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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맘 끌레어 Sep 29. 2022

음식에 답이 안 나오는 나라, 영국

별걸 다 경험했던 엘라네

  '락다운 생활도 풀리는 날이 오는구나. 셋이서 24시간 갇혀 살다 마트가 아닌 다른 곳으로 외출이 가능하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신랑은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여행 다니기 정말 좋은 시즌이다'며 기대에 부풀어있다.

  그러나 하루 사.망.자가 300명… 외출을 해도 될까? 외출을 하면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핸드 드라이어를 사용하거나 변기 뚜껑을 열고 물을 내리면 바이러스가 공중에 뿜어져 나온다고 했다... 창문이 없는 화장실도 있는 데다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들과 화장실을 같이 쓴다는 것. 괜찮을까?'


  당시 영국 대부분의 화장실이 폐쇄되었고, 운 좋게 화장실을 찾는다고 해도 코로나를 뚫고 들어갈 자신은 없었다. 아마존을 뒤쳐 차에서 싣고 다닐만한 휴대용 변기를 산다. 운전석 뒷좌석에 큰 쓰레기봉투를 넣은 휴대용 변기, 셋이서 돌아가면서 작은 볼일을 본다. 음악을 틀어놓지만 '쉬' 소리가 들릴 때는 가족이어도 참 민망한 상황이다.


엘라는 휴대용 변기위에서 볼일을 보는 중. 쉿!

 

  그런데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차를 유심히 봐도 우리처럼 변기를 갖고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하는 걸까?’

  궁금해하던 찰나 어디론가 급하게 뛰어갔다 나올 때는 발걸음이 가벼운 사람들 여럿 보고 답을 찾았다. 특별한 게 없는 우리가 생각하는 딱 그것. 그러니 집 앞 공원 앞에 ‘여긴 공원이지 화장실이 아니에요(This is a park, not a toilet)’라고 우회적으로 쓰여있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제발, 똥 싸지 마세요. 실수하면 치워주세요.’라고. (당시 런던을 산책하다 보면 강아지똥만큼 인변을 자주 보았고, 치우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너무하다 싶었다.)


  책 [101마리 달마시안]의 배경장소인 집 바로 앞 프림로즈 힐 공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평화로움의 장소가 불쾌한 장소로 바뀐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락다운으로 인해 술 마실 수 있는 모든 장소가 문을 닫자 공원에서 밤늦게까지 술파티가 열렸다. 새벽에 너무 시끄러워 창 밖을 보면 아무 차 위에 올라가서 노래 부르며 볼일을 보는 모습.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잘못도 안 한 내가 창문 속으로 숨어야 하는 적반하장 상황까지. (여기서 런던 집 구할 때 개인 차고(garage)의 유무는 중요한 요소. 햄스테드에 사는 한국인 지인은 정기권을 끊어 집 앞에 주차해놓았는데 차 엔진을 도둑맞는 경험까지 했다는)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뉴스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범죄가 뒤따라 보도되곤 했기에 외출이 무서웠다. 런던은 좀 덜했지만 영국 시골여행이라도 하다 보면 동양인은 우리가 유일했다. 그 말은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우리가 전부.


마스크 쓰고 있는 것 보니
코로나19에 걸렸지? 중국에서 왔냐?

  

  이렇게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최근에 본 미국 마트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얼굴에 칼을 맞아 20cm 흉터가 진 아빠와 어린 아들 사진이 떠올랐다. 우리를 둘러싸고 말을 거는 그들을 보면서 혹시나 주머니에 칼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눈동자는 그들의 손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는 온갖 시나리오 A안, B안을 생각하며 내 몸의 세포들을 긴장시켰다. 전에는 엘라와 둘이서 여행을 다녀도 무서울 게 없었는데 이제는 셋이서 다녀도 덜덜 떨리는 순간을 경험할 줄이야.




