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 말고, 본인 심장소리 들어본 적 있나요?
항암치료 부작용 예방차원에서 심장초음파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은 환자가 너무 많은 이유로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서 검사 후 결과지만 들고 오란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 서류를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다시 쳐다본다.
이런 독한 항암제를? 치료하는 중이시군요."
"아. 네…..”
독한 항암제 처방을 당연시하는 상급병원 의사선생만 만나다 다른 공간의 의사 선생님과 첫 만남. 나만 다른 행성에서 온 느낌이었다.
의사 선생님 진료 후 심장초음파실에 들어간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셨다 참으세요..."
"후후....."
몇 번을 들이마셨다 내셨다 하는데도 끝나지 않는다. 갑상선, 유방초음파로도 부족해 심장까지 초음파를 체크해야 하다니... 항암이 내 몸을 정말 망치는구나 싶은 마음에 갑자기 화가 난다.
(초음파에서 들리는 터질듯한 소리)
쿵쾅쿵쾅
딸 초음파 소리만 임신 때 들어봤지, 내 심장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의도치 않게 온전히 집중하며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 화가 난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눈물이 울컥한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마음(심장)아. 그동안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었는데 몰라줘서 미안해. 앞으로 내가 잘할게. 너의 존재감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달릴게.”
항암 중이지만 러닝머신에서 인터벌로 열심히 달린다. 항암을 이겨내려면 무조건 단세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소화하는 단세포
처음 시작이 어려워 그렇지 조금만 버티는 임계점만 지나면 수도꼭지에 물 튼 것처럼 땀이 난다. 살아있는 심장소리와 함께 개운함까지. ‘왜 이제야 뒷북이야… 진작에 땀 흘리며 독소 좀 많이 배출했어야지.'
우리는 손에 쥐고 있을 때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꿈에 그리던 배우자를 만나면 불행 없이 항상 행복할까? 갖고 싶었던 물건, 물욕을 해소하면 행복타임이 얼마나 유지될까?
자극을 행복으로 착각하지 말기
삶이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최악의 상상을 해보기.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불만이라면 합격하지 못했을 때를 생각해보고, 배우자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만이라면 어느 날 배우자가 사라진다고 가정해보기.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불만이었던 게 얼마나 소중한지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으니까.
더 큰 가슴, 더 많은 머리카락을 부러워했던 과거가 부끄럽다. 그만하면 괜찮고, 예쁘다 예쁘다 아껴줬어야 했는데... 없어지고 나서야 깨달은 내가 참 바보 같다.
할미꽃이든 호박꽃이든 젊다는 그 자체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고 그것 자체를 예뻐해줬어야 했었다. 그런데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장미꽃 혹은 수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을 부러워했을까? (장미꽃 혹은 수국은 또 다른 이유로 다른 이들을 부러워할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
오늘도 열일하는 나의 심장에게
‘마음아, 오늘도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심장을 마중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