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인 동시에 중증환자가 될 줄은…
영국에서 ‘여행자’로 동화 같은 삶을 살았는데, 한국에 돌아왔더니 ‘암환자’란다. 믿을 수가 없어 결과를 알려주는 의사 선생님에게 몇 번을 되물었다.
“10년 전에 갑상선암으로 진단받았어요. 그래서 서울대 병원에 수술 날짜까지 잡았는데, 입원 며칠 전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암이 아니니 수술을 안 해도 되고, 추적검사만 정기적으로 하자고요. 그래서 10년째 추적검사 중이고 사이즈도 변함없어요. 갑상선처럼 조직검사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잖아요. 오진일 것 같은데, 재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요?
“갑상선과 조직검사 방법이 달라요. 불행히도 유방암은 오진일 확률이 없어요.”
교수님 방에서 나와 원무과에 수납을 한다.
“당신은 앞으로 중증환자로 분류되어요. 5년 동안 병원비 5%만 본인부담금으로 내고, 95%는 공단에서 부담할 거예요. 결제금액 ㅇㅇ에요.”
내가 중증환자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어감이 별로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건강한 부모님이 계시고, 암 가족력도 없다. 영국에 살며 건강검진받으러 한국에 잠깐 나왔을 때도 아무 문제없었는데, 2년 만에 암이 생겨 40세 중증환자가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후계획을 생각하며 경제적 자유를 얻고자 노력했는데, 갑자기 돈이 시퍼런 종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퍼런 종이 쪼가리 필요 없다고!!!! 제발 일반인으로 돌려줘!!!”라고 속으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계속 부정하다 몇 시간이 흘러서야 유방암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검색하다 보니 수술 후 대부분 머리 쉐이빙을 하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그러면서 조기폐경, 이어지는 갱년기.
아……너무 큰 산이라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샤워를 하는데 아까 검색했던 내용이 떠오르면서 '항암치료받지 말고 내 운명을 받아들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긴 터널을 지나갈 자신이 없었다.
새벽 3시에 갑자기 눈이 떠지면서, ‘이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 아닐까?' 착각을 하기도 했다. 설령 수술 후라도 의사가 “다른 사람이랑 조직 슬라이드가 바뀌었어요. 죄송해요.” 그럼 얼마나 좋을까?
암환자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수술로 암 덩어리만 깨끗하게 도려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혈액을 통해 흘러 다니는 암세포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여지가 크기에 항암, 방사선 치료를 하는 거였다. 치료가 끝났더라도 재발할 수 있어 5년 동안 중증 코드가 적용되고, 5년 후 ‘완치’라는 판정을 내린다.
심지어 유방암은 ‘꼬리가 긴 암’으로 분류되어 10년, 15년 후에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수술 후 상처가 생기더라도, 암이 아니라고 판정만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마저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쉐이빙을 안 해도 되고, 5-10년 동안 호르몬 약을 먹지 않아도 되니까.
삶이란 원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라 되뇌며 이겨내자고 다짐해본다. ‘5년만 고생하면 되는데, 엘라가 얼마나 예쁘게 클지 그 모습 지켜봐야지.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면 어떡해. 내가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게 엘라의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겠어.’ 마음을 가다듬으며 ‘괜찮다’ 해보지만,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마음이 요동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