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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딜라 Oct 22. 2023

high-minded

정체성 = 이름 + 외모 + [가치관 + 신념 + 특성]

    동주의 정체성 = 이름 + 외모 + 가치관 + 신념 + [특성]


동주는 문학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했습니다. 아버지는 의대에 가길 원했지만 동주는 문학을 더 배우고 싶어 하죠. 교육열이 강한 집안의 장남으로 가족의 기대가 큰 건 당연한 일. 쉽게 허락을 받지 못합니다. 이때 동주는 단식투쟁을 단행했고, 결국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입학해 내고 맙니다. 그렇게 쟁취한 문학사랑, 동주는 본격적으로 창작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합니다.


#문학사랑 #한글로 쓴 시


그는 한글을 문학적으로 사랑한 사람 같아요. 쉽고 간결하게 표현한 시어들은 한글의 맛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꽃피워요.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시집 한 권 완성합니다. 자신의 졸업작품으로 만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친필 시집- 정병욱 앞에
윤동주기념관 제공사진 재촬영

흥미롭게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표지에 시집의 제목을 ‘병원’이라고 썼다가 지운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어요. 시[병원]가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요?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940. 12



동주는 1940년, 대학교 3학년에 단 3편의 시만 남깁니다. [병원], [위로], [팔복].



            위로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 밭 사이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치어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꼬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 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라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1940. 12. 3



            팔복(八福)


마태복음 5장 3~12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세 시 모두 매우 절망적인 뉘앙스입니다. 단식투쟁하며 쟁취한 문학의 길, 사실 대학교 3학년이면 가장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할 때인데 말이죠. 시를 쓰기 시작한 후로 매년 자신의 작품을 몇 편씩 발행하여 지면에 실었는데, 이 해에는 그마저도 없습니다.  


YOU3: 뭔가 심상치 않아 보여요.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깊은 절망에 빠진 사나이, 그 시련의 정체가 뭘까요?


YOU2: 영화 [말모이] 보셨어요? 당시에 한글로 시를 계속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예요. 당시에 조선어 말살정책 때문에 한글사용하면 탄압을 받았거든요. 그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조선어를 사용하지 마라

좌. 영화 말모이 포스터 / 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제3차 조선 교육령(1938년)

"국어 정책 변화를 살펴보면 ‘조선어’를 각급 학교의 필수 과목에서 제외하고 가설 과목 또는 수의 과목으로 바꾸고 ‘조선어’ 외의 모든 교과목의 교수 용어를 일본어로 할 것을 명시하였다. 이 시기에는 ‘조선어’를 수의 과목으로 남겨두어 위와 같은 수업 시간 이 배당될 수 있었지만 조선총독부는 각종 압력을 넣어 각급 학교에서 ‘조선어’를 가르치는 것을 방해하였다. 따라서, ‘조선어’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었고 이미 조선어 말살 정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최용기․일제 강점기의 국어 정책. 한국어문학연구 제46집 한국어문학연구학회 2006.2 20-21p)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누군가 하나하나 빼앗아 간다면...


YOU2: 저 같으면 화가 치밀 거예요!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하죠.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YOU3: 동주는 마음씨도 고와요. 지금 자신이 힘들어 죽겠는데도 아픈 여자를 걱정합니다. 


실제 동주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와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평전을 읽어보면 "남을 헐뜯는 말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일본 순사에게도 친절했을 거다.”라고 합니다.


YOU1: 성격도 외모처럼 깔끔했다고 합니다. 읽는 책에 줄을 거의 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시를 오래 생각하고 다듬는 스타일이었대요. 시어 한 구절 때문에 몇 달씩 고민한 적도 있었다는 걸 보면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같아요.


