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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정 Oct 21. 2021

단단한 바위 산을 옮기는 작은 숟가락

 2018년 겨울, 파리에 올 준비를 하던 때 파리에서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 운동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개선문 앞에 장갑차가 등장하고 상점이 약탈당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뉴스로 접한 시위는 거의 내전에 가까워 보였으니까.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는 노란 조끼 운동도 차츰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매주 토요일이면 파리 어딘가에서 집회가 열렸다.


 노란 조끼 운동 외에도 파리에는 여러 집회가 있었다. 고래 사냥을 금지해야 한다거나, 발레리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자기 권리를 주장했다. 심지어 잦은 집회로 인해 자기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경찰 노조가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9년 12월에 연금개혁을 이유로 촉발된 프랑스 국영철도노조 파업. 두 달 가까이 이어졌던 파업 동안 파리 교통이 거의 마비되었다. 덕분에 이곳저곳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녔던 기억이 있다. 손이 시려서 두툼한 장갑을 사기도 했다.


 프랑스는 집회와 시위의 나라로 유명하다. 1789년 봉기한 시민이 이뤄낸 프랑스혁명은 끝내 왕정을 철폐하고 근대적 공화정이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68년 세계적으로 사회 체제를 바꾸는 데 기여한 68 혁명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대전 이후 권위주의로 흐르던 위계 체계를 완화하고 해체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혁명과 집회 그리고 시위들은 프랑스에 자유와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인은 스스로 쟁취한 세 가지 이념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프랑스인이랑 쉽게 친구 하는 방법 알려줄까?” 파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 프랑스 친구가 내게 말했다. 궁금했다. 어떤 방법이냐고 물어보니,

 “대화를 시작할 때 그 상황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놔. 그러면 그들은 네 친구가 될 거야.”

 라고 답했다.

 농담이라고 생각해 내가 웃자 그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약간의 진실을 담고 있는 농담이야. 대부분 사람들 이것저것 불평할 일이 많잖아? 대화 시작하기에 그렇게 편한 일이 없단 말이지. 주제도 무궁무진하고.”

 그러다 그는 프랑스 사회가 너무도 경직되어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혁명이 왕과 귀족을 끌어내렸지만 새로운 권력을 탄생시켰다. 그 권력은 여전히 소수였고 다수를 지배했다. 68 혁명이 체제를 완화시켰다고 하지만 그건 보다 세련되게 포장된 지배 방식이었다. 그는 한국처럼 프랑스도 사회를 변혁시킬 원동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힘이 부족하다고 한국을 부러워했다.


 자유의 나라, 프랑스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살면서 나는 프랑스가 교묘하게 통제받는 사회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례1. 여러 상황에서 인맥이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사람들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프랑스에서 은행 계좌를 여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다. 계좌를 열기 위한 약속을 잡고 며칠을 기다리고 수많은 서류를 가져가고 나서도 또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복잡한 절차를 보다 간소하게 만드는 법? 은행 직원을 아는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 가면 된다. 친구가 은행 직원에게 전화를 해주고, 방문 시 소개받은 사람 이름을 이야기하면 만드는 기간이 적어도 반으로 줄어든다.

 일을 구할 때도 지인 소개를 받으면 훨씬 간단하다. 아르바이트 같은 경우는 면접이나 자기소개서 제출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쉽게 일을 구할 수 있다.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알 만한 정규직 같은 경우에도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압력을 행사하면 일자리 하나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내게도 그런 제안이 있었고 왠지 마음에 걸린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네 마음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사례2. 귀족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사실상 귀족은 남아있다.


 프랑스에는 두 가지 형태 귀족이 현존한다. 첫 번째는 문자 그대로 귀족. 옛 귀족 혈통 집안이 여전히 대를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권력을 바탕으로 부르주아 출신. 그들은 막대한 재산과 정치적 힘으로 귀족 같은 대우를 받는다.

