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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맘 끌레어 Oct 01. 2022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최소 3군데 이상 병원을 돌아다녀보고 결정할 것

짜장면과 짬뽕, 뜨아와 아아, 물냉과 비냉 심지어 엄마 좋아 아빠 좋아의 선택도 어려운데 수술 병원과 의사 선생님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갑상선 암과 자궁근종은 수술 날짜까지 잡았으나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갔다.

'만약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최소 3군데 이상 병원을 돌아다녀보고 결정할 것'

잊고 싶던 과거 경험이 중요한 순간에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귀찮아서, 번거롭다는 이유로, 병원 돌아다니는 사이에 암이 커질까 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나는 돌아다닐 것 같은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겠지만 요양병원에서 만난 사람들 열이면 열 모두 처음 간 상급병원에서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생각을 많이 하고 결정을 내리는 편이구나를 깨닫기도 했다.


과거에 나는 갑상선과 유방에 양성 혹이 있어 1년에 한 번씩 서울대병원에서 추적검사를 하고 있었다. 다만 영국살이와 코로나19 때문에 예약되어 있던 검사를 미루다 2년이 흘러버렸다. 한 번 그 날짜에 가지 못하면 6개월이 밀리는 서울대병원 초음파 시스템, 그래서 다른 병원의 건강검진센터를 먼저 예약하고 방문한다. 어떤 증상이 나타나서가 아니라, 1년에 한 번은 건강검진을 해 왔으므로.



"유방에 없던 혹이 발견이 되었어요. 모양이 좋지 않아 암으로 의심됩니다. 간단한 조직검사를 먼저 해 봅시다."

"예전에 갑상선도 그랬던 경험이 있어요. 간단한 조직검사라고 했는데 너무 아팠습니다. 문제는 조직검사 결과를 서울대 병원에 제출했지만 다시 검사하더라고요. 현재 서울대 병원에서 추적관찰 중이므로 해야 한다면 거기서 하겠습니다."

"언제 예약이 잡혀있나요?"

"한 달 후입니다."

"제가 볼 때 암 일확률이 90% 이상인데 한 달 후라면 너무 늦습니다."

"조직검사를 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암이라고 확신하시죠? 의사 선생님의 성급한 결론, 암이라는 말이 좀 그러네요."  

"기분 상했다면 미안합니다. 제가 암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이유는 환자가 한 달 후에 병원에 갈 것 같아서요. 그럼 너무 늦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오진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함께 검진을 받은 신랑을 만났다. 서로의 검진 결과 안부를 물어보다

"의사 선생님께서 암 이래. 그런데 지난번처럼 오진일 거야. 서울대 병원 초음파 변경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우니까 한 달 후에 가도 괜찮지 않을까?"

"급한 상황이라고 얘기하면 날짜를 당겨주지 않을까? 말이라도 해봐."
속으로 90% 이상 오진이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한다.


서울대병원 ‘암병원’을 인생에서 방문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제가 암이래요. 검진센터 의사 선생님께서 하루빨리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초음파 보는 날짜를 좀 당겨주실 수 있으세요?"

"날짜가 없어요. 우선 의사 선생님을 먼저 만나 뵙고, 초음파 날짜를 잡아달라고 하시겠어요?"


제일 빨리 볼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 조직검사를 했고, 결과는 암 일확률이 높으니 원하는 교수님을 생각하고 오란다. 유방암 명의를 찾아보니 서울대 병원에 한원식, 강남 차병원에 노동영, 아산병원에 안세현 교수님이 나온다. 그렇게 난 한원식 교수님을 먼저 만났다.


메모장에 질문할 목록을 잔뜩 쓴 신랑과 함께 첫 진료를 보았다. 방 2개를 진료실로 쓰고 계셨던 교수님은 우리 방으로 오자마자 차트만 열심히 보신다. 숨죽인 채 기다린다.

“허투가 애매해요. Fish검사 후 다시 볼게요.” 신랑이 질문하려는 찰나 이미 다른 방으로 가버리셨다. 아무리 명의라 하지만 질문을 할 수가 없는데 괜찮은 걸까?


책을 열심히 읽었고, 주변에 의사, 한의사 선생님께 조언도 많이 구했다.

“수술 정말 해야 하나요?”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하라고 했으면 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 삼성이나 아산병원은 사립병원이라 과잉진료가 있을 수도 있지만 서울대병원은 국립이라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FM으로 처리하거든. 그럼에도 수술을 해야 한다면 다른 병원 2군데를 꼭 가도록 해. 3명의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고 최종 결정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같으면 같은 대로, 다르면 다른 대로 네가 선택하는 데 보탬이 될 거야.”


“어떤 병원, 어떤 의사 선생님께 가는 게 좋을까요?”

“암 진단을 받으면 3대 빅 3 병원으로 가는 게 좋아. 빅 3이라고 하면 서울대, 아산, 삼성병원을 말해. 빅 3안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표준치료를 하기 때문에 크게 차이는 없어. 병원을 가야 하는 일이 정말 많으니까 집 가까운 곳에서 다니는 게 아무래도 편하겠지."


유방암 최고 권위자이신 노동영 교수님을 만난다. 워낙 데이터가 많아서 그런가 검진하자마자 대충의 '암 기수'도 말씀해주시고, 질문하는 것에 답도 친절하다. 따뜻한 성품의 명의를 직접 만나 뵙고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는 다른 병원에서 다녀야 한다는 점, 요양병원에서 셔틀버스가 운행이 안 된다는 점이 우려가 되어 포기했다. 이후 요양병원에서 노동영 교수님 때문에 차병원에 다니는 환우들을 몇 보았는데, 내가 걱정했던 부분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방사선 치료도 쉽게 메이저 병원에서 치료받았고, 셔틀버스가 운행이 안 되지만 다닐만하다고 말씀하셨다.


암환자가 되면 5년 동안 병원을 수도 없이 가야 한다고 한다. 유방암은 표준치료를 하니 가까운 병원이 최고라는 말에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삼성병원을 예약한다. 서울대병원보다 검사도 많이 하고, 방사선 치료 때 다른 병원과 달리 문신을 해줘서 기계가 더 최신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까지 서울대병원과 삼성병원 사이에 결정 내리기 어려웠지만 의사 선생님의 신뢰가 가까운 병원을 이겼다.


처음 만났던 한원식 교수님은 질문을 할 수도 없었지만 두 번째는 질문 목록에 맞춰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허투가 애매한 상황에서는 검사를 먼저 하고 다시 교수님을 만나 뵙는 게 옳았다. 어려웠던 의사 선생님과 병원 결정.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한 덕분인지 수술을 할 때도, 항암을 해야 할지 판단할 때도 교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2021년 8월 26일 수술 하루 전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가던 날


여기서 잠깐 한원식 교수님에 대해 덧붙여보자면 2018년 동아일보 주최 '10대 암 대표 명의 베스트 닥터'로 선정되었는데 그것도 40대 최연소였다는 것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가정에서는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빠, 신랑으로서) 100점 만점에 20점?으로 낮게 평가하셨지만, 교수님의 빈자리를 잠깐 겪어보니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존재감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수술 후 결과 들으러 가는 날 교수님이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자가 격리하시는 바람에 다른 교수님이 대진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때 병원은 마비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명의에게 치료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한원식 교수님,
저를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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