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행복한 편
‘생활체육인으로 건강하게 늙기!’를 삶의 큰 방향으로 삼았지만, 아직 나는 달릴 수도, 무게를 드는 운동을 할 수도 없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어 신나게 운동강도와 빈도를 올리면, 옆에서 누가 급 브레이크라도 밟는 듯 탈이 나고, 나는 또 겁을 먹고, 다시 몇 발짝 뒷걸음질치 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좋은 음식을 준비해 나를 먹이고, 이렇게 글을 쓰고, 주 4회 운동을 간다. 몇 달간 헬스장에 비슷한 시간에 가다 보니, 이제는 인사를 나누는 분들도 생겼는데, ‘바디프로필’을 목표로 두고 운동한다는 분들도 계시다는 얘기도 들었다.
목표를 두고 운동하시는 분 들 얘기를 듣고,
‘나의 운동 목표는 뭘까? 나는 무엇을 위해 아침엔 삶은 달걀과 채소, 과일을 먹고, 무서워하면서도 운동을 배우는 걸까?’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장 목표로 둔 게 없다.
처음에는 일상생활을 잘하고 싶다 생각했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일상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잘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기량인지에 대한 기준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냥 그런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짧은 기도 겸 명상을 하는 내가 기특하게 느껴졌고, 센 불에 13분 삶아만 든 완숙 계란과 채소과일을 아침으로 먹으며 몸속이 나아진 게 느껴지니 즐거웠다. 활동이 줄어들며 지방도 근육도 모두 빠져 가늘어져만 가던 다리에 근육이 붙는 게 보이면 성취감까지 느껴진다.
‘나는 대체 왜 이럴까? 왜 자꾸 아플까?’
‘지금 이 시간을 견디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이런 생각보다는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 컨디션이 나은 것 같아!’
‘매일 아침 루틴이 생긴 나 기특해.’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어.’
‘운동 열심히 한 거 아까우니 좋은 음식 먹어야지.’
이렇게 과정 자체에서 좋은 감정을 찾기 시작했다.
당장 내 옆에 있는 가족들조차 캐치하지 못할 만큼 미미한 변화라도, 내가 알아보면 만족한다.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지니, 에너지가 생긴다. 에너지가 생기면 아이들에게 반찬 하나라도 더 해주고, 책 한 권이라도 더 읽어주고, 남편에게 먹고 싶은 메뉴도 물어봐주고, 얼토당토않은 개그를 얹은 대화도 더 많이 하게 된다.
’ 언제까지 어떤 것을 성취하겠다.‘
이런 목표를 잡아두면, 매일의 방향성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되고, 설령 목표지점에 못 가더라도 발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몸도, 마음도 너무 약해졌던 나는, 기한을 정해 둔 목표보다는 방향만 정해두고, 가는 길에 꽃도 보고, 구름도 보고, 풀냄새도 맡고, 새소리도 들어가며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진 일이지만, 재활과정을 거치며 지금껏 ‘나’에 대해 이렇게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온전히 나에 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브런치 글을 쓰려면 처음에 작가소개 글을 적게 된다. 그곳에 내 꿈은 ‘한량’이라고 적었는데, 그저 놀고먹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물론 그렇다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목표지점을 향해 많은 것을 참고, 뒤로 미루며 달리는 삶보다는, 작고 소박해도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고, 내가 행복한 순간을 많이 갖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삶에 더 맞는 것 같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수시로 찾는 편인데, 오늘 오전만 해도 하늘이 쾌청해서, 아침에 삶은 계란이 말끔하게 까져서, 아이들이 아침을 잘 먹어줘서, 도서관 지하주차장에 주차 자리가 있어서, 도서관 지하 매점에 나 홀로 앉아 이 글을 쓰는 지금, 조용히 집중할 수 있어서, 자판기에서 뽑은 2,200원짜리 아이스커피가 맛있어 행복하다.
당장 오늘 오후에, 내일부터 내가 달릴 수 있을 만큼 강해지진 않겠지만, (뭐… 또 꼭 그렇지 말란 법도 없으니까) 이렇게 매일 먹고, 운동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