음 먹고 무작정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을 시작했어.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빵집을 열고 싶다는 꿈이 있지!
지금은 잠시 쉬어가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빵집이야! 빵순이 그 자체지?
또래보다 느리게 걷고있어 가끔은 조급해지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는데 평온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 모든 사람은 각자의 속도가 있는거잖아? 그래서 책도 읽고 뮤지컬도 보기 시작했어. 그렇게 여기 혜화의 나지트에 오게 됐고, 지금은 금요일 손님이 되었어!
Q. 와, 정말 멋진 꿈이다. 한빈이 미래에 직접 운영할 ‘빵집’을 상상해본다면, 어떤 분위기야?
나는 일단 내가 편안하고 애정이 담긴 공간을 구성해야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나지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내가 좋아하는 공간을 생각하면 늘 '우드', '패브릭' 이 두 가지가 떠올라. 따뜻하고 포근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주거든. 그래서 꼭 이 두 가지를 활용한 공간을 만들거야. 그리고 그 곳에 가득한 다양한 빵을 상상하면, 벌써 설레!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듯 동네 사람들이 오며가며 들리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동네빵집을 열고 싶어.
Q. 한빈이 생각하는 좋은 빵이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저없이 권할 수 있을만큼 정직하게 만들어낸 빵이 좋은 빵이라고 생각해. 맛은 있어도 안좋은 재료 듬뿍 넣어서 만들었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마음 편히 건넬 수 있겠어.
설탕, 소금, 버터, 이스트 등등 모든 재료는 각자의 역할이 있어서 아예 제외하는건 힘들겠지만 적절한 양을 균형있게 넣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빵은 참 솔직해서 내가 어떻게 다루고, 얼마나 기다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달라져! 그래서 좌절할 때도 있지만 그게 매력이기도 해서 예쁘게 잘 구워져 나온 빵을 보면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그래서 나는 조금 느릴지라도 요령 피우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좋은 재료 아낌없이 넣어 좋은 빵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싶어!
Q. 베이커는 육체적 노동강도가 센 편이라고 알고있는데, 심신을 단련하는 한빈만의 팁이 있어?
맞아. 하루종일 서서 일하다 보면 다리가 퉁퉁 붓고, 무거운 반죽기와 온갖 재료들을 들었다 놨다 하다보니 손목이나 허리가 아파서 앓아 눕기도 해. 뜨거운 오븐을 수시로 사용하니 화상도 많이 입었어. 또 몸이 지치면 마음도 쉽게 지치는거 알지? 만사가 귀찮고 그만두고 싶은 시기도 당연히 있었어.
그럴 때 나는 가볍게 운동을 하거나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같아.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 오로지 체력을 위한 운동을 하지! 그치만 걷는건 좋아해서 평소에 산책을 자주 해. 걸으면서 주변을 많이 구경하는데, 다양한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면 자연스레 환기가 되면서 감정도 정리가 되더라고.
정신없이 일을 하면서도 꼭 나만의 시간을 갖는게 큰 도움이 돼. 운동이든 독서든 산책이든 내가 좋아하는 활동, 나에게 집중하는 활동을 해야한다는게 나의 팁이야. 소소하지만 확실한 팁이지 :)
Q. 한빈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어?
이 질문 되게 흥미로운 것 같아. 꽤 오래 고민하게 되네?
나는 미래의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사람은 아니야. 현재에 충실하고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 아마도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아. 왜 외국 영화 보면, 파이나 케이크 구워서 나눠주는 이웃집 할머니 있잖아? 나도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한 마디로 정리하면, 빵 굽는 할머니? 하하. 그런 삶이라면 충분히 행복한 할머니일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