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점점 꽃이 좋아진다.
나이가 들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꽃 사진으로 변한다는데, 괜히 손사래를 치고 싶기도 하지만 내 시선은 어느새 돌틈 사이에 핀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은 꽃망울에, 계단에 줄지어 놓인 플라스틱 화분(특. 아무도 훔쳐가지 않음)에, 담벼락을 넘어 보행을 방해하듯 쏟아지는 꽃나무에 가 있다.
역시, 꽃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당신은 바보다.
이상하게 점점 자연을 좋아하게 되고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게 되는 건 내가 대가가 되어가기 때문은 아니다. 그냥 그게 '자연스러운'일인 것만 같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화장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꾸안꾸), 연애도 자연스럽게(자만추), 우린 늘 자연을 갈망하는데, 그렇다면 '자연스러운'게 뭘까?
자연스럽다(自然스럽다)
1.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2. 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3.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의문에서, 이제는 관용구처럼 쓰이는 말로 건너뛰어본다.
"모니터 뒤에 사람 있어요!"
모니터 뒤에 정말 사람이 있다는 괴담은 아니다. 그러나 더 오싹할 수도 있는 현실의 이야기다.
저마다 아이디와 캐릭터를 갖고 있는 자아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만난다. 여기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내가 사람이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시시때때로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온라인에서 만난 다른 존재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아이디를 보고 물화된 존재, 감정 없이 유영하는 유령 정도로 인식한다. 어느덧 '게임 속 NPC'를 대하는 자세로, 혹은 '부수는 폐차장'을 찾는 마음으로 온라인 세상에서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 피드와 내 캐릭터를 꾸미면서, 모니터 너머에 진짜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인가?
서로가 입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잊는 일은 흔하다. 그 대상이 약자일 경우, 온라인에서는 더 대놓고, 더 빈번하게 납작해진다. 존재가 이렇게도 쉽게 수시로 납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가?
<자연스러운 그림>은 돌에서 핀 꽃을 디지털 세계의 작동 방식(포토그래메트리와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납작하게 눌러 그린 그림이다.
제작과정은 다음과 같다. 실제 꽃과 돌멩이를 360도로 다중촬영(수백 장)한 뒤, 포토그래메트리 기술을 이용하여 3D모델로 구현한다. 그런 다음, 특수효과 제작 프로그램인 후디니(HOUDINI)에서 3D모델의 물성과 물리적 효과를 적용한다.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다양한 변수들을 통제하여 납작하게 만드는 시뮬레이션 한다. 납작해진 가상의 꽃 모델들을 돌멩이와 결합하여 정물화로서의 구도를 정한 뒤 실제 사진 촬영을 하는 것과 같이 조명 및 배경을 설치하고, 3D모델에 색상을 입힌 뒤 3D 데이터를 2D 이미지로 변환한다. 마지막으로 변환된 이미지를 인화하여 실제 회화로 재현한다.
디지털매체 특유의 납작함을 지닌 액정 너머의 2D 이미지는 실제 세계에서 (실제 사이즈와 관계없이) 물리적으로 재현된다. 이미지는 얼핏 자연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의문이 곧바로 뒤따른다. 왜냐하면 실제 대상의 외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변위(displacement)된 형태와 물성을 갖게 된 새로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재현된 납작함을 통해,
꽃들이 수시로 납작해진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결국 모니터 너머 실재하는 사람의 부피감과 입체성을 감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스럽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