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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정 Sep 16. 2021

프롤로그 : 소설가 아닌 소설 쓰는 사람

0. 프롤로그 : 소설가 아닌 소설 쓰는 사람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소설을 쓴다." 고 해서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등단을 해야만 한다. 세계적으로 등단이라는 제도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뿐. 공식적인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시험이다. 소설을 쓰기만 하면 돈을 벌든 말든 소설가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나라와 달리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 소설을 쓴다고 해서 공식적으로는 소설가가 아니다. 그래서 생긴 특별한 단어, 소설가 지망생. 그렇다. 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2015년부터 매해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계절은 순환한다. 따뜻한 봄에 머리를 싸매고 소재를 떠올리며 무더위를 견디며 글을 쓰고 서늘한 가을이 끝나갈 때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에 원고를 넣어 우체국으로 간다. 어디에서도 연락을 받지 못한 겨울은 더욱 춥고 쌀쌀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월 1일 신문을 사서 펼쳐 본다. 내 이름은 없다. 봄부터 시간을 들여 구워온 빵이 새카맣게 타버린 기분이다. 새해 첫날은 유난히 춥다.


 꽁꽁 얼었던 마음도 봄이 오면 다시 녹는다. 쓰러진 의지를 다독여 세우고 글을 쓴다. 여름이 온다. 가을이 온다. 겨울이 온다. 다시 찾아온 새해 첫날. 다시 꽁꽁 얼어버린 나.


 문학은 점수로 평가되지 않는다. 커트라인을 넘으면 합격하는 시험처럼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 낙방의 이유를 찾는 일은 끝 모르는 깊은 웅덩이를 파내려 가는 작업과 같다. 소재가 뻔했을까, 문장이 명확하지 않았을까, 경쟁률이 높았을까, 별의별 후회와 좌절과 분노가 솟는다. 밤새 이불속에서 뒹굴며 고민한다. 사실 이유는 하나다. 내 소설이 선택받지 못했을 뿐이다. 숱한 경선 프로그램에서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그저 선택받지 못했을 뿐. 좌절만 하고 있으면 무언가 생기지 않는다. 새로운 소설을 써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쓰고 싶은 글만 쓰며 살 수는 없다. 때론 써야 하는 글을 써야 한다. 광고주 의뢰를 받은 홍보성 글, 여행 웹진에 쓰는 여행기, 잡지에 기고하는 요리 관련 글들. 써야 하는 글이라고는 했지만 막상 쓰다 보면 즐겁다. 역시 나는 글을 써야 행복하다. 문장을 조합하고 단어를 재구성하고 완성된 글을 보면 쓰는 일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을 쓸 때는 이른바 순수문학을 지향했지만 사랑을 다룬 웹소설을 쓰는 모험도 감행했다. 몸이 닿으면 마음을 읽는 초절정 꽃미남 외계인과 사랑에 빠진 제과점을 운영하는 여자의 이야기! 운 좋게도 그 웹소설로 한 회사와 계약을 했다. 운이 따랐는지 한 제작사가 관심을 가져 영상화 판권 계약까지 체결했다. 편집자 언니가 그 소식을 전해줬을 때 기뻐서 팔짝 뛰었고 그때 발에 닿은 감촉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결과적으로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영상으로 되지 않았지만 계약금으로 받은 제법 큰돈이 생겼다.


 이야기로 글을 써서 번 최초의 수입이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생활비로 비축해 1년 동안 골방에 박혀 소설만 쓰거나 몸보다 큰 가방을 들고 세계 여행을 떠나거나 유망해 보이는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기대하거나.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대부분이 그럴듯하면서 동시에 허술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경우의 수는 늘어났고 늘어난 경우의 수만큼 선택은 어려워졌다.


 그리고 나는 파리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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