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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정 Sep 22. 2021

파리에 오기까지

 세상엔 여러 도시가 있다. 수많은 도시 가운데 내가 파리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제과를 배우기 위해서. 소설가 지망생이 갑자기 웬 제과? 소설과 제과. 그 둘은 누군가에겐 전혀 상관없어 보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겐 공통점이 있다. 내가 할 때 즐거운 일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일인 제과를 하기 위해 파리에 왔다고 말하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무책임하다. 그리고 소설이 제과로 이어지기까지, 그 제과로 인해 파리로 내 행선지가 정해지기까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시계태엽을 돌려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서울에 있다. 길었던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 우리 가족은 필리핀에 정착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란 언어 학습에 있어선 애매한 나이에 외국 생활을 시작해 한국어도 영어도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문자 그대로 0개 국어였다. 둘 다 완벽하지 못했다. 내 언어는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서 표류했다. 학교에선 영어 교과서를 집에선 한국어로 된 소설을 읽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이 많아도 읽어나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나는 건드리면 곧 폭발할 화산이었다. 영어를 더욱 열심히 공부해 미국 대학에 가면 달라지지 않을까. intractable, plethora, gregarious, loquacious…. 일상생활에서 쓰지도 않는 단어를 하루에 수백 개씩 외웠다. 매년 방학엔 학원을 다니며 자기소개서를 첨삭받았다. 원고지에 위에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노력의 정도를 가늠한 적도 있었다. 다시 그렇게 하라면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시간들. 하지만 그 시절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미국 유학을 포기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얼마나 큰돈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 등록금과 생활비,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할 외로움, 외국보다 국내에서 행복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 어쩌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유학 가기 위해 공부하겠다는 딸을 위해 두 분이 감내해야 했을 시간과 노력의 대가,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지는 그 대가를 그 당시에도 어렴풋이 느꼈을 테니까. 부모님은 담담하게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시는 분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앞으로도 그러실 분들.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시간이 너무도 많았다. 캄캄한 우주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해야 할 일도 없다. 그저 끝없이 펼쳐진 공허를 떠다닐 뿐이었다. 상실감이었을까. 후회였을까. 오랜 시간 준비했던 무언가를 포기해서 내 마음엔 커다란 구덩이가 생긴 것 같았다. 내가 한 선택이고 누군가는 철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스스로 한 선택이거나 철이 없는 행동이라고 해서 그 일을 한 사람이 힘들고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나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어를 조금 더 잘하고 싶었고 예전부터 문학을 좋아했기에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인터넷 강의를 등록했다. 그때부터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검정고시 공부는 어려웠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은 내게 한국적인 시험은 너무도 달랐다. 어둡던 밤을 밝게 색칠하던 소설이 짐처럼 무거워졌다. 찬란한 젊음의 태양 아래 양분을 흡수하며 성장해야 할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어둡고 캄캄한 방 한 구석에서 시험을 준비했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잡아 뜯어 탈모가 생긴 적도 있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모두 끊었다. 내 선택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다른 누구가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도 못했다. 대학에 진학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을 친구들을 보면 약간의 창피함과 약간의 열등감, 그리고 약간의 비겁함이 생겼다. 그들에게 약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도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당시에 나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집안이 망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 교통사고로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겨 숨어 지낸다는 이야기, 심지어는 내가 죽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런 소문이 돌아도 정정하지 못할 만큼 나는 모두와 관계를 끊고 지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문재와 굴이랑 조개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라셩 알라리 얄라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하고 노래를 부르는 화자가 어찌나 얄밉던지. 살겠노라 살겠노라 노래를 부르는데 나는 죽고 싶었다. 공부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감당하지 못할 파도를 일으키는 깊은 감정의 바다에 내던져졌다. 매일 밤 강아지 콩이(언제나 내게 힘이 돼주었던 지금은 하늘나라로 간 보고 싶은 우리 콩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도대체 행복이 뭐길래 나는 이걸 하고 있을까, 차라리 죽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다가 잠들곤 했다.


 감정을 풀어야 했다. 이러다간 큰일이 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과 블로그를 만들었다. 응어리진 감정을 일기장에 토해내듯 썼다. 매일 쓰는 일기는 내 삶을 구원했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처럼 답답했다. 터져 나오는 감정을 쓰기 위해 필체는 무너지고 때때로 종이가 젖어버린 부분도 있지만 일기를 쓰면 마음이 풀렸다. 블로그는 만든 요리를 기록하기 위해서 시작했다. <젠엔콩의 레시피북>. 내 영어 이름인 제니에서 온 젠과 우울한 밤을 달래 준 소중한 콩이의 이름을 조합한 이름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에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해 주기 위해 끓인 된장찌개, 그때 받았던 별처럼 따뜻했던 칭찬은 내가 보물처럼 여기는 소중한 기억이다. 블로그에 레시피를 차곡차곡 올렸다. 사진과 글을 보면 요리를 하며 느낀 행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삶은 계속된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보이던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외계어처럼 보이던 고전 시가도 척척 읽을 수 있었고 작게나마 학사모를 쓰고 졸업 기념식에서 꽃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두툼하게 쌓인 일기장은 부모님 집 서재 한 구석에 있다. 무서운 이야기에 나오는 건드리면 안 되는 귀신 들린 책처럼 생겼지만 내게 지나온 흔적으로서 언젠가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용기를 북돋아 줄 존재로서 자신을 다시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블로그엔 수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요리를 처음 시작한 신혼부부와 자취생, 연인을 위해 요리를 해주고 싶은 사람, 스스로를 밝히지 않은 익명의 방문객들. 그들은 때로 댓글이나 공감으로 감사나 사연을 전하기도 한다. 그런 글을 읽으면 응원을 받는 기분이다.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위안이 된다.


 간단한 요리 레시피로 시작한 블로그는 주제가 점차 다양해졌다. 여행 에세이나 맥주에 대한 산문, 그리고 문학과 영화에 대한 비평까지. 여러 가지 글을 쓰다 보니 수많은 기회가 생겼다. 웹진이나 잡지에 기고를 하고 영상 작업을 위해 출장을 가고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아 요리책을 출간했다. 요리책을 준비하면서 제과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리 레시피는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서 구상하면 맛있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제과는 달랐다. 구상을 해도 실현하려면 내가 가진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그때 어렴풋이 제과 유학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웹소설을 통해 갑작스레 생긴 목돈으로 막연하게 품었던 생각을 실현시키기로 했다. 미국이나 호주, 일본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파리에 가고 싶었다. 프랑스는 현대 제과를 정립한 나라다. 제과 책을 읽으면 번역이 되지 않는 프랑스 표현으로 사용된 기술이 많았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서도 파리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오노레 드 발작, 어니스트 헤밍웨이, 진 리스 같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사랑한 도시였다. 그래서 나는 파리를 선택했다. 언제까지 소설가 지망생으로 살 수는 없다.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일정한 수입이 필요하다. 제과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해서 소설가로 대성하기 전까지 준비하기 위한 투자인 셈이다.


 파리에서의 시간은 언젠가 내게 어떻게 기억될까. 후회? 철없는 선택? 마음을 위로하는 따뜻한 추억? 내 삶의 발판이 되어줄 경험?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이곳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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