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는 생일을 기점으로 D-day 며칠 전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제는 나이 먹는 게 싫은 생일날이다. 뭘 할까 고민하다 물개를 보러 간다.
동물원에 갇혀 있는 물개가 아닌 바다에 살고 있는 물개. 주차장에서부터 15~20분 아이와 걸어야 하고 들고 갈 짐도 많기 때문에 쉽지 많은 않다. 길도 모래사장 혹은 언덕이라 유모차도 수레 끌 듯이 뒷걸음질하며 끈다. 그렇게 도착한 목적지에서 순간 얼음이 되었다.
하반신 불구의 장애인 엄마를 데리고 온 가족의 모습. 우리가 본 첫 장면은 엄마는 휠체어에, 아빠는 휠체어 뒤에서, 남매는 옆에서 물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힐끔힐끔 쳐다보며 마음에 담는다. 그런데 순간 여기까지 휠체어를 어떻게 들고 내려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두 시간 후, 가족이 짐을 챙긴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던 딸과 아들은 돗자리 위에 쌓여있던 짐을 같이 정리한다. 자기네들 키보다 훨씬 큰 돗자리 모래를 팍팍 털면서. (너무 빨리 철들어버린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그 시간 아빠는 아내를 업고 모래사장 언덕을 힘겹게 올라간 후, 다시 휠체어를 언덕 위로 올려놓는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함께 돕던 가족의 모습은 어떤 가족보다 단단해 보였고, 아름다웠다.
장애인 가족이 함께 여행하는 모습은 이후에도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화장실에서는 60대 어머님이 지체장애인으로 보이는 30대 딸에게 허리를 굽혀 립스틱을 정성스레 발라준다. 손잡고,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했을까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이 또르르.
영국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크고 특이한 목소리를 가진, 누가 봐도 아파 보이는 청년이 큰 풍선을 들고 뛰어다닌다. 지긋하게 나이 드신 아버님은 그 청년의 눈높이에 맞춰 뛰어다니며 놀아준다. 분명 외모는 30대 청년과 50-60대 아버님인데,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은 3살 남자아이를 둔 젊은 아버지 모습이다. 타이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그런 모습을 어머님은 카메라에 담고 있다.
종종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 드는 생각은 한국과 다르게 장애인을 대하는 선진국의 환경이 ‘부럽다’였다. 아픈 청년이 큰 풍선을 들고 소리치며 뛰어다녀도 누구 하나 의식하는 사람 없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 혹시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선진국의 시민의식을 보았다.
과연 한국에서는 장애인 가족들이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고백한다. 오지랖 넓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상처받은 적이 많았다고. (하지만 한국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모습에 희망이 보인다)
척수손상을 입어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20대 여자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하루라도
변기통에 혼자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처해진 환경과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자주 표출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팔다리 멀쩡하신가요? 넘어지셨다고요? 그럼 일어나면 되죠. 두 다리 멀쩡하게 걸어 다닐 수 있고, 두 손이 자유롭다면 뭐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때론 우린 너무 많이 가졌으면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