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라맘 끌레어 Sep 26. 2022

죽지 않을 만큼만 살려 놓는 영국 NHS

한국은 집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부르고,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된다. 그런데 영국은 그렇지가 않았다. 하루면 해결될 간단한 일도 예약은 힘들게, 수리는 몇 날 며칠…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또 고장 난다. (미국에 살다온 신랑의 '빠른 일처리 순위'를 (주관적으로) 매겨본다면 북유럽> 독일, 미국>>>영국>>>프랑스)


병원도 비슷하다. 엘라 친구 유러피안 엄빠들의 런던 병원 경험담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운동하다 어깨 골절 혹은 교통사고로 무릎뼈 골절, 이후 수술과 재활 경험담의 공통점은,

죽지 않을 만큼만 살려 놓더라.
비가 올 때마다 시큰거리고 아프다.
이후 삶의 질은 떨어졌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영화 [식코]를 보면 또 다른 상황이 나온다.


돈 없으면, 죽으란 말이오?

  손가락을 2개 잘린 가난한 환자가 병원을 찾았으나, 손가락 접합 비용이 각각 1만 2천, 6만 달러나(원화로 약 1억) 돼서 접합 비용이 싼 손가락 하나만 붙였고 나머지 하나의 손가락은 갈매기 밥으로 던져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영화에서는 이 사람의 사례를 보여준 뒤 "이 영화는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영화는 보험 가입자여도 보험 적용이 개판이라는 것을 핵심 주제로 삼았는데, 손가락이 잘린 이 사람은 보험 미가입자이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는 게 당연한 한국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야!" 라면서 황당하겠지만 민영의료보험뿐인 미국이라 발생하는 경우.

출처: 식코,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8B%9D%EC%BD%94


죽지 않을 만큼 살려놓는 영국이냐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미국이냐. 소위 말하는 선진국 의료시스템의 민낯 풍경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주관적 경험담)


영국의 의료시설은 크게 둘로 나뉜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NHS(국민보건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와 개인병원이다. NHS는 누구나 무료로 치료를 해 준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기시간이 길다. 그에 반해 개인병원은 돈만 내면 치료를 빨리 받을 수 있다. (암 치료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영국인들의 NHS에 관한 자부심은 종교라고 불릴 만큼 대단하다.)


‘개인병원에 가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럴까? 어느 날 이빨이 너무 아파 개인병원 치과에 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금니가 썩어서 신경치료를 해야 했는데 첫 진료비 100파운드(대략 15만 원)를 내고도 원인을 잘 찾지 못했다. 기껏 내린 처방은 치약 혹은 소금으로 잇몸 마사지를 하라는 것. 그렇다면 그 치과가 이상한 치과라서? 셜록홈즈 집인 베이커 스트리트 근처에 위치한, 구글 리뷰도 좋고 점수도 4.6에 해당한다.


좌: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이 그림 그릴 수 있게 미술재료가 있다. 우: 뮤지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치과 의자가 전시되어 있다.
우: 검진하는 동안 엘라에게 [페파 피그]를 틀어줄 정도로 섬세했으나 나의 치료는 놀라울 정도로 화나게 만들었다.

 

어린 엘라의 정기검진은 괜찮았으나 신경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을 잇몸 마사지를 한다고 달라졌을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치료는 안되고 화만 잔뜩 났다. 결국 뉴몰든 한인 치과로 가서 신경치료 여러 번 후, 치아색으로 덮어 씌우는 크라운을 했다. 런던 시내 개인병원이랑 비교하자면 시설은 타이머신을 타고 19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지만 치료는 최선이었다.


2019년,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치과 정기검진을 한다.

“어머, 요즘은 이렇게 투박하게 크라운을 안 씌우는데.. 어디서 치료하셨어요?”


영국 온라인 카페에서 잘된 치료와 잘못된 치료에 관해 읽었던 글이 생각났다. 영국에서 치과 치료를 받고 한국에 갔더니 ‘이렇게 치료하면 절대 안 되는 거야(잘못된 사례).’라며 다른 동료 의사들을 불렀다. 반대로 한국에서 치료 후 영국 치과에 갔더니 ‘치료는 이렇게 하는 거야(잘된 사례).’라며 동료 의사들을 불러 구경시켜줬다는 이야기.


영국에 살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이렇게 훌륭하고 감사한 것인지 알았을까?

누가 헬조선이래???


이전 05화 그렇게 여행 다니며 뭘 깨달았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