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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맘 끌레어 Sep 30. 2022

코로나19를 뚫고 간 스코틀랜드 여행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장소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7월 휴가는 아이슬란드에 있었을 텐데… 대신 차를 끌고 두 번째 프랑스 남부냐 스코틀랜드 스카이 섬이냐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2년 전 4월(2018년 4월), 부활절 휴가로 온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여행이 생각난다. 벚꽃 소식으로 가득한 한국과 달리 패딩을 입고 왔음에도 뼛속까지 추웠던 기억. 그때 내 몸속에 들어온 한기는 아직까지 빠지지 않은 느낌. 트라우마가 생긴 건지 7월임에도 스코틀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심 항상 날씨가 화창한 프랑스 남부가 더 좋기도 해서 ‘파리 디즈니랜드도 들렸다가 오자.’라고 설득하지만 엘라는 단호하게 '스코틀랜드 스카이 섬'이란다.


그녀의 선택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그녀의 이름 ‘Ella Skye(엘라 스카이)’로 지어진 Skye(스카이) 섬에 꼭 가고 싶다. 둘째, 본인 생일 주간이니 선택권을 자기에게 달라.


그렇게 우리는 2020년 7월 스코틀랜드로 떠난다.

7월 말인데도 겨울옷을 챙겨서.

스코틀랜드 날씨는 역시나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별로 내키지 않았던 여행이라서 그럴까. '아이슬란드도, 노르웨이도 아니면서 비슷하게 생겨가지고 날씨만 안 좋은... 나는 왜 스코틀랜드에 왔을까?'를 여러 번 생각할 정도로 못마땅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엘라에게 우주의 기운이 잠시 들어왔다 나간 것일까, 그녀의 선택이 옳았다.)


신선이 산다는 , 올드  오브 스토르(The Old Man of Storr) 스카이 섬의 핵심  하나인데 날씨가 계속 흐리다. 정상에 올라가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올라가 보지만 비바람은 심해지고 곤충습격(Highland midge: 스코틀랜드 곤충)까지 받으니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게 무슨 여행이야, 고행이지!'라는 생각뿐, 엘라 역시 옆에서 투덜거리느라 입이 코만큼 나왔다.

옷을 뚫고 습격할 정도로 강력한 모기떼인데, 얼굴을 가만히 냅둘리가 있으랴.(알고보니 모기가 아니라 Highland midge 모기떼 곤충류였다.)
비바람을 맞으며 정상에서 먹었던 라면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의 경험이 항암치료 중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른다. 선물처럼. 셋이서 힘든 것을 같이 이겨냈고, 정상에서 맛 본 라면은 너무 맛있었다고.



그러니 이것 또한 지나갈 테고,
곧 좋은 날이 올 거라고.
꽃이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봄이 오는 시기도 다를 거라고.




코로나19 상황이 정말 심각하니 에딘버러, 글래스고 같은 큰 도시는 피했다. 조용한 어촌마을에 B&B숙소를 잡았는데, (마스크도 없고, 거리두기도 없이) 펍 내부부터 바깥까지 술 마시는 사람들로 꽉 찼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자 쳐다보는 눈빛이 역시나 심상찮다. (코로나19를 우리가 퍼뜨린 것도 아닌데 동양인만 보면 안 좋은 감정이 생각나는 것인지.)

방에 도착하자마자 준비한 소독 스프레이로 문고리부터 시작해 손이 닿는 모든 곳을 닦는다. 마스크를 벗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떠다니는 기분을 떨칠 수 없는 채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었고,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갔는지 땅이 젖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어촌마을에 산책을 하는데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분명 어제는 지옥이었는데
오늘 아침은 천국이 따로 없다.



‘스톤헤이븐(Stonehaven)’이라는 표지판조차 내 마음속에서 다르게 읽힌다. Stone은 어제의 지옥(hell) 분위기, haven은 오늘 아침의 천국(heaven)을 나타내는 단어로.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 장소 스톤헤이븐.


지옥과 천국이 공존했던 스톤헤이븐(Stonehaven)

문득 암이라는 것도 ‘내가 스스로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 지옥과 천국이 공존하는데 내가 지옥으로 만들었다는 생각. 


코로나19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감정이입을 했던 과거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거리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그것은 뉴스거리가 된다’는 찰스 대너(Charles A. Dana)의 말처럼, 뉴스 속 세상과 현실의 갭은 크다. 시끄러운 뉴스를 보면서 일상의 공간을 지옥으로 만들지 말 것. 그런 일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날 확률은 낮으니까.


스톤헤이븐에서의 경험은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 때마다 경종을 울린다.


혹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나요? 그 누군가로 인해 화가 나나요? 그런데요.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지옥이라는 공간으로 허락하게끔 만드는 행위더라고요. 그런 부정적 감정은 하루빨리 털어버리는 게 ‘나를 위해서’ 좋은 거였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죽도록 미운 사람도 피할 수 없는 관계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가족 같은…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면서 살 수밖에 없더라고요. 마음속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 역시 누가 대신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해야 하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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