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시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아름다움을 YOU님들 각자 간직하고 있었어요.
이 여행을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동주가 [서시]를 완성한 1941년 11월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산문 세 편 [종시], [별똥 떨어진 데], [화원에 꽃이 핀다]로 우리의 여행을 마무리해 보려고 합니다.
YOU님들 중에 식물덕후 계세요?
YOU3: 저요~ 저 완전 좋아해요!
감수성이 남다르다 느꼈는데 역시~ 제가 볼 때 동주는 식물덕후예요. 이 글 한 편에 꽃 이름만 20개가 나오거든요.
개나리, 진달래, 앉은뱅이, 라일락, 민들레, 찔레, 복사, 들장미, 해당화, 모란, 릴리, 창포, 튜울립, 카네이션, 봉선화, 백일홍, 채송화, 다알리아, 해바라기, 코스모스
YOU3: 저는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요. 사철꽃을 다 모아놓았군요.
화원에 꽃이 핀다
......
사실 일 년 내내 봄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 이 화원에는 사철 내 봄이 청춘들과 함께 싱싱하게 등대하여 있다고 하면 과분한 자기선전일까요. 하나의 꽃밭이 이루어지도록 손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생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봄바람의 고민에 짜들고, 녹음의 권태에 시들고, 가을하늘 감상에 울고, 노변의 사색에 졸다가 이 몇 줄의 글과 나의 화원과 함께 나의 일년은 이루어집니다.
......
여기 화원이 있습니다. 한 포기 푸른 풀과 한 떨기의 붉은 꽃과 함께 웃음이 있습니다.
......
나는 이 귀한 시간을 슬그머니 동무들을 떠나서 단 혼자 화원에 거닐 수 있습니다. 단 혼자 꽃들과 풀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참말 나는 온정으로 이들을 대할 수 있고 그들은 웃음으로 나를 맞아줍니다.
......
고독, 정적도 확실히 아름다운 것임에 틀림이 없으나, 여기에 또 서로 마음을 주는 동무가 있는 것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나는 이 여러 동무들의 갸륵한 심정을 내 것인 것처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세계관, 인생관, 이런 좀더 큰 문제보다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 이런 것들에 더 많이 괴로워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이말이 나의 역설이나,
......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놓아 울겠습니다.
세상은 해를 거듭, 포성에 떠들썩하건만 극히 조용한 가운데 우리들 동산에서 서로 융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종전의 ㅁㅁ가 있는 것은 시세의 역효과일까요.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 코스모스가 홀홀히 떨어지는 날 우주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
우리는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노변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노변爐邊(난롯가)
날짜를 적어 놓지 않았지만, 흐름상 [서시]를 완성한 후에 쓴 것으로 보여요. 동주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합니다. 동주는 아마도 어느 때인가 마음속에 걷고 싶은 길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러나 의심이 들었죠. 그 길이 맞을까,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의심은 불안으로 불안은 통증이 되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이 글의 분위기는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한결 성장한 기분이랄까요!
'나는 세계관, 인생관, 이런 좀 더 큰 문제보다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 이런 것들에 더 많이 괴로워해 왔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단지 나의 역설'이라고 말하는 동주.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동주가 얼마나 긴 시간을 자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괴로워했을지 이 여행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놓아 울겠습니다.
그 어떤 신념보다 우선하는 것은 우리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거예요. 물론 모양도 생각도 다 다르죠. 그러나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봐주고, 웃어주고, 온정으로 대해주면, 그가 원수라 할지라도... 심지어 원수의 손목을, 그 피 묻은 손목을 먼저 손 내밀어 붙잡겠다니, 이토록 High로 포지셔닝을 하다니요.
YOU2: 원수의 손목을 붙잡겠다고요? 그것도 온정으로요? 상상만 해도 힘이 드네요...
YOU4: 동주가 시[병원]을 왜 썼는지 이해가 됩니다.
YOU1: 이쯤 되면 자기 희생정신, 비이기적인 사랑의 완결판 아닌가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의 꽃밭이 이루어지도록 손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생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관점이 한결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이제 동주는 자신이 결정한 세계관과 인생관에 확신이 생긴 모양이에요.
우리는 서릿발에 끼친 낙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 것을 믿습니다.
노변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YOU3: 왜 도슨트님이 high, high 하는지 이제 알겠어요. 정말 high의 끝판왕.
인간의 가치관과 신념은 유행가처럼 계속 바뀌어 왔어요. 이제 현재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누구는 '나뭇잎처럼 바람이 부는 대로 살아라'하고, 누구는 '나무처럼 단단히 뿌리를 내리라'합니다. 각자가 결정할 일이겠죠. 그 어떤 신념보다 더 빛나는 것은 '아름다운 특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제력, 정직함, 깨끗함, 미소, 사랑 이런 거요. 이러한 특성들이 사람을 이끄는 것 같습니다. 마치 추운 날, 따뜻한 난롯가에 하나 둘 모여드는 것처럼요. 이제 답을 찾은 거 같아요.
동주는 어떻게 High로 갔을까요?
YOU3: 문득 든 생각인데 '나뭇잎이 되어야 하나', '나무가 되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High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게 아닐까요.
와- 최고!
YOU4: High로 가려다 스트레스로 병 걸려 죽으면 어떻게요? 동주처럼 빨리 죽고 싶진 않은데..
YOU4님, 제 마음이 보이나요? 어렵죠! 그래도 살 방법은 있을 듯해요. 산문[별똥 떨어진 데]의 일부입니다.
나무가 있다.
그는 나의 오랜 이웃이요, 벗이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성격이나 환경이나 생활이 공통한 데 있어서가 아니다. 말하자면 극단과 극단 사이에도 애정이 관통할 수 있다는 기적적인 교분의 한 표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나무와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바람도 필요해요. 그러니까 바람 부는 한양도성 언덕에 있는 나무라면 딱일 듯해요! 동주가 왜 그리 식물덕후가 되었는지 이제 알겠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어요.
아! 동주가 어떻게 high로 갔는지도 알 거 같아요. 나무랑만 교감한 게 아니었어요. 동주는 수시로 자신과 교감했어요.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어요. 그래서 Low로 떨어지려는 마음을 붙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세상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우리의 작은 버팀목-우리의 童柱가 될 수 있었던 거예요.
YOU5님 : #자화상
네? YOU5님 이제 나타나다니요!
YOU5님 : 채근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스스로 반성하는 자는 닥치는 일마다 모두 약이 된다. 남을 탓하는 자는 생각이 움직일 때마다 창과 칼이 된다.'
답은 출발할 때 이미 나와 있었군요. 동주는 수시로 자성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며 자신을 정화했어요. 그리고 성장했죠.
조용히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반성은 거울이고, 좋은 약이며,
존엄하고 품격 있는 사람으로 가는 계단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주가 아름다운 사람인 까닭이요,
우리의 마음속에 여전히 반짝거리는 까닭입니다.
종점이 시점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
[종시终始]
'윤동주'
이것으로 <아름다운 사람 동주와 떠나는 High로 가는 길> 마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YOU님들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봄에 동주의 오랜 친구 #나무를 키워드로 하는 두 번째 서울여행에 YOU님들을 초대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