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집인데 노숙자 같아!!

분명히 집은 집인데 우린 왜 노숙자 같지?

by 다정한 똘언니

월 7만원의 피폐한 생활이 시작한지 하루.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 이 집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아이의 건강상태나 우리들의 생활을 생각했을때, 낮에는 무조건 외출을 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패딩점퍼부터 벗어던지고 전기가 찌릿거리는 욕실에서 짧고 굵게 고양이 세수를 한 뒤, 그래도 스킨케어라는 것을 좀 해본다. 그리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외출준비를 한다. 이부자리는 정리할것도 없다는게 함정이다. 심지어 구매한 매트리스는 비닐을 뜯지도 못한채 눅눅한 흙바닥에 두고 지내기 시작했다.


따져도 봤다. 우리에게 이런 곳도 집이랍시고 돈을 받고 내줄 생각을 하는 그 한인에게 따져 묻기도 했다. 여기 현지인들이야, 할 말이 없긴 하다. 이 사람들과 우리랑은 문화가 다르고 이 사람들은 원체 이렇게 비정상으로 살아도 이상할게 없는 사람들이니까 이해를 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어짜피 이해를 못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나랑 같은 국적의 사람인 한국사람은 좀 달라야 하는거 아니었을까? 그래도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고 본인도 아이가 있는데 어떻게 이런 공사장, 그것도 짓다 만 이런 흙밭에서 아이랑 함께 매트리스 하나면 잘 수 있고 생활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지.. 돈을 달라고 할 수 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중이다.

물을 틀면 도대체 물은 어디서 올라오는 것이며 어디로 빠지는 것인가...

우리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한 번 해보기 위해 도전을 했었다. 하지만 매번 실패를 하니 답답할 노릇이긴 했다. 한국에서부터 3만원 주고 샀던 전기불판을 가져왔었는데 사용을 하고 나면 코팅이 되어 있어서 닦아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 외의 식기구들은 도저히 세척이 안되는 것. 세제를 때려부어도 스펀지로 박박 문질러도 도저히 세척이 안되더라. 게다가 싱크대에서 물을 틀면 플라스틱 수도관 밖으로 물이 줄줄 새서 발은 온통 물바다. 총체적 난국인 것이다. 어디로 물이 빠지는지 너무 궁금했었는데, 그렇다. 하수구는 없었다. 거품이 있으면 거품이 그대로 주방과 거실 바닥으로(?) 줄줄 다 흐르고 닦아낼수는 없는 상황이라 자연건조를 기다린다.

아침에 일어나서 안방 문을 봤더니 틈새가 다 벌어졌음. 누군가 신문으로 막음.

페루 우앙까요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이유는 일단 고산지대다. 그래서 해가 떠도 져도 평지보다 좀 더 모든게 빠르다. 그리고 기온도 살짝 다르다. 일단 사계절이 없고 겨울이 되도 눈이 오지 않지만 춥다. 완전한 저온이 아닌데 춥다. 그래서 1년 내내 거의 밤낮이 환절기 겸 여름이라고 보면 되는 날씨라 모든게 독특하긴 하다.


우리는 자는 시간동안 찬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져온 패딩점퍼를 입지 않으면 너무 추워서 잠을 못 잘 지경까지 되기도 한다. 패딩과 함께 이불은 꼭 있어야 하는데 이불도 우리처럼 솜이불이 아니라 양털이불 처럼 동물의 털로 만든 "담요"를 여러겹 덮곤 한다. 담요를 덮고 따뜻하게 자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우리 가족들은 사실 솜이불을 평생 덮고 살았기 때문에 담요가 적응이 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만큼은 감기에 걸리고 그러면 안되기 때문에 악착같이 점퍼에 이불까지 돌돌 말아서 땀을 흘려도 그렇게 따뜻하게 재우곤 했었다.

코코몽 겨울 티셔츠가 이렇게 보온이 잘 되는줄 처음 알았던 때였다. 흐트러진 이민가방을 배경으로...

매트리스는 비닐도 못 벗기고 비닐채로 그 위에서 바스락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겨울옷을 입고 패딩점퍼와 두꺼운 담요를 두세겹씩 덮은채로 잠이들던 어느 날 밤. 잠을 청하려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미친사람처럼 웃음이 막 나왔었다. 우리의 이 모습들이 너무 황당한데 웃겼기 때문이다. 한번씩 사람이 미친듯이 웃음이 터지면 멈추지 않는 웃음에 배가 아파도 아픈 배를 부여잡고 배아파 울면서 웃는 그런 경험 다들 한 번씩은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저 날 내가 그랬다. 거의 40여분을 그렇게 울면서 웃어제낀 것 같다. 그건 금방 전염되서 김오빠도 정말 미친사람처럼 서로를 보며 깔깔 거리고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발은 왜 저렇게 앙상한지.. 자발적 난민체험을 온 한국인 3명.

이건 무슨 진짜 난민도 아니고 여권파워 10위권 안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 세명이 말짱한 내 나라를 냅두고 이런 빈민촌(?)에 와서 자발적 난민으로 살기를 선택한 것도 아닌데 진짜 너무 황당하면서도 왜 우리는 그 한인에게 한 번이라도 올바르게 따지지 않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걸까? 라는 이상하고도 요상한 생각이 들면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래, 내일부터 우리가 직접 집을 알아보고 정상적인 집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하자. 어디에서 어떻게 살던 일단 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의식주가 해결이 되어야 다른것도 할 수 있으니까.. 난민체험 했으니(?) 이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 하자.

혼자 정말 미친듯이 웃다가 우연히 옆을 봤는데 김오빠를 보자마자 더 큰 웃음이 났다. 어디 아픈줄...ㅋㅋ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짐부터 정리를 했다. 그리고 아래층에 사는 그 한인에게 찾아갔다. 오전 11시가 다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전화를 계속하고 굳게 닫힌 문을 두들기고 해서 부스스 잠에서 깬 그 사람과 이야기를 시도했다.


-저희 이사갈게요. 리마에 알고 지내는 지인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여기서 한국어를 조금 배운 학생이 하나 있는데, 그 분이 집 구하는거 도와줄수 있다고 하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사람이 사는 집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사람은 세상 모든 짜증을 가득 담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하.. 진짜 두 분 배가 불렀네요. 저는 여기 처음 왔을 때, 집도 못 구해서 그냥 어디 가게 밑에서도 지내고 그랬었는데, 두 분 돈도 아껴야 하고 지금 저런 집에서 지내는 것도 감지덕지 아닌가요? 다른 집 구해서 돈 더 쓰고 그러면 가게도 못 차리고 이제 거지돼요.


무슨 생각으로 저런 소리를 하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그 사람의 생각이 그렇다면 굳이 그걸 응해줄 생각도 그렇다고 받아줄 생각도 없었던건 사실이다. 그 사람 생각이 그렇다면 그냥 그러려니, 우리는 그런 생각으로 살려고 여기 온게 아니니까 그냥 우리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대로 사는게 맞는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알겠다는 대답만 할 수 있었고 더이상은 아무런 말도 섞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서서히 그 사람과의 강제 결별이 시작됐다.

keyword
화, 토 연재
이전 04화페루 우리집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