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될 수 있는 직업인만큼 인성은 덜 된 것 같았다.
너무 지극히 정상으로 돌아가는 그런 하루였다. 식당은 아무렇지 않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점심특선으로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고 주문을 빼기 위해 그날도 다른날과 다를바없이 열심히 요리하고 열심히 서빙을 했다. 뿌듯하게 하루를 마감하려고 하는 그때였다. 한 남자,여자 커플이 들어왔다. 현지인이었고 여기는 뭘 파느냐 물어봤다. 한국음식이고 분식이라고 설명을 해줬다.
약간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 채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세트메뉴가 아니라 단품으로 대왕돈가스 한 접시를 주문했다. 우리집 메뉴는 세트메뉴가 있었는데 페루 리마에서는 오뚜기 스프를 구매해도 물건 들어오는 기간이 있어서 한국처럼 막 퍼담아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왕돈가스 세트메뉴에서만 스프를 한 그릇 제공하고 있었다.
왕돈가스+스프+샐러드+밥+김밥 한 줄 / 떡볶이 한 접시 이렇게 두 가지로 준비를 해놨었다. 다만, 단품 왕돈가스에는 스프가 따로 나가지 않고 엄청 큰 돈가스랑 기본 밥, 샐러드만 제공이 된다. 그런데 그 커플은 왕돈가스 한 접시만 주문을 한 것이다. 원래 서빙 되는대로 나갔고 그 커플은 소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었다. 너무 맛있다면서 칭찬을 했다.
감사하다고 하며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왜 스프를 주지 않았냐고 물어보기 시작을 했다. 스프는 세트메뉴에 나가는거라고 설명을 했지만 듣질 않았다. 세트고 나발이고(?) 필요없으니까 스프를 포장해달라고 우기고 또 우기고 있었다.
페루에는 방명록 제도가 있다. 식당같은 서비스업에 포함이 되는 직종에는 방명록이 법적으로 비치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 방명록은 고객이 클레임을 걸 경우 제공을 해야하고 그 방명록에 클레임을 직접 작성하고 영수증처럼 가져가 시청에 민원을 걸게 되면 민원 접수가 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그 커플은 나에게 방명록이 있는거냐면서 외국인 등록증이 있는지 확인을 하려고 했다.
사업자 등록증을 확인하려고 했고 방명록을 내놓으라며 민원을 걸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도 참 그때를 생각하면 그까짓 스프 한그릇 주고 말걸.. 지금이야 드는 생각이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한 번 그렇게 오케이 해주면 만만하게 보고 또 다시 찾아와 영업에 방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속 설명을 하고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했던 기억이 선명하게 난다.
그렇게 그 사람들은 다음날 시청에 가서 실제로 민원을 걸었다. 시청에서는 시정조치를 해야한다며 가게를 찾아왔다. 하지만, 특별히 별도로 걸림돌이 되거나 교육을 받는건 없었다. 눈치를 챘고 시청 사람이 오자마자 그냥 식사를 제공하고 한국돈으로 1만원 정도를 쥐어주고 돌려보냈다. 있었던 민원이 없었던 민원으로 둔갑을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남미에서는 뭐든 적당한 금액을 쥐어주면 안 되는 일이 없다. 거의 만사 오케이 될 정도.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다 통하는건 아니겠지만 10명중 8명에게는 통하는 마법이다. 어쩔때는 식사 한끼, 어쩔때는 음료수 한 캔만 드려도 오케이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무튼 그렇게 민원 소동이 일어나고 그때 순간 느끼게 됐다. '아, 내가 외국인이구나.'
어떤 일이 생기고 나니까 외국인으로서 그리고 언어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나라 사람을 상대로 서비스업이자 내 나라 음식을 판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모험 그 자체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가 그 커플로 인해서 다시금 각인이 되는 하루였던 것 같다. 참고로 그 커플의 직업은 "변호사" 였다. 우리나라처럼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을 통해서 힘들고 어렵게 연수까지 받으면서 변호사가 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실제 법대를 다니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원"을 다닌다. 아카데미. 치과의사나 치위생사도 마찬가지다. 치대를 나오거나 치위생학과 등을 나오지 않고 학원을 다닌다. 학원에서 필기, 실기를 다 배우고 시험을 본 뒤, 자격증이 나오면 치과를 집에서도 개업을 한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집 안에서 개업을 한다.
너무 소름끼치는 일이지만 현지인이 하는 말은 그랬다.
-우리나라는 너희랑 다르게 책만 좀 외우고 학원 열심히 다니면 변호사 시험 볼 수 있어서 솔직히 비싼 돈 내고 학원 다니고 책 외워서 시험보면 변호사를 할 수 있어. 그래서 대단한 직업은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인성이 좋거나 머리가 좋거나 그런 사람들이 변호사를 하기 보다는 너희가 볼때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변호사를 하기도 해. 마치 그 커플처럼 말이야.
달라도 너무 다른 남미 페루. 어느덧 그렇게 우여곡절을 보내며 3년이라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마음속에 공허함과 동시에 가족들이 다 있는데도 불구하고 향수병처럼 한국을 가고 싶다는 참지못하는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