  코로나19 이전에는 날씨가 좋으면 무조건 나가는 날인데, 이제는 반대로 사람이 없는 궂은 날씨에 외출을 한다. 아이슬란드에서나 느낄 수 있는 억센 바람, 평소 같았으면 ‘이 날씨에 무슨 여행이야.’했겠지만 몇 주 집콕하다보면 뭐든 감사한 마음으로 떠나는 우리 셋. 여행에 진심이었던 우리인데 화장실이 해결된 이상 못 다닐 이유가 있냐며… 코로나19 이전보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불편한 것도 많지만 즐겁게 다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 때문에 영국 여행이 힘들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영국 맛집의 대부분은 어딜 가도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 우리나라 식으로는 생선가스에 감자튀김)', 그들에게는 맛집 일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피시 앤 칩스'만 빼고 모드. (가끔 먹어도 맛있을까 말까 한 기름 한 바가지 음식, 건강에도 안 좋은데 어찌 자주 먹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떠오른 과거의 추억들.

  


  비행기를 타고 나간 첫 해외여행지,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러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영국에 살며 음식에 대한 기대도 내심 컸다. 여긴 꼭 가보라며 지인들이 추천해준 음식점. 그런데 엘라가 좋아하는 ‘볼로네제 파스타’가 없다. 혹시나 하면서 주문할 때 물어보았는데 셰프가 해 준다고 한다. 메뉴에도 없는 음식이니 별 기대 없이 먹는데, ‘면을 이렇게 맛있게 삶을 수도 있는 거야?’ 흠잡을 수 없는 맛에 우리셋 모두 엄지척을 날렸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여행객 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음식에 감동받았다고 얘기하자,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런던에서 왔다고 하니


"유럽 음식이 다 맛있지. 영국 빼고.
영국은 유럽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래 영국은 유럽이 아니지…)

  음식에 답이 안 나오는 나라로 유명한 영국, 런던만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맛있기만 한데. 편견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런던이니까) 다만 시골로 여행을 다녀보면 ‘얘네 정말 음식에 영혼이 없구나’하는 생각. (반대로 ‘내가 요리한 음식이 제일 맛있을 수 있구나’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곳)


  블래넘 팰리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햄버거를 주문했을 때다. 햄버거라고 하면 토마토, 양상추, 양파, 오이는 기본이다. 그런데 그런 기본을 영국에서 상상하면 안 된다. 너무 두꺼워 텁텁하다 못해 고구마 백 개먹는 느낌의 패티, 가는 양파 3-4 가닥이 전부, 다른 야채는 하.나.도 없다.

  그날 이후 웬만해서는 동네 햄버거 집보다 맥도날드를 선택한다. 그런데 맥도날드 마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맛이 없다. 키즈 버거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실수를 하는지) 오이가 종종 없기도. (이런 실수가 흔한 영국이니까.)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엘라는 햄버거를 주문하면 항상 오이와 토마토가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코로나19 전에는 유럽 본토 여행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를 해소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흔히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라고 불리는 영국식 아침메뉴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포함된다. 스크램블 에그 또는 계란 프라이, 소시지, 블랙 푸딩(선지 소시지), 해시브라운, 베이크드 빈즈, 토마토, 버섯.

대표적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야채는 어디???
좌: 야채를 못 먹어 저녁에 샐러드를 주문하면 야채만 잔뜩. 우: 맛이 없을 수 없는 해산물 비주얼. 반전은 맛이 없어 다 남겼다는 사실.


  B&B(Bed and Breakfast: 숙박과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곳)나 에어비앤비 그리고 호텔을 여행하다 보면 두꺼운 베이컨, 소시지, 해시브라운은 양이 엄청 많지만 야채는 빈곤하게 준다. 신기할 정도로 고기만 많고, 야채 과일은 구경하기 힘들다. 보는 앞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도 예의가 아닌데, 두껍고 맛도 없는 영국식 베이컨을 다 먹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우리 가족만 머무르는 에어비앤비, 매너 없는 한국인이 되지 않기 위해 주문한 음식만은 최대한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음식을 매번 남길 수도 없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여행 요령이 생긴 꼬마의 주문 첫마디


저  베지테리언이에요
(Vegetarian: 채식주의자)


베지테리언이라고 말하면 고기는 줄어들고, 야채는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던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엘라에게는 이런 경험 자체가 좋은 교육이었다. 조금 불편한 여행도 생각을 바꾸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 조금 불편한 삶에서도 하나씩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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