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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딜라 Oct 22. 2023

이상과 현실의 간극

정체성 = 이름 + 외모 + [가치관 + 신념] + 특성

동주는 기독교 지식인 선각자 집안의 큰 손주답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처음 활자로 발행된 그의 시 [공상] 감상하고 이어갈게요.  

    

                공상


공상 ─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


1935. 10



#황금 지욕(知慾)


지적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그곳을 향해 공상의 바다를 헤엄쳐 나가는 17세 소년, 시[공상]는 1935년 평양 숭실학교로 유학 온 다음 달 10월에 쓴 작품으로 추정해요.


YOU2: 처음 고향을 떠나 명문학교에 오니 마음속에서 지적욕구가 황금빛 태양처럼 솟아올랐나 봐요.


더군다나 대학입학도 목표하고 있으니 기대감이 더 컸겠죠.


YOU1: 동주는 어릴 때 축구선수도 하고, 웅변대회 1등도 하고 교내 문예지도 만드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친구였거든요. 그런데 처음 쓴 시들 [초 한 대], [삶과 죽음], [내일은 없다]를 보면 추상적이고 세상걱정도 많이 하는 진지함도 있어요.


같은 달 쓴 [꿈은 깨어지고]가 흥미로와요.


        꿈은 깨어지고  


꿈은 눈을 떴다

그윽한 유무(幽霧)에서.

노래한 종다리

도마 쳐 날아가고,

지난날 봄타령하던

금잔디밭은 아니다.

탑은 무너졌다,

붉은 마음의 탑이-

손톱으로 새긴 대리석 탑이-

하루 저녁 폭풍에 여지없이도,

오오 황폐의 쑥밭,

눈물과 목메임이여!

꿈은 깨어졌다

탑은 무너졌다. 


1935. 10. 27 (1937. 7. 27. 改作)




 YOU1: 그해 가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이상’을 노래하던 동주가 '깊은 절망감'에 빠진 걸 보면요.


YOU2: 적어도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들로 자라지 않았군요.


    동주의 정체성 = 이름 + 외모 + [가치관 + 신념] + 특성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경험하는 사건이 하나 벌어집니다. 일제는 모든 학교에 신사참배를 요구했고, 그가 다니던 미션스쿨 숭실학교도 예외가 아니었죠. 이에 숭실학교 교장이자 선교사인 맥큔은 1936년 1월 신사참배 거부입장을 당국에 공식적으로 표명합니다. 이 일로 그는 파면됐고요. 


#숭실학교 자퇴 #신사참배 거부 


동주는 입학한 지 채 몇 달도 안 돼서 자퇴를 선택합니다. 명문학교에 온 기쁨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왜 자퇴를 했는지 그때의 상황이 궁금해 자료를 찾다 흥미로운 내용들을 발견했어요.


동주의 동창이었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100세 일기] 칼럼 중 일부입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하고 학업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교회 김철훈 목사의 가르침과 교장 선생의 뜻을 따라 학교를 떠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같은 반에 있던 시인 윤동주는 자퇴하고 만주로 떠나갔다. 나도 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는 동안에 평양 기독교계의 유지들이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500명이 넘는 한국 학생들을 일본 학교에 맡길 수는 없으니까, 신사참배를 하더라도 우리 아들들을 우리가 키우자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평양 부립 도서관에 다니면서 독학을 시도하였으나, 스승의 권고로 하는 수 없이 복교하기로 했다. "

4학년 학생으로 복학한 첫 학기 초에 우리는 평양신사로 참배를 가야 했다. 일제가 명령하는 규정이었을 것이다. 평양에 있는 모든 공사립 중학교와 기관들이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던 것이다. 신궁 앞 넓은 뜰 안에 전교생이 도열해 섰다. 교장선생이 맨 앞에 혼자 서고 그 뒤에는 선생들이 횡렬로 정돈해 섰다. 우리 학생들은 학년과 학급에 따라 종렬로 자리를 채운다. 그러고는 체육선생의 구령에 따라 최경례를 하는 절차였다. 최경례는 가장 존중한다는 뜻을 담아 90도로 경의를 표하는 절이다.
학생들이 신사참배하는 모습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2018.09.18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대표들이 1938년 9월 10일 신사참배 결의 후 평양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출처] 국민일보 2018-08-09
“딱딱딱”. 의사봉의 둔탁한 소리가 고요한 예배당을 갈랐다. 동시에 윌리엄 블레어 선교사를 비롯한 20여 명의 선교사가 자리를 박차고 강단으로 뛰어나갔다. “안 됩니다” “불법이요”라는 외침이 끝나기도 전 경관들이 선교사들의 입을 막고 끌고 나갔다.

