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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딜라 Dec 31. 2023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시 [흐르는 거리]

야침 차게 떠나본 나의 조금 특별한 가을여행

<High로 가는 길 - 윤동주 여행> 편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 새 달력으로 바뀌기 직전이다. 나의 윤동주 여행 챕터를 넘기려니 아쉬움이 내 손목을 붙잡는다. 에필로그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모양이다. 동주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흐르는 거리


으스럼히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간다. 저 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실고서, 안개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통이 붉은 포스트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푸시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사랑하는 동무 박이여! 그리고 김이여! 자네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끝없이 안개가 흐르는데,

「새로운날 아침 우리 다시 정답게 손목을 잡어 보세」 몇자 적어 포스트 속에 떨어트리고, 밤을 새워 기다리면 금휘장에 금단추를 삐었고 거인처럼 찬란히 나타나는 배달부, 아침과 함께 즐거운 내임,

이밤을 하염없이 안개가 흐른다.


1942. 5. 12




모든 바퀴가 어디로 흘리워 가는 것일까?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푸시 빛나는 가로등, 꺼지지 않는 것은 무슨 상징일까?


2023년 올해의 화두는 챗GPT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나에게는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누군가 "브런치에 글을 써보면 어때요?" 툭 던진 이 한 마디에 내 마음이 설렜다. 그러나 실행으로 옮기는대는 1년이 걸렸다.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였다. 가장 큰 핑계는 챗GPT.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는 AI. 말 한마디 입력하면 순식간에 그럴싸한 글을 지어준다는 말에 기가 질렸다. '내가 엄청난 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새삼스레 글을 쓰겠다고?', '지금 와서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사실 챗GPT가 뭔지 궁금했지만 일부러 열어보지 않았다. 마음이 상했나보다. 그러다 어느 가을밤, 한 친구에게 온 메시지. "나는 정직,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 충성스러운 사랑을 바란다." 너무 순수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니 이건 챗GPT가 날린 펀치보다 더 컸다. 나도 모르는 사이 좁아져버린 내 마음을 흘깃 쳐다보며 그 친구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부끄러웠다. 그날 밤 나는 베란다에 앉아 긴 시간 생각에 잠겼다. 영광스럽게도 그것이 나의 글쓰기의 발단이다.


인간은 의미를 찾는다. 존재의 이유를 찾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질문한다. 그리고 고상한 가치를 추구한다. 그것이 인간 아닌가? 인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용량이 크다고 믿는다.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고정된 고체가 아니라 어떤 것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부피가 달라진다.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한다.


윤동주라는 사람의 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그의 마음이 보였다. 마치 하얀 눈이 도시의 흠을 덮어주듯, 그의 깨끗한 마음이 내 마음의 흠도 덮어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오늘 처음으로 챗GPT를 열어보았다. 질문을 해봤다.







나는 살아있다. 선택할 수 있다.
아름다운 마음들을 찾고 하나하나 모아가다 보면 나의 부피도 점점 커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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