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곡> 선을 그어 주던가 - 1415
*소설 속 모티브와 콘셉트 외의 인물, 단체, 장소, 사건 등은 모두 실제와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나연희는 카페를 나와 다음 일정 장소로 향하는 길에 내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유원우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취재원과 기자.
그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복잡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와의 대화는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
며칠 뒤, 유원우의 이름이 다시 휴대폰 화면에 떴다.
[시간 괜찮으면 밥 같이 먹을래요?]
이번엔 ‘그냥’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서로를 더 알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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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잘 먹네요?"
나연희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웃자, 유원우는 민망한 듯 물을 들이켰다.
“밴드 활동하면 살 빠질 것 같죠? 오히려 끝나면 허기져서 더 먹어요.”
식당 한쪽 구석,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자리에서 둘은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기자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나연희, 가수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유원우로.
“원우 씨, 당신은 팬들에게 항상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압박감이 굉장히 큰 거라고 했고요. 그런데 최근에, 그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렇다면, 그 압박감을 벗어낸 이후,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이전의 유원우와는 다른 새로운 유원우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유원우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나연희는 그가 말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고, 사뭇 진지한 표정이 스며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는 게 문제예요. 예전엔 ‘유원우’라는 이름이 곧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여겼죠.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완벽함이 사실 내게는 가장 큰 부담이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내 자신을 숨겨야 했다는 걸 깨달았죠.”
유원우는 눈을 내리깔았다. 나연희는 그의 말속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이상적인 이미지를 꾸준히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그 안에서 점점 더 외로워지고 고립되었던 것이다.
“그럼 지금은 그 이미지를 벗어냈다고 생각하세요?” 나연희는 부드럽게 물었다.
유원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숨을 깊게 마신 뒤 천천히 내쉬었다.
“조금씩 벗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게 완전히 벗어났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아직도 그 이미지를 요구하는 팬들이 있고, 그들의 기대에 맞춰야 할 때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들 앞에서도 나를 숨기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이어진 대답.
“이제는 나 자신을 인정하고, 나를 더 사랑하고,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숨겨왔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낸 앨범을 통해 조금이라도 내 진심을 팬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의 진심 어린 말에, 나연희는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압박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느꼈다. 그는 단지 스타가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갈등과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려는 여정을 시작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그를 더욱 이해하고, 동시에 마음이 더 끌리게 되었다.
“유원우 씨,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요.” 나연희는 따뜻하게 말했다.
유원우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려는 것 같아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려는 거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그의 말에 나연희는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은 단순히 음악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도 점점 더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제가 변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단순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사실, 제가 가진 이미지와 그 이미지가 저를 가두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안에서 제 마음이 조금씩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음악을 한다는 것도 이제는 제 자신을 찾기 위한 과정이 된 것 같아요.”
나연희는 그의 말에서 결심을 느꼈다. 유원우는 과거의 자신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조화롭게 가져가려고 했다. 나연희는 그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를 느꼈다.
나연희는 괜스레 짠한 마음이 들자 유원우의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요즘 작업은 어때요? 어렵진 않고?”
유원우는 고민에 빠진 듯 가만히 커피 잔을 손끝으로 굴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가끔은 헷갈려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랑, 오랜 팬들이 원하는 음악, 그리고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나연희는 그의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원우 씨는 어떤 음악을 더 좋아해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이요, 아니면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이요?”
유원우는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 두 개가 일치하면 참 좋은데 말이에요.”
그러더니 잠시 숨을 고르다 솔직히 털어놨다.
“대중이 원하는 음악을 하면 확실히 더 많은 사람이 들어주겠죠. 근데 그러다 보면.. 저를 오랫동안 좋아해 준 팬들이 원하는 음악과는 멀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나연희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 팬들은 좋아해 줄지 몰라도 대중적으로는 멀어질 수도 있고..”
유원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게 제일 고민돼요. 어느 쪽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나연희는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사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원우 씨 음악을 좋아할 순 없어요. 모두가 다 원우 씨 음악을 좋아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유원우가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해도 돼요?”
“당연하죠. 사람들 귀는 다 다르거든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중이 원하는 음악과 원우 씨 팬들이 원하는 음악이 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좋은 노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다 날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요. 중요한 건 원우 씨가 어떤 음악을 하고 싶냐는 거죠.”
유원우는 조용히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니까 굳이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하지 말고, 원우 씨 스스로가 듣고 싶은 음악,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 돼요.” 나연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우 씨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늘 듣고 있을 테니까.“
유원우는 그 말을 듣고 멍하니 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기자님, 가끔 말이 너무 잘 통해서 무서울 정도예요.”
나연희가 으쓱하며 장난스럽게 눈썹을 올렸다.
”그럼 인터뷰 한번 더 하실래요? ‘음악 철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 같은 주제로?”
“아, 그건 괜찮아요.” 유원우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웃었다.
“그럼 됐어요.” 나연희는 여유롭게 커피 잔을 들었다.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마요. 원우 씨 음악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결국 당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걸 테니까. 원우 씨가 원하는 음악을 계속하다 보면, 결국 대중도, 팬들도 그 진심을 알아줄 거예요. 그리고 응원을 좀 보태자면.. 저는 원우 씨의 음악 감성과 느낌을 정말 좋아한답니다.”
유원우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어느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응원 고마워요, 기자님.”
“뭘요.” 나연희는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팬으로서 하는 말이니까요.”
유원우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따뜻했다.
“그럼,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나연희는 그의 내면을 조금 더 들여다보려 했다.
유원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열며 말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더 이상 숨지 않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요. 나에게 중요한 건 음악이고, 팬들이 내 음악을 통해 진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그의 말은 진지했고, 동시에 절박했다. 그는 더 이상 표면적인 대중성과 인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진심을 전달하고 싶어 했다. 나연희는 그가 보여준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어가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세요. 팬들은 그 모습에서 진짜 유원우를 느낄 거예요.”
유원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연희는 그와의 대화에서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유원우는 더 이상 외적인 성공에만 집착하지 않았고, 진짜 자신을 찾아가려는 여정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바랐다. 동시에, 자신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지나가는 누군가가 둘을 흘끗 보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찰칵. 갑작스러운 셔터 소리가 귀에 꽂혔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나연희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을 때, 한 남자가 황급히 카메라를 내리며 멀어지고 있었다. 유원우도 눈치를 챈 듯 표정을 굳히고 그쪽을 바라봤다.
"방금… 사진 찍었나요?" 유원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팬인가? 아니면…"
"설마 기자는 아니겠죠?"
나연희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괜찮아요. 요즘은 그냥 길거리에서도 많이 찍히니까.” 유원우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나연희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
둘 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불안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평소라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둘의 관계가 미묘하게 선을 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런 작은 일조차 예민하게 다가왔다.
지금 이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그들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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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연희는 잠들지 못하고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SNS를 뒤지며 혹시 사진이 올라왔을까 불안해하다가, 문득 현실을 직시했다.
‘나는 기자다.’
누군가의 사생활을 지켜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 정작 자신은 취재원이었던 사람과 개인적인 관계를 쌓고 있었다.
딱 여기까지 일지도 모른다. 더 깊어지면, 둘 다 위험할지도.
망설임 끝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즐거웠어요. 하지만 우리, 이쯤에서 선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보낸 메시지는 오래 읽지 않음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다 되어 돌아온 짧은 답장.
[무슨 선을요? 이미 넘어선 것 같은데요.]