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 친절은 때로는 독이 된다.
2017년도까지 택배를 하며 온 몸이 부서져라 일만 했던 김오빠와 택배 알바부터 다시 재취업까지 앞만 보고 경주마처럼 달린 우리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스스로 들기도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결심을 하고 적은돈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곳을 찾아보다가 눈에 들어온 나라가 바로 남미 페루였다.
하지만, 처음에 도와주겠다고 손을 뻗은 사람 선택을 잘못선택했고 돈을 뜯길뻔 했지만 시간이라는 더 큰 것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현지인을 소개 받았고 우리보다 더 우리를 생각해주는 한국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정말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아주 잠시였지만 우리는 한국에 들어갔다왔다.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밥솥도 필요했고 우리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장사를 위한 최소한의 것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페루는 정말 지구의 반대편이다. 시차는 14시간. 페루가 한국보다 14시간 느리다. 정말 지구 반대편이다. 비행기는 직항은 없다. 한국에서 미국 > 리마 또는 유럽에서 리마, 멕시코에서 리마 이런식이다. 그런데 경유지까지의 거리가 보통 12시간에서 14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환승을 하면 6시간에서 8시간까지 걸리기도 한다. 그런 거리를 우리는 장사준비를 위해 다시 다녀온다.
야넬리네 가족은 참 단란하다. 아니? 어쩌면 페루사람들은 다 단란하고 오손도손 지내는게 특징이다. 대학교를 가야하는 사람이 있으면 온 가족이 다같이 일을 한다. 그리고 돈을 모으고 또 모아서 생활비와 함께 대학등록금을 같이 보탠다. 페루 사람들의 1인당 평균 GDP는 한국의 1/10 수준이다. 보통의 페루사람들이 버는 수입은 원화로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45만원 정도 수준이다.
야넬리네 가족들은 참 빈부격차가 심한편이다. 우선 가족들간의 우애는 참 끈끈한데 문제는 돈이 늘 문제다. 큰 아빠네는 자녀들이 다 대학도 나오고 애들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산다. 하지만 야넬리네는 다르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고 아이가 둘이지만 아이 한 명도 제대로 케어 하기가 힘들다. 둘째만 대학을 갔고 그 대학을 위해서 Metro라는 마트 파이넨셜에서 대출을 받아 학교를 보내고 있다. 아마 페루 사람들의 빈부격차는 땅을 점령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아직까지 그런게 있긴 하고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페루의 경우는 유독 심한게 한 가지 있다. 어떤 땅에 내가 정착을 하기 위해서 들어 앉아 나가지 않고 있으면 내 땅이 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은 10년이 걸리지만 보통은 10년이 될때까지 쫓아내지 못할뿐더러 불법으로 살고 있다는 것 조차 파악을 못 한다는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그렇게 야넬리네는 Ventanilla(벤따니야) 라는 리마의 시골 마을에 정착을 했고 10년이 넘어서 땅의 소유자가 됐다. 그리고 우앙까요 때처럼 돈을 벌면 생활비를 사용하고 남은 돈으로 벽돌과 시멘트를 구매한다.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을 조금씩 쌓아간다. 그렇게 야넬리네 집은 지금까지 쌓고 또 쌓아서 2.5층짜리 집이 됐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제 조금씩 기댐을 보이기도 했다. 야넬리를 우리 가게에서 일을 시켜달라는 것. 전형적인 페루사람들은 사실 우리같이 빨리빨리 민족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는 일머리가 있어야 한다. 일머리가 없다면 빠르게 배우기라도 해야한다. 그리고 한 번에 두 세가지 일들을 하거나 생각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페루사람들은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과는 전혀 반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야넬리는 그랬다. 그저 야넬리가 그동안 했던 사회생활로는 초,중,고를 나와서 직업학교를 들어갔던것과 어학원에서 무상지원 해주는 수업으로 영어를 배우던 것 말고는 사회생활을 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야넬리에게 사회를 경험하게 해주기로 했다. 다만, 큰 돈을 줄 수는 없었고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차비정도만 지급을 하기로 했다.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지는 가족들이 알아서 할 문제였다. 때마침 나도 이사를 하고 정신을 차린 뒤라, 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기초 스페인어를 계속해서 배우고 있었다. 중국인들만 잔뜩있는 어학원이었지만 그래도 원어로만 이야기를 하고 수업을 하고 과제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할 말들을 하나하나 하기 시작한게 큰 발전이었다.
그러면서 가게를 운영하게 되거나 사업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등에 대한 말들도 더디지만 알아먹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안되는 불공정 거래가 있다면 그건 정리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 다행인건 우리를 도와주기로 한 야넬리의 사촌들은 우리를 속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말이 안되는 상황이긴 했지만 페루 이민청에서는 이를 받아들여줬다. 우리가 페루사람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에서 직접 고용되어 일을 한다는게 법적으로 허가가 된 것이다.
그렇게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제 합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페루는 비자가 없이도 외국인의 신분, 즉 여행자 신분으로 살아갈 수도 있긴하다. 물론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불법체류인건 맞지만 출국을 할 때 공항내에 있는 사무실에 벌금을 납부하면 문제 없이 해결이 된다. 그래서 불체자가 생각보다 엄청 많다. 실제로 한인민박에서 알바하고 그러던 친구놈도 거기서 불체로만 1년을 넘게 있었기 때문에 사실 뭐 크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하고 너무나 잘 해주는데 문제는 이게 너무 과잉친절이라 그런지 우리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곧 우리에게 화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뭐든 적당히 해야하는데 한 번 고맙다 그러면 한도끝도없이 상대방 생각을 하지 않고 들이댄다. 내가 하는건 친절이지만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면 친절이 아닌데...
돈 몇푼만 있으면 페루에서는 불법도 합법이 되고 합법도 불법이 되는 그런 신기한 나라였던 것같다. 그리고 사람들도 순수하고 정겨워서 말을 참 잘들어준다.(지금 스페인 사람에 비하면 페루 사람들은 진짜 천사인듯?) 우리도 절대 그것에 대한 배신을 할 수 없다 라는게 우리의 생각이라 아무래도 페루사람들이랑 더 잘 지냈던 같다. 그렇게 합법적인 거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로인해서 친절을 베풀어줬기 때문에 당연히? 라는 생각으로 다소 다 티가나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한식을 사주면 당연히 우리가 사는거라고 생각하고, 어디가서 외식을 하게 되면 당연히 우리가 낸다고 생각을 한다는 것. 그리고 본인들도 우리에게 "친절"이라는 것을 베푼다고 생각만 할 뿐, 사실 우리에겐 친절이 아니라 부담이자, 문제로 인식이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어렵다 참..
식당 자리를 백방으로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돈은 분명 한계가 있었고 우리도 사실 점점 지쳐갔던게 사실이었던 것같다. 그래도 사업자가 생겼고 가게만 구한다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견뎠다. 아이는 유치원도 잘 다녔고 오히려 현지 유치원에서 한국어를 하며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전파하고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한 가지가 해결되면 두 번째는 또 잠시 멈추는게 사람이 사는 법칙인지..가게가 구해지지 않는다. 하루하루 피마르는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선뜻 조건없이 2개월치 보증금과 월세만 내면 들어올 수 있다고 하는 가게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