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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맘 끌레어 Oct 03.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그립다

먹는 즐거움 말고 다른 즐거움도 있다는 것

영국살이 전에는 끼니때만 되면 먹고 싶은 맛집 음식들이 그렇게 생각났었다. 차를 타고 가서 30분 혹은 한 시간이 걸려서라도 먹고 올 만큼 먹는 것에 진심이었던 편. 그런데 영국에서 먹는 즐거움을 찾는 것보다 다른 즐거움을 찾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깨닫는다.

  

먹는 것에 진심인 한국인들과
먹는 것에 영혼이 없는 영국인들.

  

반도이지만 다양한 해산물을 먹는 한국인들과 섬나라임에도 피시 앤 칩스 빼고는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영국인들.


영국살이 전에는 섬나라니까 마트에서도 다양한 해산물이 팔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오징어조차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품목이 아닐 정도, 설령 찾는다고 해도 냉동 코너에 있고 싱싱해 보이지 않아 사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기도. 


영국에서 탈출하듯 한국으로 들어와 자가 격리하는 첫째 날. 야식으로 회를 주문했는데 서비스로 주는 꽁치조차 고양이 생선 발라먹듯 너무 맛있게 먹었던 우리셋.

누군가 ‘영국에 다시 갈래?’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한국이 좋았다. 분명,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운 마음이 쌓이다 어느 순간 그 공간이 런던으로 꽉 차는 날이 있다.


암 덩어리를 키운 곳인데도 가고 싶어?”


“고구마 백만 개 체한 것 같은 일처리는 마음에 안 들지만, 다른 즐거움이 너무 그립네.”

(먹는 즐거움도 없고 답답한 구석도 많지만 배움의 즐거움은 영혼이 성장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고백하건대, 영국살이 후 나도 모르게 ‘영국은 이런데 한국은 저러네?’ 비교하며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이런 생각들이 결코 나 자신에게 좋지만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좋은 점만 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는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므로 너그럽게 봐주면 좋겠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인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배운 것 5가지.


첫째, 해리포터 시리즈가 괜히 나온 게 아닐 만큼 스토리 강국이다.


먹는 것과 다르게 책 읽기에 대해서는 진심인 편. 엘라는 런던에서 공립학교 교육만으로 알파벳을 읽기 시작해 책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었다. 비법은 ‘영국 북백(book bag)과 학교에서 빌려 오는 책’이다.

북백을 챙겨가 교실에 있는 책을 빌리던 엘라

 

좌: 파랑색 가방의 북백(book bag),  우: 학교에서 언제든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던 공간


영국은 예비 초등(만 4세)이 되면 학교에서 파닉스를 가르쳐준다. (학교 교육만으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책가방은 안 가지고 와도 북백(book bag)은 꼭 챙겨 보내달라는 담임 선생님 부탁. 북백을 챙겨가면 수업과 연관된 책을 집으로 보내주신다. 집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읽게 끔 10-20분만 봐주면 된다. 이렇게 더듬더듬 읽다 보면 그게 쌓여 몇 개월 후에는 스스로 읽기 독립을 한다.

북백만 갖고 가면 교실에 어떤 책도 집으로 빌려 올 수 있고, 학교 도서관뿐만 아니라 아이를 픽업하는 장소조차 그림책이 많았다. 그러니 도서관을 가지 않아도 매일 새로운 책을 학교에서 한 권씩 빌려오고, 픽업하면서 한 두 권씩 읽게 되는, ‘일상이 책 읽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카페에서 잠깐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도 소지품이 분실될 정도로 소매치기가 잦은 나라지만, 책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후했다. (개인이 서점에서 책을 사면 적립금을 학교로 기부하는 제도가 있어 그렇게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도서관 카드 없이 아이들을 믿고 마음대로 빌려주고, 2층 침대 혹은 빈백 소파가 교실에 있어 쉬는 시간에도 마음껏 그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엘라는 틈만 나면 그 공간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에 반해 한국은 책 빌리는 것도 조금 까다롭고, 학교 도서관에 가야 빌릴 수 있다. 도서관도 코로나19 때문에 학년별로 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도)



둘째, 런던 대부분의 뮤지엄과 미술관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어떤 사람들은 훔쳐왔으니까 그렇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똑같이 훔쳐왔는데 루브르 박물관은 20유로 이상을 받는다.