마지막까지 신앙의 양심을 지키던 예장 총회가 무너지는 순간은 이토록 무기력했다. 예장이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제1조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이 신으로 받드는 일왕을 경배하는 행위가 하나님이 금한 행위라고 본 것이었다. 안건 자체가 긴급 동의안 형식으로 갑자기 올라왔지만 총회는 선언문까지 미리 준비했다. 선언문은 서기 곽진근 목사가 낭독했다. “신사는 종교가 아니며 기독교 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 애국적 국가 의식이기에 솔선해서 국민정신 총동원에 적극 참가하여 황국신민으로서 정성을 다해 달라.” 신사참배가 국가 의식임을 주장한 선언문이었다. [출처] - 국민일보 “신사,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치욕의 선언

기독교 교회는 이 역사를 신앙을 굴복한 치욕의 선언으로 평가합니다.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 제1조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이 신으로 받드는 일왕을 경배하는 행위가 하나님이 금한 행위라고 본 것이었다.


YOU1: 아 십계명.. 신사참배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학업이 우선이냐 신념이 우선이냐 가치관에 혼란이 왔겠죠. 부모를 떠나 어렵게 온 평양, 학업을 계속하길 바라는 마음에 평양에 남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고향 롱징의 광명학교에 편입(36년 4월)해요.


YOU1: 그러니까 동주는 자신의 신앙과 위배되는 행동이라고 판단했군요! 단호한 구석이 있네요.


YOU2: 고개만 숙이면 되는 거잖아요. 기독교계의 유지들도 고민하는 문제를 어린 동주가 너무 과하게 진지했던 거 아니에요?  


점점 대화가 뜨거워지네요. 오늘의 투어는 가치관과 신념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 기억해주셨으면 해요~


세상 진지하기만 한 동주는 아니었어요. 그러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병아리] [눈] 같은 동시를 지어내는 여유를 보면요.


        병아리


뾰뾰뾰 엄마 젖 좀 주

병아리 소리.


꺽꺽꺽 오냐 좀 기다려

엄마닭 소리.


좀 있다가 병아리들은.

엄마 품속으로

다 들어갔지요.


1936. 11


        


눈이

새하얗게 와서

눈이

새물새물 하오 


*새물새물 : 입술을 약간 샐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자꾸 웃는 모양.(네이버 국어사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무게 있는 시와 가볍고 명랑한 동시를 오고 가며 폭넓게 표현할 줄 아는 재능있는 문학소년이었습니다. 


YOU1: 동주는 바람, 나무, 반딧불, 병아리 같은 자연물을 통해 영감을 얻었어요. 


YOU1님 동주덕후인정! 딱딱딱!


YOU2 : 대화의 열기를 눈치챘는지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를 빤히 보고 있네요.

  시인의 언덕 - 한양도성 연결로


YOU3: 동주도 이곳에 서서 이 바람의 감촉을 좋아했을까요?  


와! YOU3님 계속 조용히 계셨는데, 감수성이 남다르시네요~  


YOU3: 저는 그냥 우연히 참여했어요. 동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그냥 잘 듣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한양도성에 오면 늘 기분이 좋아져요. 언제 와도 이렇게 바람이 불거든요~ YOU1님, 덕후답게 지금 생각나는 시구절 하나 없을까요? 


YOU1: 동주도 바람을 좋아했어요. 그의 시에 '바람'도 많이 등장해요.


바람은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
내 발은 언덕 위에 섰다


동주의 시[바람이 불어]입니다. 


YOU3: 지금 제 기분이랑 딱이네요~


최고! 상쾌한 바람이 우리의 열기를 좀 식혀줬으니 계속 가볼까요?




신사참배 :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천황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곳곳에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들로 하여금 강제로 참배하게 한 일이다. 신사는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Shintoism)의 사원이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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