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인데 임신?
엘라 한 명도 너무 힘들게 낳았고, 독박 육아로 키우다 보니 둘째는 절로 포기했었다. 예정된 신랑의 해외 주재원 생활도 한몫했다. 그런데 갑자기 암 선고를 받았고,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적어도 2~3군데 병원은 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삼성서울병원 유방외과에 갔다.
"둘째 계획은 없나요?"
"99%는 포기했으나 1%는 포기하지 못했죠."
"그럼 산부인과 협진을 잡을 테니 수술 전 난자 채취를 하시죠."
유방암을 진단받으면 5~10년 항호르몬제를 먹어야 하고 부작용으로는 조기폐경이 된다.
더 이상 너 아기 못 낳아."
라는 말을 듣고서야 암 치료는 안드로메다로 가고 엘라에게 '동생을 남겨 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들어와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에게 동생 만들어달라고 편지를 쓰던 엘라 얼굴이 떠올랐다. '산타할아버지에게 간절히 바라면, 소원이 이뤄질 거야.'라고 말하는 엘라를 보니 들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서울대 유방외과에서는 난자 채취 관련 이야기가 없었다. 호르몬 양성 환자에게 과배란을 유도하는 난자 채취가 위험할 수 있다는 글을 보았고 과잉진료라는 느낌도 들었기에 신랑과 포기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수술산을 넘는 게 우선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했고, 이후 항암치료 시작 전 종양내과에서 난자 채취 이야기를 또 던지신다. 수술 후 한 달 이내에는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하는데 난자 채취할 수 있는 타이밍도 운 좋게 잘 맞아떨어진다.
인생 마지막 기회,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영국에서는 여행 다니느라 둘째 생각을 못했고 한국에 들어와 암환자가 되고 나니 엘라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때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손을 내민다. 여동생도 아니고 결혼 한 남동생이…그리고 올케도 적극 보내라고 한다. 양가 할머니 댁도 가능했지만 엘라는 조카들이 있는 외삼촌 집으로 가는 것 아니면 ‘(단호하게) 가기 싫어!’ 이유는 ‘동생들이랑 놀고 있으면 엄마 생각이 덜 날 것 같아.’라고 한다.
동생 기저귀도 갈아주고, 동화책도 열심히 읽어주며 언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설령 생각보다 일찍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둘이 의지하면서 살아갈 모습에 더 욕심나기 시작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데 두 개로 겹쳐져 보이는 게 나에게 주는 사인 같다. 이글거리며 떠오를 때는 인생은 원래 힘든 거니까 나도 힘든 길을 가려는 운명 같은 느낌. 저절로 내면의 시간에 집중하게 되었고, 만물이 주는 사인이 나에게 주는 힌트 같았다.
난자 채취를 진행하기로 결정을 하고 차병원 의사 선생님을 만난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을 보니 성공 확률이 30%라는 말을 들어도 그 확률 안에 들어갈 것 같다.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배에 맞고 병원을 나오는 데 친정엄마의 문자
타목시펜을 복용하지 않을 경우
위험 부담이 있으니…
엘라에게도 동생이 생기는 기쁨보다
혹시 엄마가 아프면
그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어떤 선택을 하든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후회는 있다. 우리 부부 서로 좀 더 이해하고 도와줬으면 둘째를 만날 수 있었을까? 암 선고를 받아보니 ‘이런저런 욕심 버리고 영국 가기 전에 둘째 낳을걸’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내 그릇이 작았던 게 아쉽다. 몸(체력) 그릇이 부족하니 마음(인내심) 그릇은 더 빨리 소진되기 마련. 인생을 두 번 살 수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체력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을 텐데... 그럼 나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렸겠지.
또한 생에 대한 열망이 이렇게 강해질 줄 몰랐다. 그건 아마도 엄마 없는 딸을 생각하니 끝까지 엄마 자리는 지키고 싶나 보다.
삶의 끝자락에 서서야 보이는 후회
그리고 소중한 것들.
"엘라야, 엄마가 운동 열심히 시키는 이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