‘세금으로 충당하기에도 힘들 텐데 어떻게 무료가 가능하지?’라는 의문이 들 텐데 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해 재분배하는 기능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사진, 로스차일드 가문의 집이 보인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비공개 재산 순위로 볼 때, 로스차일드 가문에 비하면 세계 1,2위의 재산은 세발의 피다. 추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산이 많은 만큼 금은보화가 많겠지만 집에 보관하지 않고 대영박물관에 공개했다.

대영박물관 초입부에 있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집. 다른 나라였다면 동판에 누구집이라고 써 놓았을텐데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는 영국 사람들의 성향을 볼 수 있었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비공개 전세계 부자 순위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에 비하면 세계 1,2위의 재산은 세발의 피임을 알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

  


한국에 비해 계층 차이가 훨씬 심함에도 불구하고 영국 서민들이 느끼는 박탈 의식은 적다.

“그건 그들의 삶이지.”

질투와 시기를 한다기보다 나의 삶과 다르다는 생각. 상류층은 그에 맞게 기부를 하고, 서민들은 공유된 인프라가 충분하니 상대적으로 불평불만이 적다. 그들의 사적인 삶을 존중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공원이나 뮤지엄을 누리면 되니까.

  

그 어떤 나라를 여행 다녀봐도 런던만큼 뮤지엄이 잘 되어있는 나라도 없었고, 겨우 3년 살이로 배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런던을 떠나면서 가장 슬펐던 점이 ‘뮤지엄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것, 한국에서 가기에는 너무 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꿈이 생겼다. 한국에 살면서 책으로 다양한 여행을 한 후, 1년에 한 달은 런던에서 살아있는 뮤지엄 교육을 시켜주고 싶다는 것. (물론 한국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서 더 좋은 문화 환경으로 바뀔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부자들이여, 기부문화를 통해 한국의 공원과 뮤지엄 인프라를 발전시켜 주소서.)

상상으로 혹은 책으로 그리는 것이 아닌 직접 관찰하며 그릴 수 있는 환경


셋째, 본인이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한 후 집요하게 파는 교육 문화이다.


우리나라는 비싼 교구들을 준비해놓은 몬테소리 수업 혹은 유치원에서만 선택 수업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한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다. 그에 반해 영국은 60명의 아이들이 있어도 다양한 활동들이 있고, 본인이 하고 싶은 수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몬테소리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음에도 몬테소리 철학이 반영되어 있었다. 모든 수업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본인에게 선택권을 많이 준다.)

‘화산’과 관련된 주제로 수업을 한다면 한 달 내내 화산과 관련된 활동을 한다. (주제는 화산이지만 활동적인 측면에서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기본적인 이론수업 후, 자연사박물관으로 필드트립(견학) 그리고 이어지는 그리기 혹은 만들기 수업이 그 과정이다. 일명 ‘프로젝트 수업’이고, 한국처럼 연중행사가 아닌 항시 이렇게 운영되다 보니 한 주제에 관련해서만큼은 아이들이 박사가 되어간다. 배움의 즐거움은 저절로 따라오는 식이다.

한 반에 15-20명 정도였던 유치원(만3세).,4개의 활동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하고 싶은 활동을 선택해서 하는 시스템이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지만 실제로 보면 '핀셋으로 붙였나?' 싶을 정도로 작은 사이즈였다. (어렸을 때 젓가락질도 안해서 동양인보다 손재주도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우: 부화 모습까지 전시되어 있는 런던 자연사 박물관


넷째, 어린이날이 필요 없을 만큼 어린이가 항상 행복한 나라다.

 

유럽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탈 때면 어린이 손님들이 가득하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시끄럽게 울어도 그 누구 하나 불평불만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문화충격이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스튜어디스한테 얘기해서 주의를 주라거나 안 좋은 표정으로 쳐다보면 아이 엄마는 죄인이 된 기분인데 영국에서만큼은 당당해도 된다. 즉, 맘충, 노키즈존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아이와 함께 있는 가족에게는 친절한 영국인들이다.

  어른이 질문하면 무뚝뚝한 표정에 간단 대답이지만, 아이가 질문하면 뭐든 친절하게 웃으면서 자세히 가르쳐주는 나라. 어딜 가든 키즈밀이 있고, ‘베이비치노’가 익숙한 문화. 어린이날만 특별한 게 아닌 365일 아이들이라면 환영해주는 영국이 그립다. (그래야 출산율이 좋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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