YOU3: 강한 자제력과 애타심이 느껴지네요.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친구들에게는 따뜻한 동주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강직했던 친구
"나는 여독으로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런데 밖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깼다. 동주가 다시 와서 창문을 조금 열어 놓으라는 것이다. 내가 일어나서 들창문을 열어 놓는 것을 보고 그는 휘파람을 불며 발길을 돌렸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동주는 가깝지 않은 기숙사까지 다 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서 내 하숙에까지 온 것이다. 얼마 전에 그 방에서 학생 하나가 냇내에 중독이 되어 쓰러진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톱밥을 아궁이 속에 넣어서 불을 떼기 때문이란다. 희미한 전등불의 굴 속을, 외등 하나 없는 길다란 백양로를 그는 갔다가 와서, 그리고 또 걸어갔던 것이다.” - 장덕순(자료 출처 : 윤동주기념관)


연전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합니다. 창씨개명을 해야 했죠. 자신이 정성을 다해 창작한 시집도 발행하게 못하게 하는 일제. 그를 화나게 만드는 일제. 그러나 일본에 가서 문학을 더 배우려 하는 동주. 어렵사리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1942년 4월에 입학한 도쿄 릿쿄대, 그러나 동주는 단 6개월 만에 교토시 도시샤 대학 전학을 갑니다. 동주에게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릿쿄대학의 학적부 기록: 1942년 12월 퇴학


또 한 번의 시련, 교련수업.


YOU2: 교련수업이 뭐예요?


YOU1: 학교에서 하는 군사훈련이에요. 한국에도 있었어요.


YOU2: 아, 생각났어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봤어요. 흰색바탕에 검정 표범무늬 교련복 입고 있는 거요.


YOU2님 혹시 90년생? 90년생은 모를 수 있어요. 90년 들어오기 전에 교련이 폐지됐거든요. 윤동주가 한 '교련 수업 거부'행동은 교련복을 입지 않은 채 교련 수업에 출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교련수업거부

1942년 8월 4일 고향 롱징에서 찍은 사진. 전시체제하에서 4월부터 시행된 ‘학부단발령’으로 윤동주의 머리가 짧게 깎여 있다.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설명)


당시 교련수업 거부자에게 “단발령"이 내려집니다. 증명이라도 하듯, 릿쿄대에 재학 중일 때 고향 롱징에서 친구들과 찍은 마지막 사진을 보면 동주의 머리가 짧게 깎여있어요.  

지금까지 동주의 인생기록에서 특이점을 찾아봤어요.


#지적욕구 : 만주-평양-경성-도쿄 유학

#신사참배 하라 : 18세의 나이, 그저 고개만 숙이면 됐지만 자퇴를 선택. 십계명을 어기고 싶지 않다. 

#문학사랑 : 단식투쟁으로 문학에 대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한글 사용하지 마라 : 고집스럽게 한글로 시를 쓴다.

#교련수업받아라 : 제국주의의 중심 일본 도쿄의 교련시간, 모두 교련복을 입고 앉아 있지만 식민지 나라에서 온 이 청년은 교련복을 입지 않고 앉아있다.

#순수함 : 하늘, 바람, 별, 꽃, 나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강한 도덕감 : 성내지 않겠다, 남을 헐뜯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애타심과 친절 : 친절하고 남을 염려하는 마음 


동주에게 1순위는 무엇이었을까요?


YOU3: 그의 일생에 무언가 일관성이 보여요! 원칙 있는 사람이 주는 분위기랄까요! 


YOU3님, 중요한 키워드 감사합니다~ 


제 마음속 동주는 화가 나지만 감정을 억제할 줄 알고, 그 와중에도 내리는 눈을 보며 새물새물 웃을 수 있는 순수함이 있으며, 자기가 아파죽겠는데도 남을 걱정하는, 고운 마음씨의 원칙을 가진 삭발머리 사나이입니다. 그래서 고상한(high-minded)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high-minded



YOU4: 너무 외골수 아닌가요? 친구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그 고상함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나요?  


YOU4님까지 참여해 주시다니.. ^^ 감사합니다.





high-minded : having or characterized by high moral prin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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