 친구 중 한 명이 알자스 귀족 가문 장남이다. 조상을 그린 옛 초상화를 간직하고 가문의 문장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나는 유럽 귀족 역사를 잘 모르지만, 그 친구네 가문은 유서 깊은 가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귀족 가문 출신과 만났을 때 핏줄로 보다 인정받는다. 그들 간에는 서로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가문의 문장은 장남에게만 계승된다.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들이거나 가문이 끊긴다는 뜻이다. 딸은 가문을 이어나갈 수 없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가문의 문장이 담긴 반지나 목걸이를 쓸 수 있지만 결혼을 하면 반납하거나 장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정치인과 재벌 가문 역시 권력을 세습한다. 그랑제콜(Grandes écoles)이라고 하는 독특한 교육체계가 있다. 대학교와 다른 프랑스만의 독특한 엘리트 양성 교육 기관이다. 프랑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대부분이 그랑제콜 출신. 사회 상류층은 자녀를 이곳에 입시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2021년 현재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 역시 그랑제콜을 졸업했다. 참고로 재벌 가문은 간단하게 상속을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


 사례3.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교육 정도와 사회 계층을 파악할 수 있다.


 사용하는 어휘나 억양에 따라 계층을 파악할 수 있는 건 대부분 국가에서 이뤄지는 일이겠지만 프랑스에서는 특히 심하다. 문법이나 발음이 함정이라고 할 만큼 복잡하기 때문이다. 발음을 이어서 하는 연음이나 부정 표현 방식, 접속법에 따라 표현이 천차만별로 변한다.

 특히 글쓰기에서 언어를 통한 사회 계층 파악이 더욱 쉽게 이뤄진다. 주어에 따라 동사가 형태가 변하지만 실제로 발음은 같은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말에 익숙해져도 철자를 바르게 쓰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건 내 문제일지도 모르려나… 내가 프랑스어로 쓴 글을 보면 유치원생이라고 생각하려나… 라는 생각에 슬퍼진다.

 외국인인 나도 이렇게 슬프지만, 현지인들도 슬픈 모양. 편지를 쓰거나 과제를 할 때면 프랑스인들도 늘 어렵다고 말한다. 어학원 선생님은 쓴 글을 보면 글쓴이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는지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큼 학습 단계에 따라 미묘하게 철자가 달라진다.




 글을 쓰는 현재, 바깥에서는 시위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토록 많은 집회와 시위가 열리고, 과연 사회는 변화하고 있는가.


 사실 프랑스혁명은 한 번에 모든 걸 바꿔 놓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황제에 즉위했다. 갑작스레 무너진 왕정에 대한 그리움 또는 급변하는 질서에 대한 반동으로 왕 정복 고기가 오고 그 이후 7월 혁명으로 입헌군주제로, 2월 혁명으로 다시금 공화국이 되었다. 보불전쟁과 파리 코뮌, 세계 대전 그리고 68 혁명에 이어 노란 조끼까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프랑스 사회는 크게 거시적으로 그대로인 듯하다. 언어를 통해 사회 계층을 나누고 정치와 자본, 그리고 혈연까지 신분을 차별하고, 지인을 향한 특혜와 다르지 않은 인맥의 묵인을 통해 그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굳건히 자리한 시스템을 바꾸기란 어렵다. 그 사회를 살고 있던 사람들에겐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누리던 특혜를 잃고 싶지 않은 집단이 너무도 강한지도 모른다. 막대한 권력 앞에서 개인은 너무도 나약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의 개선을 바라는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 모습에서 거대하고 단단한 바위 산을 작은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파서 옮기고 있는 한 사람을 본다. 그는 느리고 미약할지라도 숟가락으로 거대한 바위 산을 파낸다. 평생을 바쳐도 산에는 조그마한 변화조차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티끌 같은 가루가 나올 뿐이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먼 훗날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옮겨질 산을 떠올리면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변화의 과정은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나는 거대한 바위 산과 마주한 작은 숟가락의 편에 서고 싶다. 그 더딘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보태지 못한다고 해도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그 여정이 완수되는 때에 숟가락을 든 사람의 미소를 보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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